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도 어김없이 무수한 뮤지션들이 뉴욕을 찾아왔다. 트리키(Tricky),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데이 마잇 비 자이언츠(They Might Be Giants; 이하 TMBG), DJ 섀도(DJ Shadow), 모비(Moby),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 리 폴(Les Paul) 정도는 정말 군침을 흘리게 하는 공연들이었지만, 경제적 사정, 시간을 고려할 때 한 달에 둘 혹은 셋 이상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DJ 섀도(10/19), TMBG(10/21), 모비(10/28)만이 나의 선택이 되었다. DJ 섀도는 정말 벼르고 벼르던 공연이었으니 결코 빠뜨릴 수 없었고, 80년대 후반 뉴욕 포스트펑크 언더그라운드 씬의 간판 중의 하나였던 TMBG의 모처럼의 귀환 역시 드문 기회이고, 모비의 끊임없는 변신을 보는 즐거움도 놓칠 순 없었다.

하지만 모비를 보려는 소망은 일찌감치 날아가 버렸다. 같은 날 한국에서 날아온 임동창, 신영희, 백인영 씨 등의 조인트 국악 공연이 링컨 센터에서 있는데, 글쎄 거기에 오프닝 비슷하게 출연하는 아는 선배의 압력으로 표를 강매당하고 링컨 센터에 끌려가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욱 가슴이 아픈 건 DJ 섀도의 공연마저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의 이번 미국 순회 공연은 거의 한 도시에서 1일 1회로 한정이 되어있는데, 맨해튼 공연표는 이미 보름 전에 매진이 되어 버렸다(메인스트림 뮤지션이 아닌 경우 이건 정말 드문 일이다). 여기 저기 수소문했지만 표를 구할 순 없었고 갔다와서 뻑간 친구의 장황한 얘기를 듣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장장 3시간 동안 그의 현란한 턴테이블리즘과 사운드스케이프는 공연장을 꽉 매운 백인 남자애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며, 그냥 다들 하입(hype)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 […Entroducing]과 UNKLE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연주될 때의 감동, 마무리로 때린 “Midnight in the Perfect World”는 정말 죽여줬다는 얘기… 이 친구 말로는 DJ 섀도는 자신이 그냥 힙합 디제이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열심히 두 개의 턴테이블을 돌려댔다고 한다. 물론 DJ 섀도가 진정한 힙합 디제이라고 주장하며 소개한, 공연자 빅 케미스트(Big Chemist)가 필라델피아 공항에서 연주에 쓸 판들을 도둑맞는 바람에 제대로 힘을 못 쓴 게 아쉬웠다지만 나에겐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에겐 DJ 섀도가 열심히 판을 돌렸던 바우어리 볼룸(Bowery Ballroom)에서 이틀 후에 열린 TMBG의 공연을 가서 즐기는 것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사실 이 친구들의 공연이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단순히 이들이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성장한 상징적 그룹 중의 하나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은 10년 전쯤으로 기억이 나는데, 코리안 아메리칸이던 사촌동생이 한국에 잠시 들렸을 때였다. 대중음악에 일가견이 있던 이 녀석은 그보다 3년 전에 한국에 와서 자신의 REM, 뉴 오더(New Order), 텐 사우전드 매니액스(10,000 Maniac)의 테이프를 나의 들국화, 따로또같이 음반과 교환해 듣고 서로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생각해보라. 누가 한국에서 1986년에 뉴 오더와 텐 사우전드 매니액스 음악을 제대로 알고, 하물며 즐길 수 있었겠는가). 하여튼 3년 후에 다시 한국에 온 나의 사촌동생은 이번에는 TMBG와 빌리 브랙(Billy Bragg)이라는 정말 이름도 듣지 못한 친구들의 씨디를 들어보라고 권해주었다. 빌리 브랙이야 1996년에 한국에서 본 영화 [Walking and Talking]과 그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접하게 되면서(물론 그의 음악은 그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잔잔한 감동과 묘한 흥분을 느꼈었지만, TMBG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다가 10년 만에 다시 뉴욕에서 이름을 듣게 되었으니 그들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나름의 설레임을 줄 수밖에 없었다.

8시에 입장해 바에서 술 한잔 하면서 기다리니 9시에 마이크 비올라 앤 캔디 부처스(Mike Viola & Candy Butchers)라는, 막 이틀 전에 새로 음반을 낸 4인조 밴드의 오프닝이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이 친구들의 근사한 음악과 무대 장악 능력은 본공연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류의 아우라에 비틀스(Beatles)의 멜로디, 혹은 월 플라워스(Wall Flowers) 혹은 베어네이키드 레이디스(Barenaked Ladies)를 닮은 사운드와 브라스 라인이 이루는 묘한 조화는 아주 깔끔한 팝(?), 혹은 스트레이트한 록을 만들어냈다.

Opening Band인 마이크 비올라 앤 캔디 부처스의 공연 모습

드디어 10시 30분에 TMBG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고, 공연장을 꽉 매운(물론 스탠딩 공연장이고 한 480여명 정도가 된 것 같은데)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속에 이 밴드의 간판 듀오인 존 플랜버그(John Flansburg)와 존 리널(John Linnel)이 무대에 올랐다. 이미 90년대 초반에 4인조 밴드로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사실 TMBG는 80년대 내내 듀오였다. 당시 이들은 드럼머신을 틀어놓고 기타와 아코디언을 각각 메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독특한 구성의 공연을 빌리지에서 게릴라 식으로 무수히 진행하였고, 전화를 통한 음성 사서함 형태로 자신들의 노래를 뉴욕의 젊은이들에게 소개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친숙한 멜로디와 온갖 종류의 장르에서 빌려온 ‘무한 절충주의’의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트와 날카로운 풍자, 코미디까지 가미한 가사의 절묘한 조화는 그들의 1986년과 1989년의 초기 정규앨범을 그들의 대표음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존 플랜스버그의 1부 공연

어쨌든 이 친구들은 공연장에 모인 백인 청중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할려고 했는지(공연장에는 거의 100% 백인 청중들이었는데, 이들 중 반 이상은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과거부터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듯한 사람들이었다), 1부 공연을 10년 전의 포맷과 음악으로 해보고 싶다고 했고, 실제 한 시간 내내 사람들을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웬걸, 그들에 대한 별다른 추억꺼리가 없는 나에게 이건 무슨 악극단 공연 같은 느낌 이상을 주지 못 했다. 너무도 뽕짝같은 멜로디에 장난같은 가사, 뚝딱거리는 정말 골동품 드럼머신에, 심지어 아코디언까지… 과거의 재구성은 그 과거를 상상의 형태로나마 지닐 수 있는 사람들(가령 여기 모인 20대의 백인 청중들은 ‘그땐 그랬었지’ 하는 착각으로 음악을 즐겼을 것이다)에게까지는 먹혔을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우스꽝스러운 무대는 무감할 뿐이었다.

2부는 드디어 현재의 라인업인 4인조 밴드의 공연이다. TMBG는 대표적인 포스트그런지의 희생자로 꼽힌다. 다른 여느 도시도 그랬겠지만, 그런지 이전까지만 해도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씬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었다. 사실 포스트펑크 씬의 아방가르드 미학은 어떠한 형태의 콜라주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음악적 절충주의가 나올 수 있었다. 멜로디와 가사, 사운드의 구성 전체에 스며있는 가공할 위트와 코믹 감각은 TMBG를 소닉 유스(Sonic Youth)와는 스펙트럼 상에서 정반대 쪽에 위치시켰다. 결국 90년대 초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에 이르는 그런지의 독점 현상과 이후 포스트그런지 밴드들의 우후죽순 출현은 그 계통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밴드들, 특히 언더 씬의 밴드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소닉 유스가 그런지와 포스트그런지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은, ‘TMBG는 망했다’는 것의 동전의 양면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친구들은 90년대 중반 뉴펑크와 포스트그런지를 절충한 사운드의 록밴드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지만,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의 사운드는 대중과 평단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TMBG의 2부 공연

하여튼 이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정신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여전히 대학가의 인기 밴드 중의 하나답게 모여든 청중들에게 댄스와 열광을 제공해주었지만, 오히려 1부보다 분위기는 가라앉는 듯했다. 나의 기분은 어땠을까? 연로한 나이에 튀어나온 배, 캐주얼 차림의 이들이 1시간 가까이 제공하는 펑크에서 빌린 듯한 어정쩡한 사운드는 전혀 흥겹지가 않았다(물론 나이든 사람들이 록을 하는게 우습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별다른 정체성 없는 이들의 음악은 이들이 정말 거인이 될 뻔이라도 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TMBG의 간판, 존 플랜스버그(좌)와 존 리널(우)

새벽 1시에 공연장을 빠져나오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지와 포스트그런지가 록 씬을 독점하여 당시 공존하던 다른 밴드들의 운명까지 좌우했다는 사실, 그리고 TMBG의 음악에 조그만 감흥조차 가지지 못했던 나… 왜 그랬을까? 한국에서 영미 대중음악을 듣던 이들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메탈, 프로그레시브, 빌보드 팝으로부터 그런지, 포스트그런지를 포함한 얼터너티브 장르로 음악적 관심을 급속하게 변화시켰던 시기였다. 현재까지도 80년대 한국에서 묻혀졌던 얼터너티브 장르의 선대 조상들을 재발굴하는 작업이 평론가와 수용자들에게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직계 조상이 아닌 방계의, 길쭉한 스펙트럼의 반대 쪽에 위치하던 일군의 무리들은 여전히 묻힌 채 썩고 있다. 80년대의 일렉트로닉 팝을 들으며 ‘그땐 그랬지’하고 즐거워하며, 재즈, 그런지를 거쳐 힙합과 테크노에 이르는 편식에 길들여진 나의 귀에 TMBG의 우스꽝스러운, 혹은 그렇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사운드가 척척 감겨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0년 전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으며 느꼈던 생경한 느낌이 이제는 완전한 낯설음으로 변한 것 같다.

사실 모비나 DJ 섀도의 공연을 보러갔다면 이런 이방인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친구들과 공유할 수 없는 과거의 단절된 부분이 음악에도 존재하는 이상, 이들이 음악을 수용하고 즐기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9991030 | 양재영 cocto@hotmail.com

디스코그래피
They MIght Be Giants (Restless, 1986)
Lincoln (Restless, 1989)
Flood (Elektra, 1990)
Apollo 18 (Elektra, 1992)
John Henry (Elektra, 1994)
Factory Showroom (Elektra, 1996)
Severe Tire Damage (Restless, 1998)
Long Tall Weekend (Restless, 1999) (emusic.com에서 MP3로만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