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n(씨족): 부계 혹은 모계를 통해 한 시조의 자손으로 인정되는 사람들로 구성된 단계혈통집단 혹은 그에 해당하는 범주. 그러나 시조와의 정확한 계보적 연계는 모른다. Clan의 성원들은 서로간에 사회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 의무와 권리관계를 갖게 되며, 혈통과 계보 상의 서열이나 나이에 따라 경제적, 사회문화적, 혹은 정치적 파워를 지닌 (비)공식적 지도자에 의해 씨족의 질서는 유지된다.

인류학에서 정의되는 “clan”의 개념이 이렇다면, Wu-Tang Clan은 가장 이 개념에 충실한 “clan” 집단이다. 첫째, 우탱은 비슷한 음악적 정체성을 가졌다고 인정되는 9명의 성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유하는 음악적 성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결코 분명치 않다. 그들의 음악과 스타일은 흑인 게토, 중국(으로 포장된 홍콩식) 무술, 아프리카니즘간의 잡탕 아이덴티티의 표본이다. 둘째, 그리고 각각의 멤버들은 다른 성원들에 대해 쌍방간에 절대적인 권리와 의무관계를 가진다. 결코 한 사람이 솔로 음반을 발표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등돌리지 않는다. 반드시 “featuring” 해줘야 한다. 성원들 각자는 솔로음반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진정한 솔로가 아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clan의 멤버이며, 혹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crew”들이기도 하다. 셋째, 개성 넘치는 여덟 명의 우탱 MC들을 사운드 면에서나 비즈니스 면에서 이렇게 묶어 내는 탁월한 리더가 존재한다. 씨족장 Rza의 사운드스케잎과 영민한 비즈니스 전략은 우탱 클랜을 유지하고, 우탱 클랜을 규정하는 절대적 힘이다.

알다시피, 우탱 클랜의 기념비적 데뷔앨범 [Enter The Wu-Tang(36 Chambers)]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93년은 Dr. Dre의 G-Funk와 웨스트코스트 갱스타 랩이 힙합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동시에 힙합의 위기로 간주되기도 한다. 힙합이 음악적으로 MCing과 DJing이 결합된 양식이라고 조건을 단다면 말이다. MC의 라임을 만들어내는 보컬 테크닉은 갱스타 래퍼들(물론 각자는 목소리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긴 하지만)의 다소간 일관된 창법에 의해 1980년대보다 단조로워졌고, 이들의 사운드에서는 DJ들의 현란한 턴테이블리즘이나 리믹싱과 샘플링 기술의 묘미보다는 나긋나긋한 신시사이저의 선율이 더욱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러한 대세는 우탱 클랜의 데뷔앨범을 기점으로 역행하기 시작한다. 뉴욕시의 제5 구역인 Staten Island 출신인 우탱 클랜의 상업적, 음악적 성공은 단순히 웨스트코스트 갱스타랩과 G-Funk 헤게모니에 대한 이스트코스트의 대대적 역공일 뿐 아니라, 더 큰 힙합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MC 중심의 힙합이 부활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들의 기막힌 가명들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다양한 테크닉의 MC들이 쏟아내는 현란한 래핑과 고도의 마이크로폰 스킬(갱스타 래퍼의 단조로운 스타일과 대조되는),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가사(역시 갱스타래퍼의 호언장담식 허풍과 대조되는), 홍콩영화를 방불케 하는 춤(혹은 액션)은 단번에 힙하퍼들을 사로잡았다. 우탱 클랜에 의해 촉발된 MC 테크닉에 대한 강조는, 이후 또 다른 지점에서 환생하는 DJing과 함께 9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힙합 씬의 전반적인 부활, 혹은 확장의 근간이 되었다.

한편으로 우탱 클랜 식의 스타일은 현재 힙합 문화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다국적,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적 “hybrid”(튀기)의 출발점이 되었다(Hip Hop in New York, New York in Hip Hop 참조).

따라서 많은 평론가들이, “Public Enemy의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이 80년대의 힙합 씬을 대표하는 앨범이라면, 90년대 힙합 씬의 정수는 당연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36 Chambers)]이다”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우탱 클랜이 힙합 씬 뿐 아니라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항상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이 외에도 독특한 그들만의 비즈니스 전략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93년 데뷔 음반 이후 전개된 그들의 작업방식은 앞서 얘기했던 “clan”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모방한 것이었으며, 한 동안 팬들과 비평가 양자 모두에게 큰 흥밋거리가 되었다. “Wu-Tang”이라는 “brand name”이 정착된 상황에서, 그 성원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앨범제작 방식은, 연이은 개별적 솔로 작업의 지속적인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즉 Rza의 프로듀싱과 우탱의 MC라는 것만으로 들어보지도 않고 힙하퍼들이 무조건 판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상업적 전략인가? (현재 대부분의 메인스트림 힙합 씬의 음반들이 “brand name”화된 레이블과 거물 프로듀서의 이름을 빌려서 발매되며 이를 통해 상업적 성공을 보장받는 것도 이러한 우탱 클랜 식 전략의 영향이 크다. 가령 “Ruff Ryders의 새로운 여왕 Eve”, 이렇게 선전을 하면서 Eve라는 신인 여성래퍼는 빌보드 앨범차트에 1위로 곧바로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우탱들 만의 독특한 무기는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녹슬고 있는 것 같고, 나아가 그들의 최근 행보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실 [Enter The Wu-Tang(36 Chambers)]의 발매 이후 94년에서 96년 사이에 연이어 나온 각 멤버들의 솔로 음반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알다시피 [Enter The Wu-Tang(36 Chambers)]는 각 래퍼들의 현란한 마이크로폰 스킬과 Rza의 사운드스케이프의 절묘한 조화를 음악적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터운 텍스쳐, 단단한 비트와 다양한 우탱 래퍼들의 라임과 스타일과의 완벽한 결합은 각자의 솔로 앨범에서도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Tical], [Return To The 36 Chambers].

우탱의 솔로 프로젝트 1호는 Method Man의 [Tical](1994)이었다. Mary J. Blige와의 듀엣, “You’re All I Need (To Get By)”의 히트와 상관없이, 이 앨범은 Rza 특유의 음산한 샘플링과 부자연스러운 음정의 피아노 톤이 기조를 이루는 사운드와, 다소 약해 보이는 듯해서 오히려 이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는 Method Man의 스타일간의 환상적인 결합을 통해, 빈틈없는, 그러면서도 음울한 색을 기조로 하는 우탱 식 힙합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뒤이어 나온 Ol’Dirty Bastard의 [Return To The 36 Chambers: The Dirty Version](1995) 역시 순식간에 골드 앨범이 되는데, 사실 그의 이름에서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Method Man에 비해, 아니 다른 멤버 누구보다도 골 때리는 보컬 스타일을 지녔다.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떠들어대는 그의 랩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앨범의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듀서 Rza는 이 앨범에서 [Enter The Wu-Tang(36 Chambers)]의 사운드를 보다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이 결코 욕심만은 아님을 입증하였다.

같은 해 여름에는 Raekwon (The Chef)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놓았다. 같은 해 연말에 나온 Gza/Genius의 솔로 앨범과 함께, 우탱의 솔로프로젝트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음반으로 평가받는 [Only Built 4 Cuban Linx](1995)는, 범죄와 고통에 대한 내용으로 뒤덮인 Raekwon의 (슬랭)가사와 Rza 특유의 훵키한 비트와 음산한 샘플링이 정말 시종일관 빡빡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물론 Ghostface Killah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이는 이 작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Gza/Genius의 [Liquid Swords](1995)(실제로는 자신의 두 번째 솔로앨범)는 이러한 우탱들의 솔로 프로젝트의 절정이었다. 역대 가장 우수한 우탱 솔로 프로젝트 음반으로 꼽히는 이 앨범은, Rza의 타이트한 비트가 여전한 가운데, 이전의 다른 멤버들의 음반에 비해 훨씬 MC 자신의 개인적 역량이 돋보인다. Gza의 타고난 보컬 재능과 가사는 왜 그가 우탱의 “라임 마스터”인지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Method Man, Ol’Dirty Bastard, Raekwon, Gza에 비해 명성은 뒤떨어지지만, Ghostface Killah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Ironman](1996)은 상대적으로 앞선 앨범들에 파묻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음반이었다. Rza는 그 특유의 견고한 비트 위에 70년대 초에 유행했던 Al Green 등의 소울 음악의 절묘한 샘플링을 덧칠함으로써, 여전히 우탱적이면서도 이전의 프로젝트들과는 변별성이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으며, 예외 없이 MC의 보컬과 깔끔한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이처럼 90년대 중반 당시의 우탱 멤버 각자의 솔로 앨범은 지극히 우탱스러우면서도 개개인마다의 음색과 라임, 테크닉, 가사를 통해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따라서 연이은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호평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Ghostface Killah의 [Ironman] 이후 그들의 작업은 더 이상 평론가들의 일방적인 호평과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이미 우탱 클랜의 재결합 2집 앨범, [Wu-Tang Forever](1997)는 평론가들 사이의 엇갈린 반응과 상대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고로 인해, 이후의 멤버들의 제 2차 솔로 프로젝트가 상업적으로나 비평면에서 모두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전조가 되었다.

사실 우탱 클랜의 2집 앨범은 여전히 잘 만든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미 1집의 완성도 높은 사운드와 그 직후 2-3년간의 우수한 질의 1차 솔로 프로젝트로 인해 너무도 높아진 사람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에는 벅차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Wu-Tang Forever] 앨범과 마찬가지로, 이후의 우탱들의 제2차 솔로 프로젝트가 1차 때에 비해 상대적인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동시에 질적으로나 그 밀도 면에서 이전의 앨범들보다 떨어진다는 음악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탱 클랜의 ‘씨족장 ‘RZA.

결국 최근 2년여간의 이들의 솔로, 혹은 다양한 형태의 조인트 프로젝트들은, 급기야 우탱 클랜의 음악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는지, 혹은 일시적인 답보 상태에 놓여 있는 지에 대한 팬들과 평자들 사이의 무수한 논란을 현재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음악 외적인 요소들로 인해 그들의 음악에 대한 우리의 판단기준이 흐려진 상태에서, 그들의 음악이 이전보다 퇴보했는지, 아닌 지를 지금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판단기준 상실의 가장 큰 이유는, Rza의 비즈니스 전략에서 비롯된 듯한 우탱 앨범들의 쉴 새 없는 (재)생산, 즉 과도한 다작에서 비롯된다. 사실 최근 2년여 사이에 한 달이 멀다하고 우탱 멤버들의 앨범이 쏟아져 나왔다. 본인의 이름으로,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Bobby Digital!), 멤버들끼리의 혹은 다른 뮤지션들과의 조인트 프로젝트로(Method Man/Red Man!), 히트곡 모음(Wu-Chronicles!) 혹은 여러 주제의 컴필레이션 음반으로(The Ghost Dog soundtrack 앨범!)… 이렇게 쉴새 없이 우탱들의 이름을 빌린 앨범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잡지책을 보거나 레코드 가게에 들려도 누구의 앨범이 언제 나왔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Raekwon의 새 음반이 나왔다 해도, “어, 몇 달 전에 판을 냈었는데 또 나왔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Ghostface의 막 나온 새 음반을 봐도, “한참 전에 나왔는데 아직도 신보 코너에 계속 진열해 놓고 있네”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clan” 식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음반작업 양식에다, 상업적 욕심에서 비롯된 듯한 이전보다 가속도가 붙은 앨범 발매 주기로 인해 우후죽순 쏟아지는 우탱 멤버들의 앨범들은 현재, 점차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쏟아져 나오니, 우탱 클랜의 열혈광들이라해도 그들의 앨범을 쉬지 않고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평자들이나 일반 팬들 모두 이러한 재생산 작업의 결과물로 쏟아지는 앨범들을, 객관적 청취에 의한 앨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지루한 연작 시리즈와 반복재생산에 대한 편견” 혹은 “초기 우탱 앨범들에 기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탱들의 최근 앨범들이 상업적으로 이전보다 판매고가 떨어지고, 동시에 평론가들과 팬들 양자 모두로부터 음악적으로도 이전보다 많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새 몇 가지 이유로, 올해 거푸 튀어나온 Raekwon과 Ghostface Killah의 신작 앨범들을 듣게 되면서, 아니 그 전에 이미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이 씨디들을 사면서부터 들기 시작한 이런 저런 필자의 생각들은 결국 여기까지 와서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고 멈춰 버렸다. 그들의 현재의 작업들이 생산적인 작업인지 지루한 연작 시리즈인지는 현재로서는 여전히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이 두 음반 중에서 Ghostface Killah의 신작은 한결 낫게 들린다. 아니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나의 편견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최근 2년여 동안 쏟아져 나온 우탱들의 다른 어느 앨범들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다(이 앨범에 대해서는 Ghostface Killah, Supreme Clientele 리뷰 참조). 하지만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우탱 클랜이 드디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으로 몇 장의 솔로 프로젝트들이 더 나오게 되면 그들의 음악적 진로에 대해 대충 가닥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가 될 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들이 장차 다시 모여 내놓을 우탱 클랜의 세 번째 앨범을 들을 때까지는 그들의 현재진행형 작업들에 대한 의문은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20000313 | 양재영 cocto@hotmail.com

관련 글
Ghostface Killah [Supreme Clientele] 리뷰 – vol.2/no.6 [200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