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선 – 유감 – CREAM, 2000 니힐리즘의 저속 비행 모든 것에 의미를 둘 수는 없다. 왜 밥을 먹는지, 왜 잠을 자는지, 왜 꿈을 꿔야만 하는지. 너무도 당연한 일, 그것들에 새삼스레 질문을 가한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레이니 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왜 당신들의 음악은 어둡고 음산하며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가.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아마도 그건,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들, 새삼스레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레이니 선에게 ‘색깔’을 강요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하지만 전작이 세칭 “귀곡 메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지독한 생채기를 외부로 긁어냈다면, 이번에는 그 손톱을 안으로 향해버렸고 그러면서도 일관된 정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미 자신들의 내부에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얼마간의 다른 외양을 갖고서 그 속에 동일한 정서를 지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쯤은 훌쩍 넘어선다. 때문에 어둠의 의미를 물을 수는 없다. 이른바 무의식의 존재, 혹은 습관과 같은 것이다. 이러함에 비교적 첫 번째 앨범과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레이니 선’이라는 이름의 낯설음은 거의 없다.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이번 앨범은 음향만으로는 새로운 밴드의 새로운 음악과도 같다. 여전히 고유한 분위기는 차치하고서 다채로운 악기 사용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몽롱한 이미지는 곳곳에 꿈결같은 아스라함으로 녹아있다. 타이틀 곡 “유감”에서는 고풍스러운 현악기가 비감을 드러낸다. 이번 앨범의 변화를 대표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곡은 “Caffeine”으로 고혹적인 플롯이 부드럽게 감싸준다. 러시아 가사로 쓰여진 “Palobina”에서는 만돌린, 아코디언, 바이올린 등이 사용되었고 크라잉 너트와 황신혜 밴드의 음반에 참여했던 키보드 주자 고경천이 눈에 띤다. 기타 다른 악기들도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나 작은 소리를 내는데, 긴박하기보다는 처연하게 들린다. 분노를 회한으로 승화시킨 것일까. 다양한 악기가 쓰였지만 그것은 홍수로 작용하지 않고 절제로 드러난다. 물론 특유의 귀곡성도 듣기 힘들다. 그보다는 목소리를 한껏 늘려서 거북스럽고 ‘느끼’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작위성과 혼돈된다. 마지못해 부른다고나 할까, 어쩔 수 없이 듣는다고나 할까. 나른하면서 자학적인 니힐리즘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그려가다 보니 후반부까지 끌고 갈 만한 ‘훅’이 부족하다. 심하게는 동어반복일 수도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의 대상 없는 불평과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한다. 싱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고만고만한 분위기가 전체를 채우다 보니 일관된 정서가 시종일관 계속되어 따분하다. 그래서 한가지 더 붙는 것은 ‘인내’. 결국 이번에도 극단적으로 몰아친다. 비록 저속으로 날아가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어져 화석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만큼 암울하다. 모든 곡이 영어로 쓰여졌던 1집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다섯 곡이 ‘한글’로 쓰여졌고 방송용으로도 문제없을 노래 또한 몇 곡 있다(첫 곡 “외설”은 해변음악이 아니던가?!). 이번에는 공중매체에서 레이니 선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어둠 속에 숨어있는 감정으로 ‘심히’ 우울하기에 ‘매우’ 걱정된다. 여전히 그들의 태양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20000914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6/10 수록곡 1. 외설 2. 그래서 3. 유감 4. Nice 5. 상처 6. Caffein 7. Cresent 8. Grind teeth 9. Palobina 10. Cicada 11. Ocean 2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O.S.T) 관련 사이트 레이니 선 공식 사이트 http://www.rain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