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라는 기호는 이제 단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는 게 판명났다. 바닥을 청소하듯 질질 끌고 다니는 ‘힙합 바지’라는 우스꽝스러운 상징이 힙합을 대표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누구도 힙합이 단지 그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 힙합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우스, 레게, 테크노 등등의 (왜곡된) 이름으로 지난 10년동안 수없이 지나간 대중가요(댄스 가요)의 유행 중에서 힙합도 그 하나라고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아니다. 이미 힙합은 적어도 지난 10년동안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가장 유력한 공통의 기호가 되었다. 한국에서 역시 힙합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힙합의 힘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단지 음악이나 패션(유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삶의 여러 영역을 포괄하는 문화라는 점이다. 힙합은 음악이지만 단지 음악이 아니며, 춤이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단지 일부일 뿐이다. 힙합은 패션이기도 하지만 ‘힙합을 입는다’고 할 때 단지 최신 유행 옷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 분위기, 가치, 동류의식을 입는 것이다. 따라서 힙합은 하나의 가치이며 태도다.

그런데 힙합이라는 문화는 흑인, 그것도 아메리카의 흑인의 문화이며 태도다(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힙합 음악에서 한국 힙합(혹은 ‘K-Hiphop’), ‘정통 힙합’ 등의 논란, 힙합의 ‘상업화'(특히 패션), ‘힙합 정신’ 등의 담론 등의 문제가 여기서 파생한다. 거기(미국)에서 그들(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언어로 그들의 태도를 담은 문화인 힙합은 다른 문화적 환경에 ‘수용’되면서 ‘굴절’된다. 이와 같은 문화적 변용과 잡종(hybridization)의 문제들은 단지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에 이런 수용의 문제가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특히 이런 문제가 한국의 힙합 수용자들에게서 제기되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weiv]에서는 한국의 힙합에 대해 탐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본토의 힙합에 대한 소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weiv]의 페이지를 통해 꾸준히 마련되어왔다. 이번 역시 충분하지는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한국의 힙합이 가진 여러 면모를 바라보고자 했다. 힙합스쿨이나 클럽 MP, 그리고 힙합 댄스클럽인 nbinb에 대한 짧은 소개/취재 글에서는 한국에서 힙합이 하나의 문화이자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PC통신과 인터넷은 시기적으로 힙합과 동시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유독 힙합 관련 PC통신 커뮤니티와 웹싸이트가 많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PC통신 힙합 커뮤니티가 힙합 뮤지션 커뮤니티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싸이버 상의 힙합에 대한 소개에 이어 최근에 나온 힙합 앨범에 대한 리뷰를 덧붙였다. 어떤 것이건 간에 단지 2년전과 비교해보더라도 기술이나 창작의 측면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발전했고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특히 컴필레이션 형태의 힙합 앨범은 꾸준히 나올 것이고 수많은 힙합 뮤지션(지망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덧붙여서 [weiv]에서 소개했던 힙합 앨범 리뷰를 모아보았다. 이렇게 해보니 최근 1년동안 나왔던 중요한 힙합 앨범은 대충 포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짧은 이번 특집이 한국의 힙합 문화의 전모를 드러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스팔트 정글’인 한국에서 펼쳐지는 ‘힙합 전투’의 현실의 일면을 보여주었다면 성공이라고 믿는다. peace 4 ya! 20000602 | 이정엽 evol21@wep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