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23054453-moonrise

 

 

비트(음악잡지)로부터 녹음일지에 관한 부탁을 받았을 때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사실 작업을 거의 나 혼자 진행해 왔으므로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싶다. 그래서 날짜별로 기억해내는 것보다는 노래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기로 하였다.

먼저,
1. 유기
이 곡은 써놓은 시점으로 보면 3년 전 쯤에 만들어 진 것 같다. 당시에 데모를 4트랙으로 해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일그러진 기타음과 어쿠스틱기타로만 언젠가 꼭 완성시키겠다는 각오가 남아있었다. Seam의 서울공연이 끝나고 한국 인디계의 시어머니라는 현준형을 통해서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샐리(Sally)라는 한국계 캐나다인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것도 그리고 바로 녹음에 관한 참여의사를 확인하고 몇 곡이 담긴 데모 중에 “유기”를 선택하였고 그리고 베이스와 앰프를 짊어지고 와서 단 몇 테이크만에 완성하고 가버렸다. 믹싱엔 퍼즈기타음이 뭉게져서 나오기 땜에 베이스음에 꽤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둥둥둥둥” 하는 느낌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2. 달에서의 9년
이건 뭐 스위트피의 지난 앨범에 들어갔어야 하는 곡인데 당시엔 이 곡을 어떻게 녹음해야할지 몰랐다. 피아노와 각종 현악이 들어가는 것을 계획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는데 도무지 곡의 느낌을 깍아먹는 느낌이 들었다. 에이 그냥 모든 것을 커트하고 목소리와 어쿠스틱기타만을 들었더니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들으면 지난 시절 마스터플랜에서의 공연기억도 나고 물론 암울한 것들이지만…

3. 유혹위로 흐르는 강
곡을 쓰면서 왠지 이 곡은 중간쯤에 어울리지 않을까 했는데 마지막 가사를 쓰면서 안녕이란 단어가 마구 나오게 되어서 그냥 마지막 곡으로 해버렸고 이 곡은 샘플시디에서 드럼루핑을 가져왔는데 룹자체가 매울 훌륭해서 틀어놓고 잼을 하면서 완성했다 하지만 룹이 워낙 그루브해서 이 곡의 베이스를 쳐줄 사람은 준호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준호형은 워낙 함께 녹음한 일이 많아선 인지 그냥 순식간에 녹음을 마쳐버렸다. 그리고 중간에 난 현악을 편곡했는데 보컬의 “아아아아” 하는 부분과 마지막 후렴의 “이젠 안녕” 부분이 잘 어울리길 원했는데 생각한 이상으로 결과가 나와주어 무척 만족스런 곡이다

4. 복고풍 로맨스
문라이즈의 꿍꿍이를 한참 꾸미고 있던 지난 4월 우리 레이블에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있는 동영이가 자기가 무슨 글을 썼으니 형이 한번 읽어보라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참 좋은 것이 메일박스에는 편지를 받은 날짜가 정확하게 있어서 다행스럽다. 4월30일 무슨 애들같이 신데렐라이야기 같다며 내가 구박하고나서 다시 읽어보니 마치 스테판메릿의 노래 중에 “will you dance with me”나 “with whom to dance”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당장 기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온 건 사이먼엔가펑클풍의 기타아르페지오였는데 하지만 그 가사의 느낌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정서와는 또 다른 것이어서 난 무척 흐뭇해졌고 후반부에 리코더를 추가해 마무리했다.

5. 지금 부르는 나의 노래도
순서상으로 가장 나중에 만들었다. 거의 앨범에 들어갈 곡을 다 만들었는데 실은 이 곡은 사연이 있다 나중에 밝히겠지만 내 주위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반 평생동안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 그 중에서도 델리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기억이 각별하다. 각자의 길을 위해서 선택해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는 것이 슬프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6. 어디가니?
예전에 데모를 들은 동영이 왈 “형 이건 완전히 인디가요야”라는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게되는데 이 곡의 보컬트랙을 녹음하면서 난 디모피자를 시켜놓았다 ttl할인쿠폰이 많기도 하고해서(니가 왜 ttl이냐고는 묻지 말아달라) 잠시 피자에 관해 말하자면 난 예전에 리틀시저스의 하와이언피자를 매우 즐겼었는데 의미 없는 각종 토핑들 보다는 빵 위에 달착지근한 파인애플 몇 조각 얹혀진 것이 훨씬 입에 맞는다. 암튼 디모피자 배달원이 도착해 벨을 누를 당시 난 후렴부분을 열창(?)하고 있었는데 벨소리를 들은 우리 먼지가 흥분해서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에잇 먼지 땜에 망쳤다하고 피자를 먹은 후에 다시 들어 보았더니 보컬트랙에 그대로 먼지의 울부짖음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근데 그것이 그렇게 타이밍이 맞을줄이야. 암튼 난 무척 재미있어하며 그것을 살리기로 하였고 내친김에 나의 개인기인 까마귀울음소리마져 삽입하였다(잘 들어보시라). 그리고 작곡 당시의 애절한 느낌은 사라지고 코믹해져버린 곡 분위기에 맞는 무그 솔로를 삽입하여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 이 곡이 참 사랑스럽다.

7. interlude
이번 앨범을 위해서 커버 곡을 하나 넣기로 하였는데 저작권료의 문제가 만만챦았다. 회사가 있으면 알아서 해결해 줄 테지만 내가 직접 그 앨범의 제작비와 맞먹는 돈을 부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서 다른 이의 곡을 커버하기로 했는데 경모의 데모를 들어보고 난 그 곡을 커버하기로 하였다 경모는 우연하게도 edith sitwell의 시에 멜로디를 붙였는데 최초의 데모보다 템포를 늦추어 이보우를 삽입하여 마무리.

8. 문라이즈 (연주곡)
이 곡 역시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보고 느낀 감동을 당시엔 기타 두대로 클래식에서 말하는 협주곡이란 식으로 제목을 붙여볼려고 했었다. 헌데 이번 앨범을 녹음하면서 리코더란 악기를 처음 연주해 보았는데(국민학교 이후 실로 첨이다) 느낌이 아련해 지는 것이 다른 현악이나 플롯등과도 많이 다른 것을 깨달았다. 해서 코스모스의 우민이가 피아노반주를 그리고 줄리아 하트의 현선이가 플롯을 연주해주었다. 현선이 역시 몇 년만에 잡아보는 플롯이었다고… 그리고 이후 난 리코더를 남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