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에 대한 평가들은 늘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들이 진정한 체 게바라(Che Guevara)의 화신인지, 소니가 자랑하는 비장의 무기인지는 정말 판단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하여튼 그들의 가사와 공격적인 사운드, 앨범 재킷에 늘어놓은 참고서들은 한국에서 평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고, 학교에 조교로 있을 때 지켜본 바로는 지속적으로 많은 젊은애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그들에 대해 조금, 아니 상당히 다르게 평가했다. 사실 2주전에 봤던 루신다 윌리엄스(Lucinda Williams)의 공연에 다소 실망을 했던 차에(그간의 평론가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n)과 조지 서러굿(George Thorogood)의 격정과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낭랑함을 모두 흠모하는 그녀의 소리는 내게 혼란만 가져왔으니깐), RATM의 12월 3일 뉴욕 공연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간다는 얘기에 대부분의 이곳 친구들은 비웃음과 어이없음, 의아함이 뒤섞인 묘한 반응들을 보였다. 단순히 RATM의 상업적 저의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 수준의 반응을 뛰어넘어, 그들의 음악은 어차피 아무 생각이 없는 어린애들이 듣는 음악이고 가사는 얼마나 단순하고 유치하며 그들의 쇼맨십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게다가 한편으로 그들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 맨허튼에서 훨씬 떨어진, 뉴욕 시티 근교의 롱 아일랜드에 있는 내소 콜러시엄(Nassau Coliseum)이라는 체육관이기 때문에(여긴, 지금은 뉴욕 레인저스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된 왕년의 명문 프로 아이스하키 구단 뉴욕 아일랜더스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불편한 교통과 체육관 공연의 괭한 사운드에 항상 불만이 있었던 나로서는 그냥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힘들게 구한 표를 팔기도 아깝고, 과연 어떤 애들이 RATM의 공연을 보러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오프닝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힙합 뮤지션 중의 하나인 갱 스타(Gang Starr)라는 점은 자존심 구겨가며 공연을 보러갈 이유로 충분하였다. 게다가 공연이 있었던 날 낮에 만난 흑인 친구(이 친구는 런던에서 1년 반 동안 머물며 그곳 젊은애들의 흑인음악 수용에 대한 조사를 하고 왔는데,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 US Line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을 할 생각이다)의 갱 스타에 대한 호평은 많은 격려(?)가 되었다(물론 RATM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상한 자존심을 안고 공연장으로

운전에 자신이 없어 후배랑 5시에 미드타운에서 롱 아일랜드 행 기차를 타고, 다시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체육관에 도착하니 벌써 6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이미 버스 안에서 살벌한 분위기의 백인, 히스패닉계 10대 남자애들 20여명과 조우를 하며 감을 잡았지만, 체육관 건물 앞에는 수천 명의 10대 중후반 젊은애들(대부분 남자애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애들도 있었고 주차장에서 카오디오를 맘껏 틀어놓고 소리지르고 마리화나 피우고 있는 애들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사실 맨허튼에서 보았던 공연들은 모두 만 18세 혹은 20세 이상으로 나이가 제한되고 술을 마시며 볼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이건 나이 제한이 없는 정말 10대들을 위한 공연 같았다. 하여튼 입구에서 교회에서 나온 듯한 아저씨의 “지옥(Burning Hell)에 빠지지 말라”는 훈계를 들으며 몸수색을 거쳐 체육관에 들어가니 체육관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썰렁한 분위기였다.

이곳 내소 콜러시엄의 관중석이 1만 7천명을 수용하는 공간이고 거기에 아이스하키 링크를 녹여서 플로어 객석으로 썼으니 실제 들어설 수 있는 관객 수는 2만 명쯤 될 것 같지만, 하여튼 반쯤 관중이 들어선 가운데 7시 30분 정각에 이름을 모르는(혹은 듣지 못했던) 4인조 밴드가 잽싸게 나와서 30여분 열나게 연주를 해댔다. 펑크, 힙합, 쓰래시를 뒤섞은, 말 그대로 RATM의 소리를 (심지어 외모까지) 거의 베낀 듯한 밴드였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마치 한국의 중고등학교 소풍 풍경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이 쉬지 않고 객석을 돌아다니고 마리화나랑 담배를 피며 잡담을 나눠댄다. 이 체육관의 위치상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지역, 즉 뉴욕 시티 근교의 전형적인 교외의 백인 히스패닉 10대들이라고 볼 때, 이런 대형 공연은 가뭄에 콩나듯 접했으리라 보이는데, 하여튼 굉장히 들뜬 분위기였다.

끝났는지도 모르게 이 밴드가 들어가고 20분 정도 쉰 뒤에 드디어 오늘의 오프닝, 갱 스타가 나왔다. 사실 RATM이랑 갱 스타가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는 조화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재즈 힙합과 쓰래시 힙합은 정말 다르지 않은가), 그들이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그 호기심은 쉽게 풀렸다. 이들의 음반이 아주 깔끔하고 훵키한 재즈 사운드를 바탕으로 충만한 라임의 랩과 고도의 DJ 테크닉이 결합된 사운드를 보여왔다면, 공연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하드코어 래퍼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온갖 욕설을 섞은 잡담으로 가뜩이나 들떠있는 애들을 선동하더니 격정적인 랩을 40여분 간 퍼부어 대었다. 뒤쪽의 사운드 시스템에 자리잡은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의 사운드는 거의 들리는 듯 마는 듯 했고, 구루(Guru)와 객원 래퍼들(W.C., Kurupt, M.O.P.)의 고함 소리만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주로 작년에 나온 [Moment of Truth]에 실린 곡들을 들려주었는데, 가뜩이나 욕설이 뒤덮인 곡들에 가사를 바꾸어 더욱 더 선동적인 랩을 퍼부었다. 하여튼 평소에 좋아했던 “You Know My Steez”, “Work” 같은 곡들이 처음에는 다른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 어쨌든 그들의 공연은 체육관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공연장을 꽉 채운 2만여 관중들은 흑인 래퍼들의 힙합 공연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열광적인 ‘콜 앤 리스판스(call and response)’를 보여주었고, 그 와중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담배와 마리화나를 피워대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이미 열광의 도가니

뉴욕 내소 콜리시엄을 가득 채운 2만여명의 관중들은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40여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RATM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30여분간의 쉬는 시간동안 공연장의 분위기는 보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 체육관의 관객은 아이스하키 링크를 녹여놓은 플로어(이곳은 보다 화끈한 애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공간의 60% 정도만 채우게 하고 공간의 여유를 두게 되어있다)와 만 7천여 명을 수용하는 일반 관중석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경비원들의 엄중한 경비로 양 공간이 살벌하게 분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갱 스타의 공연으로 열기가 고조된 관중석에 있던 몇 명의 아이들이 기습적으로 경비원들의 감시를 뚫고 플로어로 뛰어내려왔고, 이와 동시에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이들의 행동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플로어에 있던 아이들이 관중석을 향해 다들 플로어로 뛰어 내려오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이에 화답하여 수백여 명의 아이들이 경비원들을 쓰러뜨리며 플로어로 쏟아져 내려오고, 공연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다들 윗통 벗고 치고 받고 집어던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미 경비원들의 통제는 불가능해진 채 수천 명의 아이들이 엉겨붙어 집단 격투와 씨름이 벌이기 시작하였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서울 공연도 생각이 났고 급기야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도 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그런 걱정이 시작될 쯤엔 광적인 환호 속에 RATM이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플로어의 아이들은 보다 격렬한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낯선 타지에서 드디어 사고를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탐 모렐로(Tom Morello)가 오프닝 곡 “Testify”의 리프를 진동하는 순간 ‘에라, 다 잊어버리고 공연에나 몰두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탐의 기타는 라이브에서 더욱 불을 뿜었고, 잭의 억수같은 랩은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공연은 예상대로 그들의 최근 신보 [The Battle Of Los Angeles]에 수록된 12곡을 순서만 약간씩 바꾸어 모두 연주하면서 진행되었다. 압도적인 반응 속에 “Guerilla Radio”와 “Mic Check”, “Calm Like A Bomb”이 순서대로 연주되고, 관중석이고 플로어고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일어서서 격투와 춤판을 벌였다. 혹자는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탐의 기타는 라이브에서 훨씬 불을 뿜는 것 같았다. 그는 기타를 통해 그가 자랑하는 사운드 이펙트를 만드는 능력과 리듬와 멜로디를 구성하는 실력을 여지없이 드러냈으며, 그의 기타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주도하기에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브래드 윌크(Brad Wilk)와 팀 밥(Tim Bob)의 둔중한 리듬 라인 역시 이들의 음악에 막강한 파워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중들을 흡입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잭 델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억수같이 퍼붓는 격렬한 랩과 무대 장악 능력이었다. 그의 외침에 모두들 화답하여 다들 고함을 지르며 따라하기를 한 시간, 드디어 “Ashes In The Fall”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무대를 떠났고, 열광적인 환호 속에 다시 그들이 등장하여 1, 2집의 히트곡들인 “Bombtrack”, “Bulls On Parade”, “Killing In the Name” 등의 앵콜 연주를 마치면서 드디어 90여분간의 공연이 막을 내렸다.

난장판을 잠시 잊게 만든 파워 넘치는 공연

체육관에 불이 켜지면서 공연에 몰입하느라 잠시 있고 있었던 걱정들이 다시 떠오르려는 순간, 플로어와 관중석을 둘러보니 그런 걱정들은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애들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나의 수준에서 생각 가능한, 혹시나 했던 체육관 바깥에서의 ‘복수혈전’도 전혀 없었다.

다들 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조용히 집으로 향하는 모습에 묘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진 질서의식’이니 ‘미국식 공연문화’니 ‘미국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 ‘미국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놀이 방식과 질서를 동시에 배우며 자란다’는 식의 생각은 전혀 아니다. 이건 문화를 보는 정말로 웃긴, 뒤틀린 방식 아닌가?) 우선 이들 10대 백인 아이들에겐 우리들이 규정해온 갱 스타의, 그리고 RATM의 음악적 정체성은 아무런 경계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들의 음악은 이 아이들에겐 그냥 3시간 동안 모여서 함께 즐기고 열광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공연을 보면서 RATM의 정치적 메시지는 어떤 진정성을 가지는지, 혹은 상업적인 의도일 뿐인지 생각해보았다.

동시에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온 RATM의 정치적 진정성에 대한 평가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대도시 교외의 10대 중고생들이 주된 수용자 층이라면, 그리고 그들이 별 생각 없이 RATM의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뿐이라면, 마이너리티의 인권을 옹호하고, 기득권 정치적 탄압, 문화제국주의 등을 비판하는 RATM의 가사와 행동이 정말로 정치적 진정성을 내포한 것인지 혹은 상업적인 이용인지를 의심하고 가리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음반산업의 전략과 일정을 바탕으로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10대들에 맞춰 매니지먼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여튼 더 이상의 생각을 하는 것은 공연장에서 느꼈던 나름의 즐거움, 모처럼의 젊음의 열기와 쓰릴(?)을 사장시킬 것 같아서 가능한 이 기분만을 간직하자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 이외의 잡념들은 잊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만난 친구가 공연이 어땠냐고 비웃듯이 묻기에, 별 거리낌없이 그냥 10대로 돌아간 것 같이 너무 즐거웠다고 얘기해주고,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어쨌든 기대보다 훨씬 재밌고 신나는, ‘살벌한’ 공연이었으니깐… 19991210 | 양재영 coct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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