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초 [실렉트(Select)]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1위 벡(Beck), 같은 해 말 [CMJ] 선정 ’99년을 주도할 차세대 거물(next big thing)’ 3인방의 하나로 꼽힌 베쓰 오튼(Beth Orton). 이 70년생 동갑내기 두 뮤지션이 90년대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이렇듯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 모두 ‘일렉트로닉 포키’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장르의 바운더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업물을 발표했고, 전통적인 흐름을 소화해내며 새로운 조류에 부응하는 시각을 표출했다. 게다가 이들이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획득해 가는 과정은 의아스러울 정도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과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창조적 샘플링 기법을 선보인 힙합으로는 이미 비스티 보이스의 [Paul’s Boutique]가 존재하며, 트립합 디바 또한 여럿을 꼽을 수 있다. 4년 전만 해도 “I’m a loser baby, why don’t you kill me~”라고 웅얼거리는 슬래커이자 힙합과 포크를 말도 안되게 주물럭거린 백인 일렉트로닉 포키였던 벡은 ‘먼지 형제들(Dust Brothers)’과 함께 작업한 [Odelay]로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21세기를 주도할 퓨처리스트이자 대규모의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는 엔터테이너로서 등극했다. LA와 뉴욕을 오가며 차비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서 연주하던(이 시기 안티포크 무브먼트와 거리의 힙합의 기운을 접하게 된다) 벡이 이러한 위치에 오르는 데에는 [Odelay]에서 선보인 컷 앤 페이스트, 패스티쉬, 멀티 레이어드 기타 등의 포스트모던한 작법 외에도 팝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자각을 보여주는 다이내믹한 무대 연출(그는 한 무대에서 옷을 열 번 이상 갈아입기도 한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으로 덤덤하게 노래하는 모습, 그리고 상상력과 유머를 잃지 않는 뮤직비디오(당연히 외모도 한 몫하며) 등의 공헌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메이저에서의 활동 와중에 인디레이블 K 레코드에서 발표한 [One Foot in the Grave]는 벡을 로-파이(lo-fi)의 태도에 경도된 진지한 표정의 싱어송라이터로 바라보게 하였고, 작년에 발표한 [Mutations]는 보다 유려하고 섬세하게 채색된 포크 앨범이었다. 노르위치 태생의 베쓰 오튼은 데뷔 앨범 [Trailer Park] 이전 유럽 테크노 리믹서의 1세대 격인 윌리엄 오빗(William Orbit)의 파트너로 발탁되어 몇 장의 앨범에 참여했고, 케미컬 브라더스의 [Exit Planet Dust]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다. 그리고 댄스 리듬과 차분한 포크 멜로디가 공존하는 베쓰 오튼의 데뷔 앨범 [Trailer’s Park]는 그녀에게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립합 디바라는 호칭을 동시에 부여하였다(스스로도 차분한 관중을 두고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는 드럭에 중독된 듯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노래하는 것이 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롤링 스톤]의 표지를 장식하고 ‘레터맨 쇼’에 출연할 정도로 미국에서도 호응을 얻은 베쓰 오튼이 3년 만에 발표한 [Central Reservation]은 예전 사운드를 기대한 이들에겐 무척 의아스러울 정도로 포크 뮤지션으로서의 영역을 분명히 한 앨범으로 리듬과 사운드보다는 목소리만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물론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의 벤 와트(Ben Watt)가 프로듀싱, 리믹스한 “Central Reservation”, “Stars All Seem to Weep” 등 1집의 스타일에 근접해 있는 트랙도 있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블루지한 구성의 “Sweetest Decline”, 테리 컬리어(Terry Callier)가 예의 걸걸한 목소리로 함께 노래한 “Pass in Time”, 미니멀한 구성의 “Feel to Believe” 등이 이끌어 간다. 1990년대 대중음악의 화두인 일렉트로니카의 영역에서 미래지향적인 시선을 놓치지 않는 벡과 베쓰 오튼의 (절충주의적?) 태도는 과거 싱어송라이터들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전통적이다. 이들은 곡쓰기에 집착하고 이야기가 되는(story-telling) 가사쓰기를 지향하며 자신 내면으로 파고들지만, 차트 지향적인 선배 포크 뮤지션들의 안전한 정서와는 차별된 느낌을 전달한다. 그리고 엔터테이너와 뮤지션으로서의 태도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이들의 행보는 여전히 록이 팝의 상대항인 이들에 의해 진중하게 반복되는 ‘진정성’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며 불확정적인 세상의 진지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19991001 | 김민규 wanders@nownuri.net 관련 글 1999년에 포크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vol.1/no.3 [19990916] Beth Orton [Central Reservation] 리뷰 – vol.1/no.2 [199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