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 록 페스티벌(과 청년 반문화)은 ‘우드스탁’과 ‘알타몬트’로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후 급격히 사그러 들었다. 1970년대에도 록 페스티벌은 계속되었지만, 성공적이었던 것은 극히 적었다. 영화 [우드스탁]의 성공에 솔깃한 워너 브라더스는 스톤그라운드(Stoneground)라 불리는 무리들을 이끌고 미국을 횡단하는 순회 페스티벌을 열어 영화를 제작하려 했지만 곳곳에서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그 밖의 많은 페스티벌이 여러 이유로 공연이 취소나 금지, 혹은 실패했다.

물론 1973년 뉴욕에서 열린 ‘왓킨스 글렌(Watkins Glen)’ 콘서트처럼 성공적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올맨 브라더스, 그레이트풀 데드, 더 밴드가 무대에 올랐던 이 콘서트는 하루 관중으로는 록 공연 사상 최대인 60만 명 이상을 기록했고, 각 밴드의 공연 순서 후에 세 밴드가 함께 90분간이나 잼 세션을 연주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1960년대의 ‘몬터레이’와 ‘우드스탁’에 견줄만한 문화적 의미를 획득한 예는 거의 없었다. ‘왓킨스 글렌’은 거의 마지막 ‘우드스탁 같은’ 공연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1960년대에 대한 미련과 그 시대를 재현하려는 의지는 본질적으로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1979년, 성대하게 열 예정이던 ‘우드스탁’ 10주년 페스티벌이 우여곡절 끝에 단 하루의 콘서트로 축소되어 노쇠한 연주자와 적은 수의 청중만으로 치뤄졌던 점은 1970년대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야흐로 록 페스티벌은 낡은 양식이라는 인식이 ‘록은 죽었다’는 탄식과 함께 대두하던 시점이었다.

20001018045035-Liveaid그런데 1980년대에 록 페스티벌은 문화적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는 대규모 자선 공연들이 성공한 데 힘입은 것이다.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앰네스티(국제 사면 위원회) 콘서트(The Amnesty International concerts)’, 미국 농부들을 돕기 위한 ‘팜 에이드(Farm Aid)’ 등 각종 기금 마련을 위한 이른바 ‘양심적 콘서트(Conscience Concerts)’가 그것이다. 1960년대의 페스티벌이 공연 장소/지역에서 이름을 빌어온 데 반해, 1980년대의 자선 콘서트가 공연의 목적에 따라 이름 붙여졌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 시기 많은 록 뮤지션들이 인종차별주의, 환경(핵 문제), 성정치, 계급 등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다. 정치적인 캠페인 성격의 공연의 효시는 1970년대 말에 영국에서 열린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록(Rock Against Racism)'(이하 ‘RAR’)이다. 집회, 콘서트, 잡지, 음반 등을 통해 RAR은 유색 인종에 대한 편견, 인종차별에 기반한 폭력, 경찰의 무관심에 대항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여러모로 선구적인 것이었다. 반 국민전선(anti-National Front) 집회는 성공적이었고, 잡지 [템포레리 호딩(Temporary Hoarding)]은 1979년까지 12,000부가 팔렸으며,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최초의 앨범 [Rock Against Racism’s Greatest Hits](1981)는 이후 ‘앰네스티’와 ‘라이브 에이드’ 등의 전례가 되었다.

한편 정치 운동적인 성격을 띄는 기존 공연과 다소 다른 경향의 록 공연이 열렸다. 1979년 런던에서 ‘캄푸치아를 위한 콘서트(The Concerts for Kampuchea)’가 열린 이래,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성공을 발판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자선 형태의 음반과 공연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20001018045035-Bob1984년, 에티오피아의 심각한 기아 난민의 실태를 밝힌 BBC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이들을 돕기 위해 영국의 뮤지션들은 자선 음반을 만들게 된다. 밥 겔도프의 발의로 모인 밴드 에이드(Band-Aid)의 싱글 “Do They Know It’s Christmas?”(1984)는 그해 성탄절 시즌을 석권하며 1천만 장이 팔려 나가면서 8백만 파운드의 수익을 남겼다. 이에 자극 받은 미국 뮤지션들은 이듬해 유에스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란 이름으로 “We Are the World”를 발표하였다. 이들은 앨범, 비디오, 포스터, 티셔츠의 판매로 총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에티오피아 난민 돕기를 위한 일련의 흐름의 결정판이 ‘라이브 에이드’라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1985년 7월 13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의 출연진은 U2, 웸, 퀸, 스팅, 데이빗 보위, 엘튼 존, 스티비 원더, 듀런 듀런, 밥 딜런, 빌리 조엘, 믹 재거, 산타나, 주다스 프리스트 등 영미권 최고의 스타들을 총 망라한 것이었다. 필 콜린스는 콩코드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며 두 공연에 모두 참여해 노래를 부르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의 두드러진 특징은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한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선구자는 1980년대 초반에 열린 ‘US 페스티벌’이었다.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하고 대형 텔레비전 스크린을 설치한 ‘US 페스티벌’은 음악 케이블 방송 MTV로 생중계 된 바 있다. 하지만 ‘US 페스티벌’이 수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데 비해, ‘라이브 에이드’는 7개의 원격 통신 위성을 통해 소련과 중국 포함 150개국 10억 명의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면서 1억 달러의 수익을 남겼다.

20001018045429-Amnesty1양심적 콘서트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콘서트’로서, 이 공연의 목적은 사상, 신념 등의 문제로 투옥된 사람들의 석방 운동을 하는 국제 사면 위원회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1986년과 1988년에 U2, 피터 가브리엘, 루 리드,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팅 등이 참여한 투어는 미국에서만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앰네스티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인간의 권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는 모토를 내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콘서트’는 음악, 춤 외에 석방 청원서 서명, 편지와 엽서 보내기, 각종 물품 판매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연례 행사가 되었다. [스핀]은 “용기 있고 꾸준하고 효과적인 로큰롤 인권 운동”이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대의를 내건 공연/음반’은 1980년대 이후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공연과 음반은 대개 양심과 휴머니즘에 호소하는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은 (록) 음악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좋은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적 공연/음반’이 무관심의 시대에 주의 환기와 기금 마련에 일조하는 ‘착한’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토대가 모호한 휴머니즘과 19세기식 박애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취지와는 달리 ‘양심적 공연/음반’은 사태를 흐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인기 있는 사람이 주연을 꿰차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백만장자 팝/록 스타와 의식 있는 뮤지션이 동질화되며, 정치적 록은 상업적인 록 비즈니스에 포섭된다. 그 과정에서 그런 공연과 음반을 나오게 한 현실은 폭로되는 게 아니라 잊혀지고, 그런 현실을 야기한 강대국 그리고/또는 지배층의 헤게모니는 변함없다.

물론 음악 이벤트 정도로 유의미한 현실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주의 환기와 기금 마련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기아 사태, 인권 탄압과 착취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양심적 공연/음반은 불합리와 아픔을 상업화하여 ‘그래도 현실은 살만하다’고 역설하는 동시에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게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뮤지션의 높은 참여도 그리고 미디어와 음반업계의 흔쾌한 호응도 사실은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이미지 제고를 염두에 둔 데 따른 결과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올해에도 코소보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온갖 추악한 만행이 자행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자 코소보 난민을 돕기 위한 음반 [No Boundaries]가 발매되었으며 각종 자선 공연이 열렸다. 예상대로. 19991001 | 이용우 pink72@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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