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0년 4월 3일 장소: 펌프기록 사무실 인터뷰 및 정리: 조아 Q: ’21세기 그루브’라는 이름이 낯익다. A: 1997년 말, 강미라(강기영의 동생)가 PC통신 하이텔에 만든 동호회다. 당시만 해도 테크노 음악 동호회라는 게 없었고, 음악 동호회에 작은 방 하나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왜 이런 게 없는지 이상했다. ’21세기 그루브’의 활동에 관해서는 동생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Q: 개인적으로 테크노를 접한 지 오래되었나? A: 오래된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형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나 휴먼 리그(Human League), 야주(Yazoo) 등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Q: 원래 록 뮤지션으로 유명한데? A: 1997년부터 디제잉을 시작했다. 테크노를 시작한 건 얼마 안 된다. 그러나 ‘삐삐 밴드’때 테크노의 제작 방법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힙합 디제이를 제외하고 지금 홍대 쪽에 대략 열 몇 명 정도의 디제이가 있다. 나머지는 나이트 디제이나 록카페 디제이 정도다. 테크노 디제이들은 서로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하나 둘씩 재밌다고 했던 친구들이 시작한 게 한 2-3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전에는 ‘할까? 해도 되겠지’ 정도였다. Q: 테크노는 연주 음악보다는 제작이 쉬울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인가? A: 아니다. 쉬울 수도 있다. 가치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힘들고 뭔가 어려운 것들이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때 놓치는 부분이 있다. 나 자신만 해도 테크닉을 연마하는 록 뮤지션이었다. 더 어려운 연주만이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져서 말하면 그런 거다. 테크노 음악을 만드는 게 또 무조건 쉽지만은 않다. 기계적인 노하우들이 쉬워진 대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이미지들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감각의 문제는 더 어려워졌다. 결코 쉽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Q: 테크노 디제이가 된 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 A: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앨범을 한 장 내려면 몇 달을 거기에 매달려야 했는데, 지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짧은 영화나 뮤직비디오도 만들어 보고 있다. 워낙 하드웨어들의 가격이 내려가고 질도 좋아져서 그전 같으면 혼자 못할 일을 혼자 작업할 수 있다. 녹음, 마스터 과정을 이 공간에서 다 작업했다. Q: 지금은 테크노에만 전념하고 있나? A: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 머리 아파 터져 버릴 것이다. 지금은 테크노 음악 하면서 시간을 좀 가지고 살고 있다. 딴 짓 하느라고 그렇게 시간이 많은 건 또 아니지만. Q: 뽕짝 같은 테크노? 영화 <거짓말>의 음악을 담당했는데… A: 한국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것도 일종의 테크노다. 뽕짝은 한국적이다. 일본의 ‘엔까’랑은 또 다르다. 뽕짝뽕짝 거린다고 뽕짝. 영화 음악 작업은 재미있었다. Q: 음반이 몇 장이나 나가나? A: 다른 인디 음반들이랑 비슷하다. 다른 인디 음반은 많이 팔리나? Q: 록 음악 할 때보다 수입은 어떤가? A: 혼자 다하니까 예전보다는 많이 번다. 아주 많이 벌지는 않았는데, 또 못 벌지도 않았다. Q: 쉴 때는 어떤 음악을 듣나? A: 그냥 아바(Abba)의 음악을 듣는다. 테크노는 계속 감상하며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Q: 일전에 ‘양양’이라는 디제이를 만났는데 그녀는 소리의 파장을 즐기라고 말하더라. A: 테크노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굉장히 멜로디컬한 테크노도 있고 리드미컬한 것도 있다. 듣는 사람마다 찾아 듣는 귀가 다르니까 다르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Q: 가요의 테크노 접목을 어떻게 보나? A: 유럽의 대형 음반 매장에 가보면 록, 인디펜던트, 월드 뮤직, 재즈, 테크노, 댄스 음악 부스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쿠아(Aqua)같은 음악은 댄스 음악으로 구분한다. 가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는 그냥 ‘댄스 가요’다. Q: ‘테크노’라는 말이 ‘첨단의 21세기적인 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A: 외국도 그런 분위기는 분명히 있다. ‘다음 세대’라는 표현과 맞물리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하우스 씬이 강하다고 한다. 1995년 프랑스에 있을 때 처음 테크노 레이브를 경험했다. 그냥 나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쉬지도 않고 계속 음악이 이어졌다. 단순히 음악을 트는 게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짓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느낌이었고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테크노가 주류 음악이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갔더니 유명한 디제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페스티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하지만 아직도 테크노는 언더그라운드다. 아직도 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팝, 댄스 뮤직을 좋아한다. 페스티발 같은 걸 하니까 호응이 있는 거다. 유럽의 레이브는 펑크 운동 비슷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영국만 해도 레이브에 모이는 아이들의 성향이 자유주의적이고 반정부적이라서 정부에서 경계하는 입장이다. 단속하니까 은밀히 모인다. 포스터도 없다. 플라이어(flier)라고 하는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만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요즘은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들에게 전화로만 장소를 알려준다. 그런 식의 레이브가 주말이면 런던 외각에서만 백 여 군데가 넘는다고 들었다. 한 장소에 모이는 인원이 천 명에서 삼천 명? 마치 다품종 소량 상품처럼 여러 가지 테크노 모임이 있다. 나는 테크노라는 장르를 떠나서 그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한 친구들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다. 보수적인 영국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테크노 음악 수용자는 아직 많지 않다.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접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게 몇 개 없는데, 그 몇 개에서 쏟아내는 종류 또한 몇 개 안 된다.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낼 만한 재료도 안 되는 거다. 아직은 저변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퍼지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고 볼 수도 있고. Q: 그렇다면 테크노는 반사회적인 태도, 저항의 태도를 나타내는 음악인가? A: 다양성의 한 표현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아까 말했듯이 레이브 파티에 대한 제재는 무척 강하다. 한국에 비해 더 강력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한다. 인권 문제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들이어서 그런지 뭔가 자각을 하고 노는 것 같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성숙하고 진지하다. 20살만 넘어가면 진지해지는 것 같다. 그런 젊은 친구들을 보다가 그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좀 차이를 느낀다. 그냥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저항이 아니라 반항의 연속이다. 걔네들은 성향이 달라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같다. Q: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A: 그렇다. 난 한 인간이 그 사회와 교류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극단적인 경우 마음에 안 들면 망명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러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나한테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전체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관리가 힘들어지니까 제재를 가하지만. 왜 여기까지 얘기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한다. Q: 나는 테크노를 레이브 파티와 같이 접하게 되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종교 의식 같았다. A: 레이브 현상은 하나의 유행이다. 개그맨의 유행어와 같은 하나의 재미를 추구해나가는 방식이다. 테크노 역시 유행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지나가는 것. 테크노는 단순하기 때문에 몰입하게 된다. 만약 가만히 서서 그 음악을 다른 음악처럼 감상하려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나는 머리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럴 것 같다고 얘기하는 거다. 판단이 안되면 어지럽다. 컴퓨터가 얼어버리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어버리는 그런 상태를 즐기는 것은 아이다. 이해하는 것 자체를 떨쳐 버리는 것이 테크노의 레이브다. Q: 그렇게 보면 테크노는 아주 개인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A: 작업하는 방법은 개인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인 음악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즐겨지는 상태는 어쨌든 여럿이서 같이 하는 것 같다. Q: 멜로디로 감정을 북돋우고, 가사로 구체적인 연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다른 음악이라면, 테크노는 그런 면에서 불친절하다. 난해하다. A: 예를 들면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고 치자. 술래잡기하는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아무 생각 없다. 그런데도 술래잡기라는 것에 빠져 있다. 만약 술래잡기는 안하고, 술래잡기가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머리가 아플 것이다. Q: 테크노 디제이에게 디제잉이란 무엇인가? A: 친구에게 테이프를 편집해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디제잉이다. TV 보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순서로 짜는 것도 디제잉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쉽다. 그 다음에는 노래를 서로 믹스할 수 있는 믹서기, 그 위에 음원들을 낼 수 있는 시디 플레이어라든가 테이프 데크라든가, 좀 더 전문적으로 턴테이블하고 비닐판을 가지고 속도를 맞추고 테크닉을 부리기도 한다. 미니멀하게 만들어 놓은 음원들을 비닐로 찍어낸 것이 디제이용 턴테이블이다. 아직까지는 조작이 원활하고 저음의 소리가 더 낫기 때문에 턴테이블을 많이 쓴다. 턴테이블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이 쉽다. 믹서기는 기계용 믹서기를 사용해야 되고.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복잡하다. Q: 디제이 fee는 어느 정도? A: 타이틀 없이 그냥 클럽에서 한 두 시간 하면 오만원 정도 받고, 이름 건 파티의 경우는 십 만원부터, 큰 행사는 몇 백 만원 정도 받는다. 전업이 되기는 힘들 정도이지만, 영국에서 청소년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하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디제잉은 매력이 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20000630 | 조아 zooa@cartoon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