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2:00 노량진역 일행과 만나기로 함. 일차 목적지는 동인천 역. pm 1:20 동인천 이미 송도에 가 있는 또다른 친구와 연락망을 열어놓고… 아직까지 입장을 못 하고 있단다. pm 1:40 아님 50분 쯤 다시 연락망 가동, 이제 막 입장 시작했단다. 오프닝 하고 애쉬까지 할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 pm 2:30 셔틀을 찾지 못해 일반 버스를 타고 송도 유원지라 적힌 정류장에서 하차.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마침 지나가던 셔틀버스 발견, 그 방향대로 따라가기로 함. 그런데 같이 내린 일군의 사람들, 분명 트라이포트행인 듯한데 우리완 반대방향인걸. 으흠, 누가 맞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쪽에 송도 유원지를 통해서 가는 길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유원지 입장료 3천원을 내야 한답니다.) 멀리서 둥둥 드럼과 베이스의 진동이 전해온다. 이건 “화성에서 온 소녀”가 아닌가! 아까 통화하고 난지 길어야 30분인데… pm 3:00 사람들이랑 버스랑 드문드문 눈에 띄는게 거의 다 온 모양이다. 출입구에서 분홍색 팔찌를 감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옷 파는 아저씨들이 난리다. 2천원, 3천원… MTV party zone을 지나,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각종 부쓰를 지나, 드디어 무대에 도착. 그러나 애쉬는 이미 마지막 곡에 이르렀고… 그래도 끝나기 전에 도착한게 어디냐. pm 3:10 바닷 바람이 세다. 원랜 자외선 차단용으로 준비했으나, 바람막이로 용도 변경된 모자를 눌러쓴다. 한숨 돌리고 적당한 자릴 잡기 위해 주변을 살핀다. 쉬는 틈을 타 잠깐 현장 스케치를 하면, 먼저 거대한 무대가 있다. 외국 페스티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저 정도 갖고 뭘”이랄지도 모르겠지만 여지껏 본 야외 무대 중에선 최고 규모에 제일 뽀대나는 무대다. 다만 날씨 탓인지, 멋있어 보인다거나 신난다기 보단 좀 으스스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거센 바람 탓에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는 조명셋트도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거기다 무대 뒤에서 잡아먹을 듯한 구부정한 자세로 서있는 거대한 크레인까지 합치니, 완전 ‘우주 전쟁’의 한 장면이다. 관련 장비 모두 합쳐 100톤이라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무게는 느껴진다. 무대 앞쪽은 파악이 안 된다. 보이는 건 뒤통수 뿐이니-. 무대 왼편에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무대에서 50m쯤(?) 떨어진 공연장 중앙엔 커다란 부쓰가 서 있다. 취재팀과 음향, 조명 등 스탭들이 모여있다. 그 뒤편에 커다란 스크린이 하나 더 있고, 군데군데 설치된 조명탑 꼭대기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바닥은 이미 진흙밭이 되었다. 무대를 마주 보고 오른편에 길다랗게 아스팔트인지 먼진 잘 모르겠는 검은 걸 깔아놨다. 무대 앞에 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있다. 아끼는 엘로 워커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맘에 진흙 바닥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둘러댄다. pm 4:25 셋팅이 끝났는지 무대 위에 하나 둘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빨간티를 입은 장발의 사나이가 마이크 앞에 서는 듯. 너무 멀어서 누군진 모르겠다. 원래 순서가 누구였지? 이런, 저 목소린 크래쉬!! 이 무대에 서지 못한 다른 밴드들의 몫까지 온 힘을 다해 공연에 임하겠다는 비장한 멘트에 대충 백 스테이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다치는 사람은 없어도 망가지는 사람은 있었야겠죠.” 크래쉬의 공연은 진지했고 힘있었으며 열정적이었다. 테크노틱한 리듬에 실리는 플레이는 낮고 음울하지만 무겁지 않게, 서늘한 현장의 분위기와도 썩 잘 어울렸다. 그러나 공연 중간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버틸만하다 싶었으나 갑자가 굵어지면서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 오늘 이 노랜 꼭 해야해.” 크래쉬의 “Smoke on the Water”는 퍼붓는 비와 함께 멀어져 갔다. 잠시 공연을 중단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거 같다. 그러나 우리는 상관없이 이미 뛰고 있다. 이 비에 우산은 무용지물, 애타게 비옷장수 아저씨를 찾아서. pm 4:00 넘었을거야 한 장에 3천원짜리 비닐을 뒤집어 쓰고, 일단 아는 사람들이 있는 MTV로 피난 결정. 사정은 마찬가지. 관계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무선 통신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맞기 전에야 몸 사리느라 요리조리 피했지만 속옷까지 몽땅 젖어버린 이 마당에 슬금슬금 장난끼가 발동한다. 이미 하늘엔 구멍이 뚫려버린 거 같다. 철수를 고민하던 MTV 관계자들은 행사 강행을 결정한 거 같다. 진흙 바닥에서 우리끼리 신나게 놀아보자. pm 5:05 한 시간쯤 지났나보다. 아까보단 많이 좋아졌다. 조금씩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저런 공연장 주변 풍경을 담으려는 방송국 카메라의 움직임이 바쁘다. 무대 쪽에 남아있던 친구가 공연이 곧 재개될거란다.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한다. 그 전에 잠깐, 화장실을 찾았다. 송도에 있는 동안 화장실을 찾은 건 그 때 딱 한 번뿐이다. 비가 와서 어쩌구 저쩌구 불평이 많지만 만약 정반대의 상황이었다면? 그대로 살아있을 모래바닥에서 날리는 엄청난 먼지와 쉴틈없이 흐르는 땀과 찐득한 바닷바람, 화장실은 숨박꼭질 하자 하고, 손씻고 세수할 세면대는 찾아 볼 수도 없고… 차라리 이 상황이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든 이 공연은 욕먹는 걸 피해 갈 순 없을 것 같다. pm 5:30 “매드캡슐마켓입니다.” 갑자기 환호성이 울리더니 대열이 밀린다. 생각보다 매드의 팬이 많았던건지 아님 나같은 막연한 기대와 들뜸에 편승한 사람들 때문인지, 여하튼 그래봐야 별 차이 없는걸 서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려고 밀고 밀리고… 어수선하다. 하얗게 질린 채 공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여학생이 하나 둘 보인다. 아직 멀었는데. 무대에 등장한 매드는 동네 양아치같은 껄렁한 모습이다. 멋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은 들썩들썩 꺅꺅, 점프 점프! 매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사운드는 베리 굿이다. 간간이 스크린에 비치는 드러머의 열정적인 모습은 흥분을 배가시킨다. 몇 곡이 진행되자 사람들 입에서 ‘crack’이란 단어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rage완 또다른 그루브가 출렁인다. 열광적인 반응에 매드도 한껏 고무된 듯하다. 비닐이 칭칭 감긴 무대, 햇볕 쨍쨍한 것보담 이런 날이 더 어울린단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pm 7:30 아님 8:00? 시간은 잘 모르겠다. 매드는 이미 끝났고 다시 비가 내린다. 공연은 또 잠시 중단이다. 국내 밴드는 모두 취소된 거 같다. 공연이 계속 된다면 외국 밴드만 하지 않을까 싶다. 어둠은 물이 찬 진흙바닥까지 내려왔고… 비를 너무 맞아서인지 오한이 나고 힘도 딸린다. 따뜻한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잠시 쉴 곳을 찾는데 마땅치 않군. 결국 다시 찾은 곳은 MTV party zone! 아까까진 다들 죽을 표정이더니 어느새 흥겨운 파티장으로 분위기는 완벽하게 역전. 무료로 나눠주는 깔루아를 깔짝거리다가 또다른 친구들과 조우, 파티에 동참한다. 드림 씨어터 공연이 신경쓰였지만, 에라 모르겠다. 언제 시작할지도 모르고. 다들 하루종일 맞은 빗물에 취했는지 저 맘대로 놀고 있다. 즐거운 트위스트에서 격렬한 테크노, 거기에 애교섞인 뽕짝 리믹스까지. 이 분위기라면 왈츠가 나와도 다 소화할거 같다. pm 9:20 친구들이 몸을 추스린다. 텐트에서 1박하려던 일정을 바꿔 일단 서울로 가겠단다. 하긴 이 상황에서 캠핑은 너무 위험하다. 낼 다시 만날 걸 약속하고 헤어졌다. 우리도 잠시 작전 타임이다. 너무 지쳤다. 내일을 위해 이쯤에서 작전상 후퇴를 하는건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드림 씨어터는 이미 끝나갈테고 딥 퍼플은 별로 기대 안 했기에. 아직 공연장에 있는 일행을 찾아서 후퇴하기로 결정! 공연장 진입로 양쪽에 늘어서 있는 부쓰에선 나름대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진흙에 온몸을 던지는 이들은 주로 외국인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떼로 몰려 나온다. 드림씨어터가 끝난 모양이다. 이런 녀석 찾기가 더 어려워지겠는걸. 한참을 헤매다 결국 포기. 기왕 이렇게 된거 딥 퍼플 보고 가기로 계획 변경. 서 있을 힘조차 없어 공연장 중앙에 위치한 천막 한쪽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았다. 비가 완전히 그친걸까.. 모든게 잠잠하군… 스크린에 찍혀 나오는 그림이 재밌다. 그냥 진흙탕도 카메라에 걸러지니까 석양을 받고 있는(조명 덕에) 바닷가 같다. 카메라맨도 심심한지 여기저기 엄한데다 포커스 맞추고. pm 10:10 카메라가 무대를 잡기 시작한다. 쇼가 계속 되려나 보다. 얌전히 앉아서 스크린을 보기로 한다. 둥! 축 쳐져 있는데 사운드 체킹하는 베이스 음이 들렸고, 그냥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 나갔다. 짧은 머리의 길런, 켄터키 치킨 마네킹 같은 로드의 모습은 좀 낮설었지만 그 소리만은 여전했다. 저 낯익은 인트로는 “Boys Are Back In Town”! (보라돌이 아저씨들은 공연 중간중간 이런 깜짝 보너스를 넣어주었다. “Here Comes the Sun”까지. 아이 좋아~) 가끔 tv에서 롤링이나 에어로스미스같은 노장 밴드들 공연에 아버지 아들이 손잡고 같이 가는 걸 보고는 무척 신기해 했었는데 이제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이들은 스티브 모스에게 열광했지만 나에게는 켄터키 아저씨 존 로드가 더 멋졌다. 애들은 구리다고 더 이상 쓰지 않는 악기로 지상 최고의 소리를 뽑아내는 능력. 중반부터 다시 퍼붓기 시작한 비는 극적 효과를 배가시켰다. 심벌을 칠때마다 흩뿌려지는 물보라의 감동.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날 내린 비에 함유된 어떤 화학성분이 사람들을 흥분시켰는지도. 어쨌든 그날 하루동안, 아니 이 공연을 위해 치러야 했던 관계자와 관객 모두의 지난한 일들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있어온 것 같다. 안흥찬의 말대로 우린 모두 망가졌다!! 아저씨들도 뜻밖의 반응에 놀란 듯했다. 계속 “fantastic!”을 연발했고 비가 거세질수록 전투력(?)도 점점 더 세져 갔다. “Smoke on the Water”와 “Highway Star”를 듣게 되다니. 백킹이 어떻고 솔로가 어떻고 그루브는 어떻고… 이런 말은 모두 집어치워라. 모든게 몸으로 느껴졌다. 아까 그냥 집에 갔더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 pm 11:30 공연은 끝났다. 멍하다.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그냥 뻑간 기분이다. pm11:50 다시 MTV로. 여긴 광란의 지경에 이르렀다. 절묘하게 타이밍 맞춘 “Smells Like a Teen Spirit”은 돌아가던 많은 이들의 발목을 꽈악 붙잡았다. (그리 넓지 않은 이곳에서 1000-1500명의 사람들이 즐겼다고 한다.) 좋아보인다. 근데 끼어들고 싶진 않다. 진이 다 빠져서일까… 끈끈하고 유쾌한 기억을 가지고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과연 내일 다시 올 수 있을까? 1999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