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23073512-sweetpea스위트피 –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 – 문라이즈/드림 비트, 2000

 

 

고독과 우수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실내악

스위트피의 1집 음반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그러니까 델리 스파이스, 문라이즈 레이블, 스위트피 이전 음반 어쩌구 등등)은 생략하고 음악 그 자체를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이 음반은 홈 레코딩으로 녹음되었다. ‘홈 레코딩이니까 로파이’라고 말하면 무식의 소치겠지만 정규 스튜디오에서의 레코딩과는 다른 음색 및 텍스처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단, 스위트피 ‘0집’ [달에서의 9년]과 비교하면 로파이스러움(?)의 정도는 낮아졌다. 아마도 장비가 업그레이드되어서인 듯. ‘전형적’인 로파이 음반처럼 사운드가 직접적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매개된다는 뜻이다. 리버브 등의 이펙트를 이용하여 축조된 아련한 사운드 텍스처가 듬성듬성 빈 공간을 마련해 주고, 선율은 그 사이를 흘러 다니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보컬은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에서보다 더욱 가늘어졌다. “복고풍 로맨스” 같은 곡은 폴 사이먼(Paul Simon)의 음악성을 가진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이 만들고 부른 곡 같은데, 목소리가 가사와 어우러지면 닭살도 조금 돋는다. 한편 작곡은 ‘열창형의 대곡’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그렇다고 ‘냉창’이라는 괴상한 말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 이미 김민규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고독하고 암울한 가사’도 몇 곡에서 빛과 청승을 동시에 발하고 있다. 곡 하나의 길이는 짧은 편이며 앨범 전체 길이도 ‘서태지 수준’이다. ‘후렴이라도 한번 더 했으면 좋겠는데’하는 마음이 들 때면 슬쩍 끝나버리는데, 그게 아련함과 아쉬움을 더하는 듯하다(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실내용 소품’이자 ‘이어폰용’ 음악으로 적절하다.

악기의 사용도 작곡과 사운드의 특징에 맞게 단촐하고 자연스럽다. “유기”와 “Interlude” 두 곡은 전기 기타가 주도하지만, 나머지 곡들에서 록 음악용(야외용?) 악기는 꼭 필요할 때만 나온다. 그보다는 ‘어쿠스틱’ 악기의 사용이 더욱 두드러진다. 어쿠스틱 기타는 느린 아르페지오(2번), 그루브한 스트러밍(3번), 이른바 ‘쓰리 핑거’ 주법(4번) 등 각 곡들마다 아기자기한 전개를 보여준다. 그래서 ‘포크’라는 단어와 친밀해 보이지만 ‘사운드’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한국 포크송(이라기 보다는 통기타 가요)’의 관습과는 다르다. 어쿠스틱 기타 외에도 첼로(3번), 피아노(6번, 8번), 플륫, 리코더(8번) 등의 ‘진짜(real)’ 악기음이 많이 들어가 있다. 어쿠스틱 악기는 아니지만 “지금 부르는 나의 노래는”에서 e-보우의 미묘한 소리도 인상적이다. 피아노, 플륫, 리코더가 어우러진 마지막 트랙인 연주곡은 ‘어떤날주의(?)’의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들려온다. 프로듀싱 기법은 (상대적으로) 아마추어적이지만, 그 점이 하나의 색깔로 정착한 느낌을 준다.

밴드 멤버이자 프로페셔널 음악인의 ‘퍼스널’한 음반으로서는 수작이다. 물론 두 가지 점이 걸린다.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들 중에서 미끈하고 세련된 2집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1집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이 음반보다 스위트피의 전작을 더 좋아할 것이다. 또한 음악인의 신상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정규 앨범’으로서의 가치는 작다고 말할지도.

P.S.
비매품 부록 CD인 문라이즈 소속 음악인의 컴필레이션 음반은 좋은 선물이다. 여기서 길게 평하기는 힘들지만 불독맨션의 이한철과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Thomas Cook)의 작곡은 스위트피 음반의 “어디 가니”와 더불어 잘하면 ‘한국 인디 가요’가 탄생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며, 이다오와 Especially When(김경모)는 실험적 사운드 속에 슬쩍 숨어있는 멜로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00916 | 신현준 homey@orgio.net

5/10

수록곡
1. 유기
2. 달에서의 9년
3. 유혹 위로 흐르는 강
4. 복고풍 로맨스
5. 지금 부르는 나의 노래도
6. 어디 가니?
7. Interlude
8. 문라이즈

보너스 CD
1. 내 모습 – Thomas Cook
2. 모노레일 – 이한철
3. 등대지기 – 이다오
4. Clare – Especially When
5. 납메아리 – Sweetp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