‘대구 아줌마의 뉴욕 가기’라는 우스꽝스런 제목을 달고 나왔던 연재는 사실 4회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게으름(?)으로 한 세기를 넘기고 말았다. 두 회분의 연재 후에 웹진 관계자의 짤막한 평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더불어 나머지도 연재해 달라는 독촉도.^^;)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문화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담은 것으로 의의가 있다라는 총평은 필자가 다시 자판을 두드릴 용기를 주었다. 원래 다음 연재는 ‘뉴욕의 재미없는 클럽 어슬렁거린 기억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이란 새로운 세기로 바뀌니, 왠지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쌈박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같은 강박관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쓸 이야기는 ‘de la guarda = learn to fly = 하늘 나는 법 배우기’를 할 작정이다. 휴… 놀라지 마시길. 내가 하늘 나는 법 강의를 해주겠다는 게 아니니. 솔직히 내가 다시 뉴욕을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 경우는 두 가지 밖에 없을 것 같다. 하나는 성공하기(성공을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는 델라 구아르다를 다시 보기 위해서이다. 이쯤이면 다 알아차렸겠지만, 델라 구아르다는 공연이다. 델라 구아르다는 아르헨티나 연극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르헨티나 태생이나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3년 째 롱런하고 있는 쇼이다. ‘고향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에게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다시 한번 더 보러 오고 싶다’ – 이건 내 말이 아니라 팜플렛의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공연을 보고 난 후 이 문구를 내 말로 하기로 했다. 상상해 보라. 천장에 달린 얇은 그림자막 너머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그림자들을. 풍선을 날리고 터뜨리고 때로는 바다 속을 날아다니고 때로는 조그만 동물들과 비행기들 위로 날아다니고 있는 그 환상의 시간들을. 끝내는 그림자막을 찢고 나와 동화같은 환상을 지워버리는 냉혹한 순간을. 상상해 보라. 당신이 지옥에 있는 순간을. 아무리 괴성을 지르고 벗어나려고 해도 어디에선가 쏟아지는 징벌의 물줄기와 빛 한줄기를. 그들은 오직 줄 하나에만 의지해 있으며, 남자든 여자든 강하든 약하든 그 동아줄에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엉키어 매달려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그들의 머리와 몸뚱이는 젖은 신문지처럼 구겨지고 그들의 목소리는 공포감으로 질려 피할 데 없는 순간을. 꿈꿔 보라. 오직 주술을 외는 목소리와 관능적인 북소리에만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옷을 다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줄에만 매달려 날아 다니는 사람과, 그에게 이끌려 수줍게 같이 줄에 매달리지만, 마침내 환호성을 지르는 여인네들(관객들)을. 줄에서 내려온 알몸의 사내와 배우들이 관객들과 나는 법을 배운 기쁨의 키스를 나누려 하는 순간을. 꿈꿔 보라. 다른 것도 아닌 줄에 의지하여 벽을 타고 오르며 테크노 댄스를 추는 모습을. 음악, 퍼포먼스, 조명 모든 게 너무나 격렬해서 나즈막한 공연장 벽이 아니라,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까지도 춤추며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그 에너지를. 나의 빈약한 말로, 그 강렬한 육체의 언어들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델라 구아르다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뛴다. 저기 근원에 있는 生老病死愛惡慾의 모든 본능적인 감정들이 깨어나 심장을 터뜨리고 나올 듯이 넘실거린다. 그것들을 다시 잠재우기 위해 이성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나는 내일 당장 다시 뉴욕으로 가버릴 지도 모르니… 델라 구아르다는 일군의 젊은 아르헨티나 크리에이터들이 선술집 아니 클럽 같은 곳에서 실험적으로 해보던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전방위 예술가들이 하늘 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발달한 전통 서커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즉 첨엔 아마 전통 서커스를 흉내낸, 좋은 말로 현대화한 퍼포먼스를 클럽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던 젊은애들은 관객들의 반응과 자신들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걔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프랑스 연극제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다음 순으로 (물론 시작할 때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든 퍼포먼스들의 마지막(?) 목표지인 뉴욕의 브로드웨이에도 무사히 안착하여 45달러의 비싼 입장료를 받아먹으며 더욱더 그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델라 구아르다에 대한 결론으로, 어떤 제한도 없는 상상력의 깊이와 그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뉴욕에서의 어떤 공연에도, 어떤 문화적 유산에도, 어떤 클럽에도 상상했던 것만큼의 감동(지루함?)을 느꼈던 나의 오만함을 굴복시켰던 델라 구아르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상상력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 지 단 70분으로도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위대한 상상력에 대해, 미국이라는 중심이 가진 구심력에 대해 뭐라고 군시렁거리는 것보다 내가 하고픈 단 한 마디 말은, ‘다시 델라 구아르다가 보여주는 마술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어!!’ ps) 뉴욕에 사시는 분, 뉴욕에 가실 분들 꼭 보시라고 권합니다. 저는 델라 구아르다 극단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아니..한국에서 공연하도록 초빙해버려? 20000218 | 송여주 now649023@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