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 Buena Vista Social Club – Nonesuch, 2000 쿠바의 인간 문화재들과의 만남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앨범이 한국에서도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다. 물론 ‘영화 음악’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리하여 이 앨범의 리뷰는 아마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1. 필자는 우선 독일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가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찍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같은 용어도 사전에서 한번 찾아서 인용한 뒤, 작품에 대해서도 ‘아카데미 노미네이션’과 같은 수식어를 동원할 것이다(이것은 훌륭한 예술 영화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일 게다). 2. 영화 이야기를 글의 도입부로 써먹은 후, 본론에서는 멤버들이 쿠바 태생의 매우 나이 많은 뮤지션(70세에서 90세 사이)이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아바나의 클럽(만약 필자가 좀 더 친절하다면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동부 지역에 1950년대까지 있었던 유명한 클럽’)에서 오랜 연주 경력을 가진, 그야말로 장인(匠人) 내지는 무형 문화재로 추앙받아야 마땅함을 주지시킬 것이다. 만약 필자가 ‘월드 뮤직’에 정통하다면, 쿠바 전통 민속 음악인 엘 손(El Son)이라는 장르 이름을 들먹일 수도 있다. 아카데미 노미네이션과 함께 그래미를 언급하는 것은 이 앨범의 예술성을 보증하는 중요한 장치이기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3. 아울러 본론 후반부에서, 미국의 오래된 블루스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의 역할을 서술할 것이다. 이 경우 역시 필자가 매우 친절하다면 1970년대에 블루스 스타일의 전통적(민중적?)인 음악을 한 라이 쿠더가 아바나에 몇 년 몇 월 몇 일에 가서 멤버 누구누구를 만나고(여기서 멤버 이름을 한 명 한 명 친절하게, 자신이 맡은 악기까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노장들과 함께 녹음을 하게 되었는지 장문에 걸쳐 유려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심지어는 옆에 그냥 서 있다가 녹음에 참여하게 된 어느 가수의 이름도 지적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4. 결론은 필자가 음반 회사로부터 원고료를 받았을 경우 ‘이 음반을 산 것은 행운이다’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잡지사로부터 원고료를 받았을 경우 ‘쿠바 민속 음악의 위대한 예술성’ 혹은 ‘라틴 아메리카의 숨겨진 보물, 쿠바의 신비로움으로의 초대’로 내리는 것이 무난하다. 이것을 일종의 ‘공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1997년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정보가 없다면 본인과 같은 월드 뮤직 문외한은 이것이 쿠바의 음악인지 아니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음악인지 알 길이 없었을 터이므로. 그런데 지금 2000년에도 계속 저 공식대로 써야 하는 것일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느끼는 데 있어서 빔 벤더스와 라이 쿠더에 대한 세세한 정보와 역할, 하다 못해 무슨 상까지 받았는가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 괜스레 너무 쓸데없는 것을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필자도 결론을 내려야겠다. 공식에 따르자면 이 글은 잡지사로부터 원고료를 받아야 할 경우에 해당하므로 ‘쿠바 민속 음악의 예술성’을 택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하지만 최소한 ‘왜, 어떻게 그것이 예술적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고 끝내도록 하자.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우선 이 앨범은 ‘만들어질 때부터 주목받지 않을 수 없는’ 조건들을 갖고 있었다. 즉 ‘미국’이라는 ‘세계’ 문화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주며, 연주자들 개개인이 ‘인간 문화재’급이라는 점, 그리고 조금은 ‘이국 취향(exoticism)’이기 때문이라도 어쨌든 독특함과 개성을 애초에 확보해 놓았다는 점 등 말이다. 아울러 이것이 1950년대 쿠바의 음악, 즉 카스트로의 혁명(쿠데타?) 이전의 음악이며, 아이러니컬하게도 혁명 이전에 인기 있던 이 멤버들이 카스트로 집권 이후에는 심한 생활고를 겪었다는–어떤 멤버는 구두닦이로 생활했다고 한다–점도 기억하자. 거의 반세기 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분출시킬 수 없었던 쿠바의 상황을 극복하고 ‘데뷔 앨범’을 녹음하였으니 멤버들이 얼마나 신명이 절로 났을까. 여기서 그 사회적 조건이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우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클럽이 당시 쿠바에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사교 클럽으로 추정된다는 점, 따라서 그들의 음악적 명성은 상당히 계급적인 것이라는 점, 또한 이 계급성 때문에 카스트로 집권 하에서는 배척받았다는 점을 모두 포괄하고 관통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음악은 딱히 ‘민중적’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부르주아’적이라고 하기에는 그간 멤버들의 고생이 너무 심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땅에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비슷한 누구 없단 말이냐. 20000912 | 이정엽 fsol1@hananet.net 8/10 수록곡 1. Chan Chan 2. De Camino a la Vereda 3. El Cuarto de Tula 4. Pueblo Nuevo 5. Dos Gardenias 6. Y Tu Que Has Hecho? 7. Veinte Anos 8. El Carretero 9. Candela 10. Amor de Loca Juventud 11. Orgullecida 12. Murmullo 13. Buena Vista Social Club 14. Bayamesa 관련 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사회주의 나라에서 온 음악 – vol.1/no.5 [199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