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ouse Painters – Red House Painters 3rd LP – 4AD, 1993 한없이 느린 우울 빠르고 강렬한 사운드가 록의 ‘유일한’ 경향이 아니라는 것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다. 내성적인 가사, 느리고 고요한 사운드가 나름의 ‘힘’을 가진다는 것도. 이같은 흐름(슬로 코어 혹은 새드 코어라고 불리는)의 대표적인 밴드인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 4AD 레이블과 계약하기 위한 데모 레코딩에서 선별 제작된 [Down Colorful Hill](1992)을 발표한 이후, 1993년에 몇 달 간격으로 잇달아 나온 두 장의 셀프 타이틀 앨범은 마크 코즐렉(Mark Kozelek)이 이끄는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가 정착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그 중 두 번째 음반(그들의 3집)인 [Red House Painters 3rd LP]는 한 외지의 평대로 “연약하지만 이상하게 따뜻함이 묻어있는 쓸쓸한 음악”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음악적, 정서적인 면이 이전보다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일관적으로 음반 재킷에 실어놓곤 하는 세피아 톤의 커버에는 수풀과 강 사이로 나무다리가 오롯이 얹혀있는 한가로운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이 재킷의 이미지를 따서 ‘브릿지(bridge) 앨범’으로 불리기도 한다(그리고 [2nd LP]는 ‘롤러코스터 앨범’으로). 그리고 보면 그들 음악의 서정적인 사운드가 정적인 풍경과 들어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고통과 슬픔, 우울함과 비참함이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때로는 지겹도록 느린 드론 사운드에 묻어난다. 물론 보컬의 성찰적인 목소리에서도. 앨범은 왠지 의미심장한 가벼운 웃음 소리로 시작하여, 기타의 아르페지오 소리를 배경으로 마크 코즐렉의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밤에 당신의 형제는 돌아서며 내게 말했지/당신은 어둠 속에서는 악마처럼 보이는군요”(“Evil”)라고 음울하게 흐른다. 곡 후반부로 갈수록 기타 스트로크가 강렬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격정적이란 느낌은 없다. “난 알아요 내가 당신을 모른다는 걸/난 알아요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그런데 난 뭘 할까요, 이처럼 강철로 만들어진 고통의 거품에 닿을 때/…/나는 알아요 당신이 날 모른다는 걸”(“Bubble”)이라고 고백하는 짝사랑의 슬픈 감정은 예쁜 사운드와는 대조적으로 얼마나 비통한가. “내 삶에서 사람들이 모두 가버린 곳에서 난 천장을 보고 있어요/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에 젖어/…/오, 조 아저씨/당신이 아는 걸 말해주세요/난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든요/해결책도 불명확해요”(“Uncle Joe”)는 귀를 아연하게 하는 울림을 던진다. “당신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뉴저지는 세상 전체가 아니야”(“New Jersey”)에서는 스미스(The Smiths)의 미저러블리즘(miserablism)의 잔영이 드리워있다. 커버 곡에서도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성향이 읽혀지며 그들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해낼 수 있다. “Star Spangled Banner”(!)에서는 원곡의 멜로디를 알아챌 수 없게 고요한 멜로디로 변형되어 새로운 느낌을 만날 수 있다. 경쾌한 기타 사운드와 듀오의 화성을 전해주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I Am a Rock”도 그보다 좀 느린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식의 노래로 바뀌었다. 하지만 보다 밝고 빠른 음악적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로 ‘너무도’ 오랫동안, ‘느림과 슬픔의 미학’에 ‘지나치게’ 천착했던 건 아닐까. 느림이 지속되면 나약해지고 슬픔이 지속되면 신파가 되기도 하니까. 20000908 | 최지선 fust@nownuri.net 7/10 수록곡 1. Evil 2. Bubble 3. I Am a Rock 4. Helicopter 5. New Jersey 6. Uncle Joe 7. Blindfold 8. Star Spangled Banner 관련 사이트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비공식 팬사이트 http://www.geocities.com/Paris/LeftBank/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