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999년 11월 20일 토요일 저녁 6시 45분부터 9시 25분까지 장소: 세종대학교 대양홀 11월 들어 케이블 TV, 웹 사이트, 음악 잡지 등에 크라잉 너트의 공연을 알리는 ‘광고’가 종종 나왔다. 메이저 가수의 공연도 아니고 해외 뮤지션의 공연도 아닌, 일개 인디 밴드의 단독 공연치고는 대대적인 홍보였다. 그래서 크라잉 너트를 설명할 때, 논리적 모순이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인디 씬의 스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 과연, 레츠 뮤직, 야후 코리아, 쌈지 스포츠, 음악 잡지 Da, 새한 DMR, 하이텔, MTV로 짜여진 후원사의 면면도 화려하다. ‘인디 록 콘서트 중 최대의 제작비를 투여’했다는 ‘드럭’ 측의 홍보 문구도 왠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공연 당일인 11월 20일 토요일, 세종대 대양홀 앞. 입장이 늦어지는 탓인지 예정 시간 15분전인데 줄이 길게 늘어져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예상대로 중고딩과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청중들. 삔, 염색, 귀걸이 등을 평소 스타일로 하는 부류와 평범하게 보이는(그치만 공연 때는 앞의 부류와 별 차이 없는) 부류. 그리고 예상치 못한 부류인, 아이가 걱정되어 같이 온 엄마들. 1, 2층으로 이뤄진 공연장은 총 2천여 좌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뒷줄에 서서 입장하고 보니 1층(1537석) 맨 뒤에는 빈자리가 다소 보였지만 무대 앞을 보니 무대와 좌석 사이, 좌석 열과 열 사이의 앞쪽 통로에 다수의 열혈 청중들이 모여 있었다. 어림 잡아 1700여명? 청중 규모에 대해 ‘많다/적다’를 따지기에 애매한 면이 있었다. 좋지 않은 날씨와 공연 장소의 불리함(공연 장소로서 화양리는 차악(次惡)에 해당함)을 감안해야 할지, 대대적인 홍보와 크라잉 너트의 지명도를 기준으로 할지. 개인적으로는 전자 쪽으로 판단이 기울었지만. 이날 공연은 총 3부로 진행되었다. 크라잉 너트는 2집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으로 시작하여 앵콜곡 “말달리자”까지 모두 18곡을 연주했다(김인수가 리드 보컬한 곡 제외). 그 중 10곡이 2집에 실린 신곡이니까, ‘2집 발매 기념 콘서트’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공연이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원더버드가 게스트로 섰고, 2부와 3부 사이에는 비버스 크래커(18 크럭의 후신), 레이지 본, 자니 로얄로 구성된 조선 펑크 프로젝트(‘드럭’ 올스타?)가 게스트로 연주했다. 크라잉 너트의 공연장은 ‘여전했다.’ 크라잉 너트 멤버들의 격렬한 몸짓과 연주, 모슁과 스테이지 다이빙이 난무하는 청중들의 열띤 반응. 그 속에서 음악은 공간을 떠돌아다니지도 않고 청중들을 향해 꽂히지도 않았다. 당구대 위의 당구공처럼 서로 서로를 부딪치면서 누볐다. 크라잉 너트의 공연은 하나의 난장판, 스펙타클한 상황이다. 2부의 “빨대맨” 때 무대 위로 30여명의 청중이 올라가 뒤엉켜 춤추고 몇몇은 무대 앞으로 뛰어내리고 하는 ‘익숙한’ 광경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말달리자” 연주 때는 정도가 더 했지만). 크라잉 너트 2집에 대해 상론할 자리는 아니지만, 공연과 관련해서 다소의 언급은 필요할 듯하다. 공연에서 선보인 2집 신곡들은 타이틀곡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듯이 장르 혼합적이었다. 신곡들은 펑크를 중심으로 하지만 레게/스카, 메탈, 퓨전 재즈, 하드코어, 폴카, 트로트 등 여러 장르의 요소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각 요소들은 병렬적으로 배치된 게 아니라 융합적이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은 딱 들어도 크라잉 너트의 빛깔이 났다. 특이한 점은 크라잉 너트의 2집도 그렇고 이날 공연도 그렇고 키치적인 냄새가 짙었다는 점이다. 근대화 시기를 명멸했다 TV의 대중화 이후 거의 종적을 감춘 서커스를 타이틀로 삼았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날 공연은 극적이거나 유치한 요소를 도입해 나름대로 키치적인 테마를 보여주려 한 듯하다. 서커스단을 초청하여 막간에 그들의 묘기를 보여주려 했던 계획은 불행하게도 무산되었지만(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서커스단 측에서 고액을 요구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연의 시작은 삐에로가 등장해 땅콩, 귤 등을 청중에게 나눠주고 간단한 저글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부와 2부의 막간에는 정장 차림의 어떤 남자가 등장하여 자신을 나이트 클럽 웨이터 정우성이라고 소개하면서 홍보를 하였으며, 크라잉 너트의 ‘제 5 원소’ 김인수(‘공익’으로 알려진)가 무대 가운데로 이동해 커다란 스케치북에 핵심어를 적어 가며 ’20세기, 정치, 치정…’ 등의 ‘심각한'(그래서 다소 코믹한) 발언들을 하기도 했다. 크라잉 너트 멤버들의 양태와 음악도 심상치 않았다. 이들은 정장 스타일의 의상을 차려 입고 얼굴엔 하얀 화장까지 하고 1부와 3부에 나섰고, 장르 요소들을 ‘짬뽕’한 이들의 노래는 각 장르의 에토스를 증발시켜 ‘크라잉 너트화'(이게 ‘조선 펑크’?)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은 대표적인데, 이 곡은 오래된 LP 음반의 잡음 소리로 시작해 러시아 민요적 요소와 만담 형식을 차용하여 도입부를 장식한 후, 자신들을 서커스 유랑단에 동일시하는 가사와 트로트적인 멜로디를 펑크 스타일로 갈무리한다. 또한 트럼펫이나 아코디언을 사용하여 사운드의 느낌을 복고적으로 한 것이랄지, “탈출기(바람의 계곡을 넘어…)”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살풀이 비슷한 춤을 추고 후반부에 그녀와 한경록이 느닷없이 탱고의 한 자세를 보여주어 청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 것도 테마와 관련해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크라잉 너트의 그런 기획은 새로운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크라잉 너트는 1집의 “싸나이”와 컴필레이션 [Open The Door]의 “블라디미르 광주로 간 사나이” 같은 곡에서 이미 폴카 리듬, 트로트적 멜로디와 창법, 긴 러닝 타임의 낭만적 경향을 보여준 바 있다. 다만 ‘드럭’의 컴필레이션 [조선 펑크]에 실렸다가 이번 2집에 재녹음된 “다 죽자”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장르 혼합이 좀더 능숙해 졌으며 키치적인 요소가 좀더 도드라졌을 뿐이다. 인디 밴드의 ‘떼 공연’에 식상해 있던, 또는 크라잉 너트(와 ‘드럭’)의 근황에 궁금해하던 청(소)년들에게 이날 공연은 간만에 즐길 만한 이벤트였음에 분명하다. 막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땀을 씻어내던 열혈 팬들이나 뒤쪽에서 그리 크지 않은 동작으로 공연에 반응하던 사람들에게나 모두.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크라잉 너트와 ‘드럭’ 패밀리의 모습은,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아름다워 보였다. 내친 김에 ‘식상한’ 발상을 하나 더 고백하면, 크라잉 너트의 공연을 보면서 어느 순간 황신혜밴드가 연상되었다는 점이다. 그 연상이 뜬금없는 것인지 제대로 된 직관인지 지금으로선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일단 멋대로 긍정해 본다면 크라잉 너트가 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황신혜밴드는 키치를 방법론으로 삼으면서 그것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였고, 그렇게 전략과 의도를 풀어 나갔다. 크라잉 너트는 어떤 생각일까. 글쎄, 귀추를 주목해봐야지, 뭐. 이것도 구태하고 의연한가. 19991203 | 이용우 pink72@nownuri.net 공연곡 목록 (*표는 2집 수록곡) 서커스 매직 유랑단 * 신기한 노래 * 베짱이 * 벗어 * 파랑새 검은 새 엿장수 맘대로 다 죽자 * 묘비명 펑크 걸 군바리 230 * 브로드웨이 AM 03:00 * 빨대맨 * 탈출기(바람의 계곡을 넘어…) * 게릴라성 집중 호우 * 갈매기 Stand By Me(리메이크) 말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