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대 70명의 싸움이라면 그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혹시 70명이 빈 손이고 5명이 총이라도 들고 있다면 모를까. 지난 9월 2일에 있었던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은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 창단 11주년 기념 연주회는 이런 의미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1부 순서는 서울 팝스의 단독 무대였는데 사람들이 호응할 만한 곡 위주로 팝스 오케스트라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2부. 2부 순서는 록(!) 밴드인 노이즈가든과 팝스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시도였다. 솔직히 ‘노이즈가든이 오케스트라와 같이 뭔가 한다더라’ (이 때만 해도 협연이라는 나와 친숙치 않은 단어는 상상도 못했다)는 말만 듣고 예술의 전당까지 찾아간 나로서는 관심 대상이 당연히 2부 순서일 수밖에 없었다. 잘 나가는 나라들에서야 한 때 유행 엇비슷하게 번졌던 유명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전에 벌어진 적이 있었던가? (사실 잘은 모르겠다-_-a). 어쨌건 ‘대중 가수와 오케스트라’라는 형태는 본 적이 꽤 있는데, 이번에는 록 밴드라… 궁금할 만했다. 최초는 아닐지 몰라도 이건 확실히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노이즈가든은 거친 기타 톤을 지닌 밴드다. 결코 밝다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하고 강렬한 분위기에는 이런 악기 음색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발랄한 분위기?) 오케스트라와의 협주를 통해서 이런 분위기를 내는 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1부 순서를 감상하는 동안 느낀 의문점이었다. 단순하게 연주자의 수로만 봐도 오케스트라는 70명이 넘는 대인원이었고 노이즈가든은 겨우(?) 5명이었다(본래 노이즈가든은 4명이다. 그런데 이날은 객원 키보디스트로 ‘J-1’ LEE 라는 사람이 참여했다). 70명이 내는 음량과 5명이 내는 음량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이즈가든이 메인이 되어서 공연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을까? 어차피 노이즈가든 단독 콘서트가 아니기에 그들이 메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오케스트라와 동등한 위치를 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날의 2부 공연을 보고 내린 결론은 ‘불가능했다’이다. 절대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솔직히 이날의 노이즈가든은 서울 팝스와의 ‘협연자’로서의 지위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에 약간 거친 톤의 기타 한 대와 베이스 한 대, 드럼 한 대, 키보드 한 대가 추가된 느낌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좀 튀었던(!) 건 보컬 정도?) 이런 느낌은 레드 제플린의 “Rock and Roll”과 비틀스의 “Helter Skelter”,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연주할 때 특히 심했다. 그나마 노이즈가든 자신의 곡인 “여명의 시간”, “유혹” 등은 비교적(!) 편곡 등이 잘 되었다. 특히 “여명의 시간”은 노이즈가든 특유의 음색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곡이라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잘 소화가 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을 느끼기 어려웠다. 왜였을까?

편곡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우선 눈의 띄는 것은 음량의 문제였다. 쾅쾅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서 노이즈가든의 은근하게(?) 들리는 연주 소리를 찾아(!) 듣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고전음악 중심의 연주 홀의 경우 천장에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무대에서 연주된 소리를 증폭해서 스피커를 통해 내보낸다. 그런데 이번에 노이즈가든의 경우 기타나 베이스 앰프를 무대 위에 가져다 놓고 연주했다. 이럴 경우 기존 오케스트라 편성 속의 악기와 다른 점이 없다. 결국 무대 위에서 연주된 소리를 천장의 마이크를 통해 증폭하는 것이다. 그러니 앰프 출력을 키운다 한들 뒤에서 연주하는 70명의 악기 소리에 상대가 될 리 없다(관악기나 현악기의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결국 노이즈가든은 다른 방식으로 악기 소리 출력을 했어야 옳다(앰프에서 나온 소리를 믹서로 넣어 출력한다던지). 동등한 조건이라면 5명이 70명이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노이즈가든 멤버들의 돌출 행동(특히 베이스) 등 공연 자체가 흥미롭기는 했지만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여명의 시간” 같은 곡의 연주를 보면 상당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공연장을 뒤로 하고 록 밴드가 오케스트라를 불러 ‘협주’하는 엉뚱한 사건(!)을 상상해보았다. 아서라… 19990915 | 서장원 safer@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