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이 최초로 대중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록 음악의 강력한 비트라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랩이 이처럼 강경한 목소리를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게토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었다는 사회적 변화의 양상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테크놀로지의 계속되는 발전으로 인해 메시지에 걸맞는 음악적 양식을 빌어다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최초의 하드코어 랩 그룹인 뉴욕의 3인조 런 디엠씨 Run-D.M.C.는 음악적으로는 헤비 메탈의 강력한 리프와 샤우팅 창법을 이용한 거칠고 공격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며, 메시지 면으로는 이후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y의 정치적인 메시지와 N.W.A.의 쾌락적인 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하였다. 그들의 1986년 3집 앨범, [Raising Hell(야단법석을 떨며)]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타와 베이스, 건반, 드럼 등의 악기를 세션맨의 직접적인 연주로 담아 화제를 모았다. 특히 백인 록 그룹 에어로스미쓰 Aerosmith의 스티브 타일러 Steve Tyler와 조 페리 Joe Perry를 끌어들여 녹음한 “Walk This Way”는 랩 음악으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팝 차트 4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이는 아울러 그들에게 랩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MTV에 등장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록과 랩/힙합, 백인과 흑인 뮤지션간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이후 랩을 둘러싼 크로스오버의 초석이 된 작품이다. Run-D.M.C. “Walk This Way” 런 디엠씨의 음반을 공동제작한 이가 바로 릭 루빈 Rick Rubin과 러셀 시먼스 Russell Simmons였으며 이 앨범은 이들의 데프잼 DefJam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1984년 뉴욕에서 러셀 시먼스와 함께 데프잼 레이블을 설립한 릭 루빈은 랩과 훵크, 메탈 사운드를 접목한 소위 ‘랩 메탈 rap metal’ 음반을 다수 제작하여 1980년대 중반 이스트코스트 랩/힙합 씬을 주도했으며 동시에 랩/힙합을 장르로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데프잼의 래퍼들인 런 디엠씨, 비스티 보이스 Beastie Boys, 엘 엘 쿨 제이 L. L .Kool J는 흑인방송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직접 뉴욕의 레코드샵 앞이나 공터, 대학 캠퍼스 등을 찾아다니며 라이브를 함으로써 랩의 활로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런 디엠씨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점은 랩을 몇몇 싱글 중심의 작업이 아니라 앨범 위주의 작업이라는 가능성으로 확장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런 특징 역시 그들이 록 음악적인 관습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게다가 네그리튜드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격한 목소리로 외치는 창법은 저항을 부르짖는 하드로커의 외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음악은 진정한 랩의 독창적인 어법에 기초한다기보다는 록 음악의 관습에 상대적으로 많이 의지한 크로스오버적인 사운드에 가깝다. 독창적인 랩의 어법에 기반한 하드코어 랩 사운드는 퍼블릭 에너미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다. 그전에 과도기적 실험적 양상을 보여주는 그룹으로 먼저 비스티 보이스를 살펴보아야 한다. 비스티 보이스: 컷 앤 믹스에서 컷 앤 페이스트로 비스티 보이스의 1986년 데뷔 앨범 [Licensed To Ill]의 예기치 못했던 성공은 상반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같은 이유 중 하나로 이들이 백인 트리오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흑인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랩을 연주할 수 없다는 힙합 순수주의의 소산일 수도 있고, 고귀한 백인이 랩을 연주한다는 인종 차별주의적 발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의 음악에 대한 세간의 평은 ‘문화적 표절 cultural pirating’이라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들 음악은 밴드 결성 당시 하드코어 펑크 밴드로 출발한 그들의 이력에서부터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따라서 “그들은 랩을 포스트펑크의 전통의 부분으로 취급했으며, 여기서 힙합과 펑크의 D.I.Y.정신은 유사성을 가진다”는 토마스 얼와인 Thomas Erlwine의 주장이 설득력있어 보인다. 그들의 초기 음악에서 펑크로부터 빌어온 하드록적 어법이라든가, 마초적인 이미지(폭력적인 가사와 롤링 스톤스의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성차별주의적 무대 연출 등)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릭 루빈과 런 디엠씨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데뷔 앨범은 강력한 메탈 기타의 리프와 힙합 비트, 직설적인 가사와 샤우트한 랩 등 런 디엠씨의 그것과 유사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런 디엠씨가 들려준 흑인들의 분노에 넘친 외침과 달리 이들은 보다 개인적인 주제를 들고 왔으며(“Fight for Your Right to Party”), 에어로스미스, AC/DC, 레드 제플린 등 하드록과 TV쇼의 테마송 등으로부터 빌려온 다양한 샘플을 창조적으로 조합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은 데프 잼을 떠나 LA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Beastie Boys “Hey Ladies” <더스트 브러더스 Dust Brothers가 프로듀스한, 과소평가받은 그들의 두 번째 앨범 [Paul’s Boutique](1989)로부터 그들은 장르를 넘나들고, 팝 문화에 대한 자의식을 보이는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앨범들인 [Check Your Head](1992), [Ill Communication](1994)을 통해 이들은 다시 악기를 손에 들고 키보디스트를 밴드 멤버로 보강하여 록밴드의 오래된 형식과 샘플링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모순없이 조화시킨다. 이들의 음악은 흑인 방송망보다는 주로 얼터너티브 컬리지 라디오 망을 통해 대중들에게 수용되고, 이는 1994년 룰라팔루자 Lollapalooza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참가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이후 발매한 앨범 [In Sound from Way Out](1996)에서는 소울과 재즈풍의 기악곡으로까지 이들의 관심 영역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70년대 팝 문화에 대한 그들의 천착은 훵크, 힙합, 컨트리, 광고 음악 등 다양한 소스들을 한자리에 불러와 전례없는 대중문화의 만화경적인 풍경을 펼쳐보인다. 샘플링을 단순한 그루브감의 창조를 넘어 사운드 콜라주의 가능성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랩의 중요한 기법으로 가장 먼저 정착시킨 것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아울러 랩을 단순한 흑인들의 음악이 아니라 일종의 대안적 문화 현상으로 확장시켰다. 어찌보면 문화적 표절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 비판이 아니라 상찬의 표현어구인 셈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 — TV 영화, 라디오, 올드 팝송, 스포츠, 70년대, 유대인, 블랙스플로이테이션 blaxploitation 등 — 을 농담과 풍자를 통해 도회지 젊은이들의 변방의 문화로 조합해냈다. 회고해보건데 힙합은 이들에게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훌륭한 도구를 제공해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뮤지션이라는 범주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그랜드 로열 Grand Royal이란 레이블을 경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동명의 잡지도 발간한다. 아담 호로비츠 Adam Horovitz는 때때로 영화출연도 하고 있으며, 마이크 디 Mike D는 엑스-라지 X-Large라는 옷 레이블에도 관여한다. 티벳 불교에 심취해있는 아담 요크 Adam Yauch는 1997년 여름 티벳 난민들을 위한 이틀간의 콘서트를 주최한 바 있다. 퍼블릭 에너미: 흑인을 위한 제국의 건설 <1980년대 뉴욕의 하드코어 랩/힙합씬의 대미를 장식하며, 1990년대 웨스트코스트 갱스타 랩의 득세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준 건 1980년대 후반 데프잼의 간판이었던 퍼블릭 에너미였다. 래퍼인 척 디 Chuck D와 플레이버 플래브 Flavor Flav, 그리고 선 오브 바자렉 Son of Bazarec을 비롯한 다수의 DJ로 구성된 뉴욕의 랩/힙합 팀은 1987년 데뷔 이래 단순히 흑인의 생각과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흑인들을 대상으로 인종 문제와 흑인 정신에 대한 정치화와 사회적 이슈화를 목표로 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랩이란 백인놈들에게 흑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를 가르쳐주는 것”이라는 척 디의 발언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랩이라는 형식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데프잼 특유의 록 사운드와 힙합 리듬의 조화 속에 방송의 아나운스먼트나 사이렌 소리, 말콤 엑스를 비롯한 흑인 운동가들의 멘트와 요란한 스크래치로 뒤덮인 그들만의 독특한 음향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그들의 음악은 “랩은 검은 CNN”이라는 그들의 태도를 담는 최상의 형식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밤 스쿼드 The Bomb Squad라 불리는 제작 팀에 의해 만들어지는 퍼블릭 에너미의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비스티 보이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소스로부터 빌어온 샘플링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퍼블릭 에너미는 음악보다 비음악적 음향 재료들로부터 많은 샘플을 빌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징적인 장르나 선율, 리듬을 가져와 거기에 랩을 덧붙이는 기법보다 방송 잡음과 거리의 소음, 사이렌, 일상 대화 등을 현란한 스크래치와 함께 섞어 현장감을 강조하는 기법을 선호한다. 그리고 여기에 걸맞는 입체감을 창조하기 위해 양쪽 스피커의 음량 배분이나 텍스처의 굴곡 등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해적 방송을 듣는 듯한 혹은 집회에 참가한 듯한 흥분감을 전해준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흑인 특유의 유연한 리듬감과 관악기의 독특한 사용을 들 수 있다(이 또한 비스티 보이스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들은 때로 여러 대의 드럼 머신을 사용하여 동시에 다른 리듬 패턴을 운용하는데, 이는 바로 무정부적인 그들의 메시지와 적절히 부합하는 음악적 장치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훵키한 그루브감을 잃지 않는다. 척 디의 저음의 위압적인 랩 보컬은 플레이버 플래브의 우스꽝스러운 랩과 적절히 어울려 대중적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다가가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랩/힙합이 갖는 기술적 가능성을 철저하게 흑인적인 어법으로 사용함으로써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고집은 때론 프로페서 그리프 Professor Griff의 반유대인적 발언이라는 좋지 못한 모양새로 드러나기도 했으며, 랩이 사회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FBI의 한 보고서에 그들이 언급되기도 했다. Public Enemy “Bring tha Noize(w/Anthrax)” <“Bring the Noise”, “Don’t Believe the Hype”, “Fight the Power” 등 선동적인 제목을 단 일련의 싱글들, 그리고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 [Fear Of Black Planet](1990) 등의 앨범은 흑인 사회뿐 아니라 백인 사회에도 문화적 정치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1992년 10월 뉴스위크지가 뽑은 100인의 문화 엘리트에 팀의 래퍼인 척 디가 선정되기도 했다. 차트를 지배하는 상업화된 랩 파티의 배경 음악으로 출발한 랩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흑인 게토의 열악한 상황과 몇몇 재능있는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흑인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장르로 정착하였다. 가장 먼저 대중적으로 그 존재를 알린 랩 스타일은 강성 흑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하드코어 랩이었으며, 록 음악의 어법의 도움을 받은 하드코어 랩은 서서히 독자적인 장르 고유의 미학들을 갖추어가게 된다. 랩/힙합은 1989년 3월 11일자로 랩 싱글 차트가 빌보드 지에 신설되면서 하나의 대중음악 장르로서 대중적인 공인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당시 싱글 챠트를 휩쓴 뮤지션들은 하드코어 래퍼들이 아니라 춤추기좋은 비트에 맞춰 적절한 래핑과 팝적인 선율을 결합한 랩 댄서들이었다. 당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이들을 열거해보면 힘있는 래핑과 근육질의 몸매, 멋진 춤솜씨로 랩/힙합 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엠씨 해머 MC Hammer를 비롯하여, 감미로운 팝적 감각을 랩과 결합시켰던 밀리 바닐리 Milli Vanilli, 만능 엔터테이너 듀오 디제이 제지 제프 앤 프레쉬 프린스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묵직한 저음과 록적인 비트를 앞세워 남성적 매력을 강조한 톤록 Tone Loc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바닐라 아이스 Vanilla Ice, 마키 마크 앤 훵키 번치 Marky Mark & Funky Bunch 등 외모만 믿고 시류에 편승한 백인 래퍼들도 당연히 이같은 흐름에 합세한다. 결국 199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은 뉴욕의 데프잼 중심의 공격적인 하드코어 랩의 퇴조와 LA 중심의 갱스타 랩의 등장을 위한 일종의 공백기인 셈이었다. 랩 댄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솔트앤페파 Salt-N-Pepa와 패츠 보이스 Pats Boys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가볍고 톡톡 튀는 리듬과 애정과 신변잡기를 내용으로 하는 부담없는 가사, 샘플링 기법을 통한 친숙한 선율의 활용 등으로 인해 흑인 대중은 물론 백인 청중들에게도 쉽게 어필하였다. 랩이 근본적으로 댄스 음악에서 출발하였고, 사운드 속성상 쉽게 상업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와 같은 흐름들은 비록 흑인들의 일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하드코어 랩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랩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19970421 | 양재영, 장호연 coct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