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넘쳐나는 즐거움 TV에선 며칠째 하루종일 수해 방송을 해대던 8월 초,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잠시 햇볕 반짝하던 틈을 타서 뉴욕으로 날았다. 수해도, 은행 잔고도, 회사일 때문에 휴가를 포기한 남편도 개의치 않고작년 얼트 바이러스의 [소란] 공연 기획에 참여한 이후, ‘맘 속에 남아있는 의문을 풀어보자’는 핑계로. 뉴욕에 도착한 8월 4일, 나의 파트너는 제일 먼저 나를 뉴욕 대학 근처 ‘반스 앤 노블’ 서점에 데리고 가 주었다. 이것저것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뉴욕에서 벌어지는 음악 공연들을 몽땅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내 손에 쥐어진 [타임아웃(TIMEOUT)]이라는 주간지를 보는 순간 무너졌다. 공연과 클럽 소개만 해도 5포인트도 될똥말똥해 보이는 깨알같은 글씨로 열대여섯 페이지를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도통 뭐가 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뉴욕은 공연이 넘쳐 나서 오히려 질리는 곳”이라더니. 뉴욕으로 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선택했던 몇 가지 공연만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밤이면 클럽들을 순회하기로. 뉴욕에서 돌아온 지금, 4회에 걸쳐 연재될 공연 이야기는 가벼운 스케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애초에 좋아하는 스타 뮤지션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으니. 릴리스 페어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대한 소문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생각해 보라. 3년 전 한 포크 여가수가 여성들만의 축제를 시작했다니. 게다가 그 페스티벌은 해를 거듭할수록 세간의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니. 온갖 열악한 상황들을 무릅쓰고 뉴욕으로 날아간 것의 절반은 그 소문에 혹해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페스티벌이 의미와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아~ 우리의 소란 공연이여!) 그런데 이건 웬 날벼락! 뉴욕 근처에서 하는 3회의 공연 모두 이미 매진되어버린 것이었다. [우드스탁 99]의 표는 매진 이후에도 되팔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릴리스 페어]는 그마저 아예 찾아보기 힘들었다. 괜히 [롤링 스톤] 지의 ‘주목할 만한 투어 탑 텐’ 중 하나로 꼽힌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현지 파트너가 암표상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라도 사기당할까 엄청 겁을 먹었는데 다음날 온 표는 전화, 홈페이지 주소, 크레디트 카드 영수증까지 동봉된 것이었다. 뉴 저지의 PNC 뱅크 아트 센터에서 하는 52달러짜리 표에 수수료 12달러밖에 붙어 있지 않았다. 불법적인 암표상이 합법적인 도둑 회사 티켓 마스터보다 낫다! 세상에 그 전날 티켓 마스터에서 산 루츠(Roots)의 공연은 23.5달러에 수수료가 5.1달러였는데. 티켓 마스터에 대항해서 싸웠다던 펄 잼 만세! 이왕이면 그 싸움에서 이겼으면 좋았을텐데^^; 5시인 공연 시간에 맞추기 위해 뉴 저지 행 기차를 탔다. 1시간의 기차 여행과 30분의 셔틀 버스 여행 후 한적한 숲 속의 대형 야외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백인 여성들이었다. 두 달 여 동안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투어 중 단 하루 온 사람들이 족히 2만여 명은 되어 보였다. 오늘의 출연진은 페스티벌의 주도자인 사라 매클라클렌, 셰릴 크로우, 프리텐더스(크리시 하인즈), 미야, 수잔 베가. 그리고 공연 중간중간에 나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한 명의 만담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이 하루에 열 팀이상 떼로 몰려나오는 데 비해 출연진들은 단촐한 편이었다. 공연은 30여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세팅 시간 역시 길었지만, 왠지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위기탓. 지정석 주위로 돗자리를 깔아놓고 느지막한 한여름 오후의 햇볕을 즐기면서 먹고 마시고 심지어는 잠자기까지 하는 소풍 나온 듯한 분위기가 공연장 전체가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려는 찰나, 허걱… 미국 국가가 나왔다. 점잖아 보이던 관객들은 아니나다를까, 전부 일어나 감동적인 눈빛으로 성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미니즘과 국가주의가 무슨 상관이 있었던가 갸우뚱거리며 나는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첨으로 나온 수잔 베가, 통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온 그녀의 뒤로 보티첼리의 비너스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좋지 않은 사운드에도 그녀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그다지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다음 차례는 미야, 첨 보는 흑인가수였다. 젊고 춤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르긴 했지만 역시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의외로 그녀는 공연 중간쯤에 탭댄스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우와~ 놀랍군’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왠지 계속 8만원 짜리 표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즈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연은 흥미로워졌다. 크리시 하인즈, 셰릴 크로우, 사라 매클라클렌까지 나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들이 꽤 멋진 무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의 독특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프리텐더스라는 밴드를 이끌고 나온 크리시 하인즈는 나이가 마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펑크 로커였다. 미야까지만 해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미국 관객들이 일어나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록 음악에 가끔 가다 발라드. 내가 특히 흥미를 느낀 것은 그녀가 마치 본 조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에서는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주 예쁘장하지만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메틀 키드였다. 특히 기타를 들고 흔드는 폼이나 무대를 뛰어 다니는 모습이. 그녀보다 훨씬 젊은 사라 매클라클렌은 너무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와 한밤 공기의 흐름이 대형 야외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영애를 떠올렸다. 관능적이고 여성적이면서도 대지의 신령을 불러낼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진 여인들이란 종족. 한없이 평화롭고 환상적인 무대에 이어, 아이러니컬하게도 무대 뒤에는 폭파되는 건물과 남근 같은 조형물이 교차되는 전투적인 영상이 흘렀다. 푸~ 저렇게 부드러운 음악 뒷배경이 가부장제의 붕괴라니… 그녀에게 ‘놀랄만한 강인함과 맑고 투명함의 조화’라는 수사를 붙이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대학 시절 책으로만 읽었던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를 한 무대에서 경험하고 있었다. 남성과의 동등함을 남성처럼 됨으로써 획득하려던 시대에서, 여성 자신을 재발견함으로써 이루려는 시대로 변화해 온 역사가 눈 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무대 위 사라 매클라클렌의 이미지는 변화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매혹되어, “나도 저런 느낌을 가진 여자가 되고 싶어”라고 연발했다. 물론 내가 느낀 것이 [릴리스 페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외자의 시각에선 엉뚱한(?) 게 눈에 들어오게 되나 보다. 여성성에 대한 명상(?) 탓에 애초 궁금해했던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공연 기획과 진행에서도 성공의 비결이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서비스 정신’. 컨셉트를 중시하는 페스티벌이지만, 관객에게 최대한의 엔터테인먼트(오락)를 제공하겠다는 태도가 공연 전체에 흘렀다. 미야의 탭댄스 시범부터, 공연과 공연 사이의 날카롭고 즐거운 만담, 출연진 소개 편집 뮤직 비디오, 각 개별 뮤지션 공연마다 변화를 준 무대 배경 장치([릴리스 페어]의 로고인 보티첼리의 비너스 휘장으로 다양하게 바꾼 것이니 돈 잔치를 벌인 무대는 아니었다) 등 관객의 입장을 배려한 기획이었다. 관객에게 ‘의미’를 제시하고 따라올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그 자체를 즐기라고 하는 것이었다고 표현하면 될까? 문득 우리 나라의 공연과 비교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공연 기획자들도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열악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페스티벌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태도’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열악한 상황이야 당장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고. 사라 매클라클렌은 당분간 [릴리스 페어]를 쉬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녀는 현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순간의 성공에 혹해 매너리즘에 생동하는 에너지를 갉아먹히는 바보 같은 짓을 피하겠다는 것. 그 역시 여성성에서 온 현명함일까? 19990915 | 송여주 now649023@nownuri.net 관련 사이트 릴리쓰 페어 http://www.lilithfa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