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아메리칸 록 음악의 대부(Godfather)” ([Yellow Kitty]) “미국 인디 팝의 수퍼히어로” ([Detour], 1995년 9월) “아시안 아메리칸의 역할 모델(role model)” ([Detour], 1995년 9월) “인디 음악계의 심, 인종 장벽을 허물다” ([China News], 1999년 2월 12일) 위 문구들은 100만명의 ‘코리안 아메리칸’ 중의 한 명인 박수영에 대한 인용들이다. 대부분 찬사들이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 우리들에게 그의 이름은 왜 이렇게 낯선 것일까. 물론 ‘인디 록 매니아’들만이 그의 음악에 주목한 적이 있다. 더군다나 그가 한국인이라서 주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음악이 ‘한국인 같지 않게 록 음악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박수영은 영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20대에 접어든 이후 배운 한국어 솜씨는 서투르다. 1967년 생인 박수영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그에 관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인터넷 팬사이트(http://seam.dhs.org)를 들어가 봐도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하여 시카고로 이주했다”는 사실 외에는 ‘mysterious’하다는 평만을 하고 있다. 그의 연배, 출신 지역으로 미뤄 볼 때 박수영은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나 빌리 코건(Billy Corgan) 등 ‘얼터너티브 록’의 주역들과 비슷한 감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과 다른 점은 그가 록 음악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아시안계 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오하이오의 오벌린 대학에 재학 중일 때 이미 비치 매그닛(Bitch Magnet)이라는 인디 밴드를 결성하여 1987년부터 1989년 말까지 3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박수영은 1991년 시카고로 이주하였고 그때부터 1995년까지 심의 이름으로 [Headsparks](1991), [The Problem WIth Me](1993), [Are You Driving Me Crazy?] 등 세 장(최근 것까지 포함하면 네 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미국 중부의 로컬 인디 씬을 대표하는 밴드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자리잡았다. 심은 1993년에는 미국의 인디 록을 대표하는 연례 페스티벌인 ‘롤라팔루자’에도 초청되었고, 지역의 평단은 물론 [얼터너티브 프레스], [CMJ] 등 ‘얼터너티브’ 성향의 전국적 국제적 평론지의 단골 손님의 하나가 되었다. 그의 지위를 상징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보자. 1980년대 미국 인디 씬의 영웅이자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심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1995년 공연에서 스타이프가 사인을 해달라는 팬들을 뿌리치고 달려간 이유가 박수영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는 일화가 있다. 한 평론가의 견해이겠지만,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가 심의 “서서히 타오르다가 노기를 발산하는(slow burn, followed by exhale)” 음악을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맞다, 심의 활동 근거지인 시카고는 스매싱 펌킨스라는 슈퍼 밴드의 출신 지역이기도 하다(사족이지만 그 밴드에는 일본계 미국인 멤버가 있다). 하지만 스매싱 펌킨스가 시카고의 전부는 아니다. 시카고의 언더그라운드는 전반적으로 ‘실험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 중 일군의 그룹은 포스트록(postro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포스트록이란 ‘록 밴드의 편성을 가지고 록 음악을 넘어서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심의 음악도 관습적 록 음악으로부터는 많이 벗어나 있어서 평론가들은 때때로 심을 포스트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실제로 심의 음반에 정규 멤버 혹은 세션으로 참여한 인물들은 시카고 언더그라운드의 ‘포스트록 엘리트’들이 많다. 그렇지만 노래 형식 없이 악기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포스트록 밴드와는 달리, 심의 음악에는 거친 기타의 굉음 속에서도 부드러운 멜로디와 속삭이는 보컬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듣는 이의 예상을 빗나가도록 강약과 완급이 급격히 변동하는 음악의 구조는 록 음악이면서도 기성의 록 음악과는 판이한 느낌을 준다. 심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Are You Driving Crazy?]부터 심은 4인조 체제로 안정되었고, 그 중 배이스를 맡은 인물은 또 하나의 코리안 아메리칸인 윌리엄 신(신승우)이다. 이 무렵부터 박수영과 심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것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 아메리칸 록 밴드들을 모아 하나의 씬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에도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Ear Of The Dragon]으로 결실을 맺었다. 앨범 발표 후 여기 참여한 아시아계 록 밴드들인 버서스(Versus), 제이 처치(J Church), 어미니어쳐(aMiniature) 등의 아시아계 미국인 밴드들은 합동으로 순회공연을 갖고 “아시아인들도 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인디 씬에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활동은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동안 록 음악은 백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고 심의 청중도 주로 백인 청년들이었다. 따라서 [Ear Of The Dragon] 순회공연에서 청중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시아인이 록 음악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회의적 반응은 하나의 장벽이었고,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아시아계 미국인 사회) 내에서도 냉소를 보내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1995년의 ‘절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디 씬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씬(이른바 AsAm indie scene)’이 단발성 행사로 그친 것은 아니다. 박수영은 재능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뮤지션을 발굴하기 위해 벤 킴(Ben Kim)과 함께 ‘포춘 포(Fortune 4)’라는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포춘 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뮤지션 사이에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비영리로 운영하였다. [Ear Of The Dragon]도 ‘포춘 포’의 결실 중 하나이다. ‘포춘 포’는 현재 FAAIM(The Foundation For Asian American Independent Media)으로 진화했는데, 이 단체는 문자 그대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독자적인 매체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백인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아시아인들 사이의 소통을 돕고 있다. 한 예로 박수영은 시카고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한 데 모으기 위한 영화 페스티벌인 ‘아시아계 미국인 쇼케이스’를 조직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쇼케이스’는 시, 음악 등의 분야로 포괄하게 되어 시카고의 아시안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성장하였다. 3년간의 노력 끝에 이 쇼케이스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고 박수영은 자의반 타의반 ‘아시안 커뮤니티의 대변자’라는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박수영의 여러 활동은 정력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록 밴드 심’의 상황은 다소 불투명하다. 그동안 여러 번 멤버 교체가 발생했고,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탈퇴한 기타리스트 렉 슈레이더(Reg Schrader)를 대신하여 어미니어처의 존 리(John Lee)가 도와주기로 했다(존 리 역시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심의 멤버들은 음악 활동 이외에 별도의 생계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레코딩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반스 & 노블’에서의 커피 서빙, 웹 페이지 구축, 도서관 서적 정리 등이 그들의 생업이다. 리더인 박수영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심은 네 번째 앨범 [The Pace Is Glacial]을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Little Chang, Big City”나 “Nisei Fight Song”은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질문한 최초의 록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올해 초에는 대만의 타이페이에서도 초청 공연을 가져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된 박수영은 최근 들어 부쩍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고민 뿐만 아니라 적극적 표현 수단을 찾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심과 박수영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거의 없다. ‘훌륭한 재외 한국인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시비거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국내의 ‘uncool’한 문화적 분위기다. 이번 그의 방한도 극히 ‘인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몇 차례 한국을 ‘조용히’ 방문한 박수영이 다시 한국을 찾았고, 마침 소규모 연례 페스티벌 ‘소란’ 을 준비하던 ‘인디 평론가 단체’인 얼트 바이러스와 연락이 닿아 방문 일정 중 ‘소란 99’에 참여하게 되었다. 심은 아무런 개런티를 요구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했다. 10월 29일-30일 광운대 문화관 대극장에서 우리는 ‘에스닉 코리안’인 그가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박수영은 한국 방문 일정 중 국내 인디 록의 기대주인 델리 스파이스의 레코딩 참여와 인디 레이블인 ‘강아지’를 통한 라이센스 음반 발매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위에서의 무관심’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번 일이 어떤 성과나 파장을 낳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보도 매체에서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자랑스러운 한국인’, ‘우리는 하나’, ‘한국인의 특유의 정서(‘한’?)와 미국 인디 록의 결합’, ‘인디 씬의 한미 교류’ 등등 피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런 말들에 신경쓰지도 말고 그리고 박의 ‘국적’과 ‘인종’을 묻지도 말자. 심과 박수영과 ‘귀찮은’ 질문보다는 ‘Are you driving me crazy?’라는 환호성을 듣고 싶어 할테니까. 19991017 | 신현준, 이용우 homey@orgio.net 디스코그래피 Granny 9X (7″), Merge Records, Feb. 1992. Days of Thunder (7″), Homestead Records, Mar. 1991. Headsparks (LP, CD), Homestead Records, Mar. 1992. Kernel (7″), Trash Flow Records, Mar. 1993. Kernel (EP, CD), Touch & Go Records, Mar. 1993. The Problem with Me (LP, CD), Touch & Go Records, Sep. 1993. Are You Driving Me Crazy? (LP, CD), Touch & Go Records, Jun. 1995. “Hey Latasha” (CD Single), Touch & Go Records, Aug.1995. The Pace is Glacial (LP, CD), Touch & Go Records, Sep. 1998. Sukiyaki (7″), Ajax Records, Mar. 1999. 관련 글 Seam live in Madison – vol.1/no.1 [19990816] 관련 사이트 소란 99 홈페이지 http://soran.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