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험한 일 따윈 난 몰라’라고 말하는 듯 천진난만한 소년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포크 팝을 노래하는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일상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언제든지 비수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냉정한 표정의 지독한 농담으로 가득한 현실이다. 연약하게, 하지만 떨치기 어려운 가성의 훅으로 노래하는 엘리엇 스미쓰(Elliott Smith)는 ‘세상과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으로’ 허물어져 가는 주변과의 관계들, 일그러진 친구와 연인의 초상, 외로움, 소원함, 약물, 알콜 등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가능한만큼 일그러뜨린 사운드로 가득찬(지금의 ‘잡종 메탈’에 비해 80년대 헤비 메탈은 직선적이고 단순했다) 90년대 말엽의 가장 기이한 사건으로 기록될 벨 앤 세바스찬과 엘리엇 스미쓰의 부각은 다시금 포크에 대해, 서정성에 대해 논의케 할만큼 뜽금없고, 그만큼 강력하다. 이러한 시점에 벡이 [Mutations]를 발표하며 주변사에 대한 섬세한 내면의 인식을 새삼스럽게 거론한 것은 자신의 작업을 합리화하기 위한 의례적인 보도 자료용 발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상에 대한 냉소의 단계를 넘어선 이들이 인식하는 다사다난함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심각한 싱어송라이터의 자기배설과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지독한 사운드로 형성하는 ‘하드코어’ 밴드의 엄청난 그루브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지독함을 내포하며, 그리고 이러한 측면들은 이들과 70년대 싱어송라이터 선배들과의 분별점을 낳는 이유가 된다. 물론 벨 앤 세바스찬과 엘리엇 스미쓰를 이야기할 때면 닉 드레이크, 도노반, 돈 맥클린 등이 언급되고, 그것은 어느 정도 합당한 근거를 가진 것이지만 동시에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벨 앤 세바스찬은 90년대 중반 영국의 ‘챔버 팝 무브먼트’와 함께 이야기되며 공연시 스미쓰(Smiths)의 곡을 커버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엘리엇 스미쓰가 전직 펑크 밴드 보컬리스트였다는 사실을. Simple Pleasure: 엘리엇 스미쓰 98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초대받지 않은 듯한 손님(일명 ‘weird oscar guy’)의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엘리엇 스미쓰가 비음 강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 특히 개인은 대부분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비극의 ‘조연’들이다. 조용한 골방이 아닌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바(bar)에서 주로 곡을 쓴다는(그는 무척 천천히 술을 마시기 때문에 곡을 쓰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엘리엇 스미쓰의 이야기는 연약하고 개별적인 경험들이 촘촘하게 엮어져 있으며 캠프 송이 아닌 헤드폰으로 주변과 단절한 외톨박이를 위한 것이며 비극의 아우라로 채색된 그의 목소리는 열광하지 않아도 좋은, 차분한 로맨스를 바라는 이들의 감성을 어우르는 감추어진 힘을 가지고 있다. 엘리엇 스미쓰의 연약한 가성은 그의 팔에 새겨진 문신과 공존하며 그가 솔로 활동 이전 포틀랜드에서 활동한 밴드 히트마이저(Heatmiser)는 펑크 밴드로 불리워졌다(물론 네오 펑크 밴드의 그것과는 다른 질감의 사운드였지만). 포틀랜드 토박이인 엘리엇 스미쓰는 닐 거스트(Neil Gust)와 함께 히트마이저를 결성하였고 93년 [Dead Air]를 발표한 이후 94년 4트랙으로 녹음한 솔로 앨범 [Roman Candle]을 발표하며 밴드와 솔로 활동을 병행했다. 히트마이저 멤버들이 밴드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의 느낌이 상실됨을 느끼고 엘리엇 스미쓰가 자신의 감성이 강한 리프의 밴드 음악과 맞지 않음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히트마이저는 [Mic City Song]을 마지막으로 발표했고 엘리엇 스미쓰는 95년 셀프 타이틀의 [Elliott Smith]에 이어 97년 펑크의 전당 킬 록 스타 레이블에서 [Either/Or]를 발표했다. [Either/Or]는 엘리엇 자신에게는 힘든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지만(그는 “1년 내내 스스로의 이름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로 머리를 돌렸지만 어떤 종류의 오명이라도 얻을 만한 구석이 내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Either/Or]를 해내는 것 또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앨범을 위해 30곡을 녹음했지만 어떤 곡도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이가 나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팝 마스터피스’라는 수사가 절대 과하지 않은 수작이었고, 엘리엇 스미쓰 본인에게 시인이자 뮤지션이자 멀티플레이어인 ‘싱어송라이터’라는 라벨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굿 윌 헌팅’ 사운드트랙 이후 엘리엇 스미쓰는 메이저 레이블 드림웍스와 계약을 맺고 [XO]를 발표하였다. 엘리엇 스미쓰는 레딩 페스티벌에 초청받을 정도로 네임 밸류가 높아진 지금도 여전히 단촐한 클럽 공연을 고수하고 있으며(공연 시 함께 하곤 하는 백밴드 쿼지(Quasi)는 전 히트마이저의 샘 쿰스(Sam Coomes), 슬리터 키니(Sleater-Kinney)의 자넷 와이스(Janet Weiss)로 구성된 듀오로 이들의 두번째 앨범 [Field]는 올해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어떤 공연에서도 “Miss Misery”를 노래하지 않는다(“사람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잊었을 때 “Miss Misery”를 연주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진심으로 이 곡을 요청하지 않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를 주축으로 한 그의 음악은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호소력을 가지고 있으며 저가 인디 앨범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엘리엇 스미쓰는 로파이 신봉자는 아니지만 4트랙이든 8트랙이든 일급 스튜디오의 장비에서든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잊지 않는다(“난 펑크처럼 어떤 특정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로파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 때 로파이는 대단했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며 좋아한 밴드는 로파이 밴드가 아니었고, 비틀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한 것은 조지 마틴이었다”). 이러한 엘리엇의 면모는 보다 좋아진 조건에서 작업한 [XO](‘good-bye’, ‘see you later’ 등을 의미한다)의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여전히 비교적 적은 트랙이 사용되었지만 [XO]에는 이전과 다르게 어쿠스틱 기타 이외에 피아노, 스트링 등이 추가되었고, 보컬도 여러 번 더빙되었으며 하모니도 충만한 보다 다층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A Soft Touch: 벨 앤 세바스찬 “만일 우리 레코드에 ‘Parental Advisary” 딱지가 붙는다면 아마도 ‘경고: 이 앨범에는 영악하게 꾸며진 감성이 있습니다’ 정도가 아닐까?” 라고 [실렉트(Select)] 지와의 첫 공식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벨 앤 세바스찬에게 순진한 소년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벨 앤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내가 슬픈 노래를 부를 때 누군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면 난 정말 행복할텐데”(“The Boy Done Wrong Again”)라고 그저 센티멘틀한 분위기에 젖어있는 것처럼 노래하지만 그 노래는 다름아닌 성장기의 어설픈 섹스, 출구없는 일상, 존재하지 않는 꿈과 희망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어빈 웰시 원작 영화 [케미컬 제네레이션] 사운드트랙에 함께 참여한 오아시스가 노동계급의 로큰롤이라는 공식으로 신분상승의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동세대 젊은이들의 시선을 모은 방법론과 다른 방식의 표현이 벨 앤 세바스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95년 런던에서 고향 글래스고로 돌아온 스튜어트 머독이 이조벨 캠블을 만나 시작된 벨 앤 세바스찬은 새러 마틴(바이얼린), 스티비 잭슨(기타), 스튜어트 데이빗(베이스), 크리스 게디즈(키보드), 리차드 콜번(드럼) 등 대규모 식구로 구성되었다. 당시 대부분 학생이었던 이들은 조그마한 규모로 밴드를 해보자는 스튜어트 머독의 의견에 동감했고, 밴드 활동을 ‘여가 활동’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 반경은 동네 커피샵, 술집, 교회 등을 넘어서지 않았으며 밴드의 장래에 대한 생각도 앨범 두 장 정도 내고 해산하면 대단한 성공이지 않을까 하는 정도에 머물렀다(“Get Me Away From Here, I’m Dying”의 한 부분 “아무도 예전처럼 노래하지 않아 스스로 하기로 했다”는 말은 반쯤은 스튜어트 머독의 진심인 듯하다). 그래서 스튜어트 머독이 대학원 과정의 과제물로 자가제작한 데뷔 앨범 [Tigermilk]의 라이너 노트에 밴드를 소개하는 바이오그래피인양 100% 픽션을 적어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NME]에서 이 앨범의 한 곡을 ‘이 주의 싱글’로 선정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덕분에 1,000장 한정 LP(비닐)로만 제작한 [Tigermilk]는 수 백 파운드를 호가하게 되었고, 결국 올해 CD로 재발매되었다. 인디레이블 집스터와 계약을 맺고 [If You’re Feeling Sinister]를 발표한 이후에도 벨 앤 세바스찬은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피했으며(프레스 포토도 멤버가 포함된 엉뚱한 사진이었다) 정확한 멤버의 프로필도 발표하지 않았다. 벨 앤 세바스찬이 스코틀랜드에서 이렇게 활동을 하던 시절 영국에는 ‘챔버 팝 리바이벌’의 흐름이 있었고(디바인 코미디(Divine Comedy), 틴더스틱스(Tindersticks) 등), 벨 앤 세바스찬은 이들과 함께 거론되었다. 첼리스트와 바이얼리니스트가 정식 멤버로 있는 벨 앤 세바스찬은 예전 포크에서 사용하던 악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현악과 관악을 적절하게 사용했고, 공연시에는 리코더, 멜로디언 등의 악기를 동원하기도 했다. 벨 앤 세바스찬은 97년 한 해 동안 석 장의 EP를 발표한 이후 [The Boy With Arab Strab]을 발표했고 이 앨범이 마타도어 레이블을 통해 전세계에 배급된 이후에야 공식적인 인터뷰와 사진을 배포했다. 전업 뮤지션으로의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조심스런 멘트와 함께. 그리고 예상을 넘어선 대중적 성공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런 노래는 예전에도 있지 않았었느냐, 돈 맥클린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처럼”이라는 말도 포함하여)에 대해 벨 앤 세바스찬은 “This Is Modern Rock Song”에서 덤덤하게 답변한다. “이 노래는 단지 모던 록 송, 부드러운 사랑 노래, 내가 ‘셋, 넷’하면 시작해, 어딘가에는 노래가 끝나는 때가 있을 때니까”라고 덤덤하게 답하고 있다. 19991102 | 김민규 wanders@nownuri.net 관련 글 포크 록의 두 얼굴: 아니 디프랑코 vs 론 섹스미쓰 – vol.1/no.6 [19991101] 고독, 저항, 순수의 연대기: 영미 포크 록의 역사 – vol.1/no.6 [19991101] Folkies in Electronic Wonderland – vol.1/no.4 [19991001] 포크, 네멋대로 해라: 빌리 브랙 vs 미셸 쇼크트 – vol.1/no.4 [19991001] SLOW-JAM: 벡 vs 베쓰 오튼 – vol.1/no.4 [19991001] 관련 사이트 엘리엇 스미스 드림웍스 공식 사이트 http://www.dreamworksrec.com The Take A Nap http://members.tripod.com/Takeanap/indexell.html 헤이든, 하위 벡, 엘리엇 스미쓰, 라이사 제르나모 등 내성적인 아티스트 데이터 베이스 벨 앤 세바스찬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lleandsebastian.co.uk 벨 앤 세바스찬의 모든 것을 담은 정말 괜찮고 예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