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여기저기서 “베이 에리어(Bay Area) 힙합 씬을 모르고서는 최근 힙합의 지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떠들어댄다. 온갖 대중음악잡지들, 힙합 팬들, 나아가 한국의 몇몇 힙합 동호회에 들어가도 ‘캘리포니아 인디, 혹은 언더 힙합’이라는 분류 하에 이 씬의 몇몇 뮤지션들의 이름(가령 Del The Funkee Homosapien이나 Dilated Peoples 같은 이름에, Jurassic 5나 Freestyle Fellowship 등을 묶어서)이 눈에 뜨인다. 혹자는 ‘웨스트코스트’, ‘이스트코스트’, ‘갱스타랩’ 같은 이름 만들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최근 몇 년간 심심해하다가 기회다 싶어 만들어낸 작위적인 힙합의 하위 범주라고 이를 폄하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이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이 90년대 초 ‘시애틀 그런지 씬’ 이후 거의 10년만에 출현한, 지역 인디 씬의, 또 다른 형태의 전면적인 대중음악계에 대한 제2차 공습이라고 떠들어댄다. 온갖 논란을 뒤로하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 씬은 분명 존재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인디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 에리어 힙합은 무엇을 말하는가? Blackalicious, Del (The Funkee Homosapien), Peanut Butter Wolf, DJ Shadow, DJ QBert, Invisibl Skratch Piklz, Dan The Automator, Souls Of Mischief, Dilated Peoples, Live Human, Zion I… 이 막강한 라인업을 면면히 살펴본다면 음악적으로 다양한 성향들에도 불구하고 이들 뮤지션 사이에 공통점 또한 분명히 존재함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하나같이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점 외에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바로 이들이 베이 에리어 출신 혹은 베이 에리어를 근거지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역 바깥에서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아마, [Pirate Fuckin’ Video]가 96년에 출시되면서부터일 것이다. (베이 에리어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음악과 인터뷰가 담긴 이 비디오를 필자는 2년 전에 처음 보았는데, 거기서 Invisibl Skratch Piklz, DJ QBert, DJ Marz, Del, Souls Of Mischief, Live Human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맛보기로 들은 그들의 음악에 뻑 갔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캘리포니아 인디 힙합’이라는 포괄적이고 애매한 이름보다는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이라는 구체적 이름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사실 캘리포니아 남부, 즉 LA를 중심으로 하는 힙합 씬은 온갖 메이저 레이블이 득실거린다는 점에서 철저히 인디 레이블들 위주로 틀이 짜여진 베이 에리어와 음반산업의 지형이라는 측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한편으로, 인디 씬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남부 캘리포니아 인디 씬은 베이 에리어, 즉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버클리와 그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캘리포니아 북부로부터 물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양쪽 인디 씬 간의 활동이 하나로 묶여서 일관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LA를 중심으로 하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힙합 씬과 베이 에리어를 중심으로 하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힙합 씬을 ‘캘리포니아’라는 하나의 거대 범주로 포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진설명: Le Pena Cultural Center 버클리에 위치한, 주로 마이너리티와 다이아스포라를 위한 대표적인 ‘좌파’ 라이브 클럽이다. 캐러비언이나 아프리칸 아메리칸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을 위한 공연이 다양하게 열리며, 힙합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흑인음악 혹은 월드뮤직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인디적 특성과 지역 공동체적 경계라는 기본적인 기준을 갖고 이야기한다면, (물론, 위에 언급한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잘 나가는 캘리포니아 인디 힙합 뮤지션들이 베이 에리어 출신 혹은 그곳을 근거지로 한다는 점에서도),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이라는 말이 보다 적절한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LA의 Jurassic 5나 Freestyle Fellowship 같은 팀은 일단 이 묶음에서 제외된다. 물론 그들을 비롯한 LA 언더 뮤지션들이 전체 캘리포니아 언더 씬을 전국적 수준으로 추동하는데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의 이름과 함께 베이 에리어 힙합이 뜰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1990년대 초반에 수면에 부상했던 시애틀 그런지가 이미 80년대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씬으로서 1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었던 것처럼, 베이 에리어 힙합도 결코 작년, 재작년에 갑자기 급조되어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이 주류 힙합 시장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던 90년대 초부터 서부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동을 해왔던 뮤지션들이며, 단지 최근에 와서 이들의 음악이 전체 음반시장과 평자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되고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하나로 묶여 언급되기 시작한 것뿐이다(가령 Del (The Funkee Homosapien)과 Souls Of Mischief는 91년과 93년에 각각 메이저레이블에서 음반을 이미 낸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베이 에리어 힙합 씬에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으며,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는 뮤지션들만 봐도 그 음악적 특성들이 실로 다양하다. 따라서 단순히 이들을 한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 혹은 ‘캘리포니아 힙합’식의 특정한 이름으로 묶어서 사람들이 분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다른 지역에도 힙합 뮤지션들은 널려 있다). 즉,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몇 가지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된, 독특한 특성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 것이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이라는 명칭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를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패거리 인디 정신 베이 에리어 힙합의 가장 분명한 특성은 철저히 인디 정신으로 무장해 있다는 점이며, 그 바탕에는 ‘패거리'(Collective: 혹자는 Crew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Collective가 더 적절한 표현인 듯)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사실 메이저 레이블들도 Puff Daddy, Timbaland, Master P 등의 대장을 중심으로 레이블을 만들고 뮤지션들을 끌어 모아 팀을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한 명의 탁월한 프로듀서 혹은 비즈니스맨을 중심으로 보다 상업적으로 결탁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가령 Hieroglyphics 패거리는 Del The Funkee Homosapien, Souls Of Mischief, Casual, Extra Prolific 등을 중심으로 묶인 모임이며, Quannum 패거리는 Blackalicious, DJ Shadow와 Latryx를 주축멤버로 한다. 그밖에도, 스크래칭의 달인들로 묶인 Bomb Hip Hop 패거리, Mystik Journeymen과 The Grouch 등이 이끄는 Living Legends 패거리, 그리고 Saafir와 WhoRidas가 이끄는 Hobo Junction 등도 베이 에리어의 대표적인 패거리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패거리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레이블들(Hiero Imperium, Quannum Projects, Bomb Hip Hop, Outhouse, Stones Throw 등)을 만들고 자신들 스스로 음반의 제작에서 유통까지 통제권을 가지고자 노력한다(물론 자신들만의 팬진과 웹사이트 제작은 필수이다). 또한 공연을 조직하고 앨범 프로모션을 하는 것까지도 손수 해야한다. 몇 달전 ‘CMJ’와의 인터뷰에서 Mystik Journeymen은, 일본에서 공연할 때 팬들의 집에서 자면서 버텼고, 앨범이 레코드 가게에 깔리기 전에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직접 소리질러가며 CD를 팔았고, 자신들의 파티에 참가하는 팬들로부터 99센트의 돈과 라면을 입장료 대신 받아서 연체된 전기료와 식비를 해결했다고 고백을 했었는데, 이는 전형적인 베이 에리어 인디 뮤지션들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들이 그런 것처럼, 이들이 왜 독자적인 레이블을 만들고 활동을 하는 지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영국 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Del은 “우리 레이블, Hiero Imperium에서 발매한 나의 최신 싱글, “Phony Phranchise”의 판매량은 10년전 Elektra 시절 발매했던 싱글의 판매량에 비해 사실 택도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분이 훨씬 좋다. 그땐 로열티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깐”이라고 지적한다. “인디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비즈니스적, 예술적 통제를 제공한다”라는 Souls Of Mischief의 멤버, Tajai의 말은 왜 그들이 인디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는 대답으로 들린다. 사진설명: Amoeba와 Rasputin’s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표적인 레코드 가게 체인들로서, 실제 이 지역에서는 Tower, Virgin, HMV 같은 전국적 대형매장보다 더 많은 손님이 몰린다. 사실, 미국 대학가의 레코드 가게가 모던록 음반으로 뒤덮여 있었던 건 옛날 이야기이다. 2년만에 다시 찾아간 이들 레코드 가게에는 이미 비대해진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섹션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CD와 LP들은 눈을 뒤집어지게 만들 정도였다. 공동체적 태도와 네트워크 이러한 인디 정신과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어떤 의미에서 ‘베이 에리어’라는 공동체적 개념(그것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든 상상된 것이든 간에)은 절대적 힘을 지닌다. 힙합 음악과 관련하여 이 베이 에리어 씬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은 왜 그들이 스스로를 공동체라고 생각(혹은 착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각각의 패거리들은 자신들만의 레이블을 만들어서 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결코 자기 패거리 내에서의 공동작업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베이 에리어 패거리들 간의 다양한 형태의 무수한 음악적 공동작업들이 진행되어 왔다. 가령 Quannum 패거리의 프로젝트 앨범에 Hieroglyphics 패거리의 Souls Of Mischief가 같이 작업을 했던 것이나, Del과 일본계 최고의 DJ, Dan The Automator(동부의 거물 프로듀서, Prince Paul과의 Handsome Boy Modelling School 프로젝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의 공동작업 등은 패거리들끼리의 수많은 상부상조의 일면을 보여준다. 단순히 음반작업만이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 뮤지션의 레이블들과 지역의 레코드 가게, 클럽, 칼리지 방송국들 간의 일관된 네트워크는 ‘베이 에리어 커뮤니티’를 완성하기 위한 거대한 기본 틀이다. Maritime Hall, Justice League, Le Pena Cultural Center 등 특정 클럽과 공연장들을 통해 이 지역의 뮤지션들은 공연을 벌이고, 이들의 앨범은 Amoeba나 Rasputin’s 같은 대표적인 지역 레코드 가게 체인들을 통해 판매된다. Amoeba의 버클리 지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본 바에 의하면, 이 베이 에리어 지역에서는 실제로 이들 지역 출신 뮤지션들의 음반이 메이저 레이블의 스타급 뮤지션들 이상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네트워크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칼리지, 혹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음반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라디오에서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고 “야, 이거 쿨한데”하면서 레코드 가게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 지역은 버클리(KALX), 샌프란시스코(KPOO)를 위시하여 근방으로 나가면 스탠포드(KZSU), 데이비스(KDVS)까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인디 뮤직 전문 라디오 방송국들이 널려 있다. 이들 방송국의 디제이들은 해박한 지식과 음악적 재주 외에, 지역의 뛰어난 뮤지션들을 발굴해내는 탁월한 능력들까지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 라디오 방송국은 캘리포니아를 넘어서, 서부 전역 그리고 동부에까지 이들 뮤지션의 음악이 퍼져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앞서 언급한 뮤지션들이 지금 현재 스타급 레벨로 올라서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러한 라디오 방송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초기 DJ Shadow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분교(UC Davis)의 라디오 방송국과의 관계를 아는 독자들은 누구나 이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오클랜드 시내 한복판, 시청 맞은 편에 위치한 이 오클랜드 시 소유의 대형 빌딩 6층에서 Quannum과 Hiero Imperium, ABB Records, 그리고 Bay Area Hip Hop Coalition(힙합 라디오와 클럽 디제이 연합)은 함께 사무실들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인디 뮤지션과 그들의 레이블, 각종 라디오의 디제이들, 클럽들 등이 과연 그들이 이야기하는 만큼 질퍽한 공동체 수준으로 결합되어 있는지에 의심을 갖고 있던 필자는, 오클랜드 다운타운에 가서 Quannum과 Hiero Imperium 레이블, ABB Records, 그리고 Bay Area Hip Hop Coalition(힙합 라디오와 클럽 디제이 연합)이 함께 사무실들을 운영하고 있는 빌딩을 직접 보면서 그 의심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지금 베이 에리어라는 공동체적 인디 힙합 씬의 세력 확장과정은 전혀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지역 출신의 뮤지션들을 힙합 스타로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소문 듣고 몰려오는 타지역 출신 실력파 뮤지션들까지 규합하고 있다. 애틀랜타 출신의 트리오, Zion I가 이 동네로 날아와서 지역 방송국과 뮤지션들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Minds Over Matter]라는 멋진 앨범을 올해 발매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턴테이블리즘 ‘턴테이블리즘’은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을 정의하는 또 다른 핵심적 개념이다. 턴테이블리즘이 그들 음악의 공통된 바탕을 이루며, 나아가, 실제 이 베이 에리어를 중심으로 턴테이블리즘이 부흥하기 시작하였고, 90년대 후반 이후의 전세계적인 턴테이블리즘 붐을 지금껏 이들이 주도해 왔다는 사실은, 힙합 역사에서 몇 손꼽히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Invisibl Skratch Piklz(DJ QBert, Mix Master Mike, Shortkut), DJ Shadow, Peanut Butter Wolf, Dan The Automator, The Space Travelers(Quest, Cue, Eddie Def, Marz) 등의 이 지역 출신 톱 클래스 턴테이블리스트들이 지금까지 턴테이블리즘 씬을 이끌어 왔다는 데에 분명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 할 것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Bomb Hip Hop 레이블의 [Return Of The DJ] 앨범 시리즈는 현재 ‘턴테이블리즘’이 장르적, 기술적으로 대중음악계에 자리잡게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앨범들은 이 지역 출신의 Invisibl Skratch Piklz, Peanut Butter Wolf, Mix Master Mike, Cut Chemist 뿐 아니라, Kid Koala나 DJ Honda 같은 외국의 디제이들까지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해 주었다. 이 앨범들은 턴테이블리즘 자체가 하나의 음악적 하위 장르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베이 에리어 지역에 숨어있는 가공할 음악적 잠재력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과거 시애틀 그런지 씬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Hype!]을 만들어 명성을 날렸던 Doug Pray가 지금 베이 에리어를 중심으로 [Vinyl]이라는 턴테이블리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며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턴테이블리즘의 본거지로서의 베이 에리어의 명성을 확인시켜주고도 남는다. 제 2의 시애틀 그런지가 될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베이 에리어 인디 힙합 씬의 전면적인 부상과정은 몇 가지 궁금증을 낳는다. 사실 인디 정신에 바탕한 공동체적 성격이라는 베이 에리어 힙합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현재의 음반시장에 그들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파묻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적인 그들 음악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들 음악의 기본적인 틀로서의 ‘턴테이블리즘’만이 브랜드네임화 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것이 지금 ‘베이 에리어’ 씬의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말하자면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이 세상에 진출하는 과정은 턴테이블리즘의 확산과 더불어 이 지역 음악의 여타 독특한 음악내, 외적인 성격들은 묻혀버리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 하에서 그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인디, 혹은 공동체 정신과 태도를 앞으로도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있을 지는 사실 상당히 불확실하다. 실제로 힙합 시장에 이름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음악이 지닌 상품성, (아니 음악성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만이 소개되고, 그들 특유의 태도와 작업, 활동방식들은 별반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다루어지는 경우가 자주 눈에 뜨인다. (아니, 아예 그런 점들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혹은 다루어진다 해도 그들을 상품으로 포장하기 위한 좋은 포장지 이상의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이미, ABB의 Dilated Peoples나 Fat Cat의 Live Human 같은 베이 에리어를 대표하는 실력파 뮤지션들이 벌써 Capitol이나 Matador 같은 LA와 뉴욕의 보다 큰 레이블을 통해 새 앨범을 발매하고 현재 대대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흐뭇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다지 개운하지만은 않다. 이는 10여년 전 시애틀 그런지 씬이 전국 무대에 올라서기 시작하던 초기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뭔가 불안하기도 하다. 더구나 예술적 능력 외에 상업적 감각(무엇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할 지를 찍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로 유명한 Doug Pray 같은 사람이 시애틀 그런지 씬에 이어 베이 에리어 턴테이블리즘 씬을 두 번째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이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통제해 낼 수 있는, 대중음악의 새로운 독립군이 될지, 아니면 각개 격파 식으로 메이저 레이블과 결합하여 ‘베이 에리어’ 혹은 ‘턴테이블리즘’이라는 브랜드네임 하에 스타 힙합 뮤지션들로 성장하게 될지를 지켜보는 것은 21세기를 여는 현 시점에서 미국 대중음악계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20000828 | 양재영 coct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