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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an Dyk – Out there and back – Vandit, 2000 (국내 발매 SM/신나라, 2000)

 

 

트랜스의 제왕이 선사하는 레이버들을 위한 앨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트랜스(trance)라는 항목을 찾으면 “극도의 기쁨 혹은 황홀경의 상태”라고 설명한다. 테크노의 하위 장르로서의 트랜스는 1990년대 초반 애시드 하우스와 디트로이트 테크노에서 파생된 것으로,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를 중심으로 강하고 빠른 비트와 반복을 통해 청자를 ‘몰입의 상태’로 유도하는 스타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트랜스는 본질적으로 감상용이라기보다 댄스 플로어용이며 종종 ‘지적이지 못한 싸구려 음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또한 ‘스타를 거부하는 DJ 중심의 음악’이라는 테크노 음악의 ‘한’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트랜스를 지적인 경지로 승화시키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DJ 가운데 한 명이다.

폴 반 다이크의 이력은 다른 성공한 테크노 뮤지션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는 1971년 러브 러페이드(Love Parade)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나라인 독일 출신으로 10대 중반에 처음으로 하우스 음악을 듣고 자신의 미래를 정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부터 베를린에서 클럽 DJ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뉴 오더(New Order), 휴메이트(Humate), 스벤 바스(Sven Vath), 댄스 투 트랜스(Dance 2 Trance)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리믹스 작업과 1994년 첫 앨범 [45 RPM]으로 일약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 [Seven Ways]를 통해 베를린 최고의 DJ에서 세계 최고의 DJ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4년 만에 발표되는 그의 세 번째 앨범 [Out There And Back]은 한 마디로 레이버(raver)들을 위한 앨범이다. 여기서 그는 마치 신과의 만남을 주재하는 사제처럼 속세와 단절된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기 위해 숨막히는 비트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한 극단에 브레이크비트와 이질적인 샘플링의 삽입으로 ‘단절의 미학’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면, 폴 반 다이크는 반복적인 비트를 일관된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연속의 미학’이라는 또 다른 극단에 위치한다. 이 앨범은 바로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논스탑 리믹스 앨범에 가깝다.

첫 번째 곡 “Vega”는 여름 밤하늘을 대표하는 일등성 베가가 동쪽 하늘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시작한다. 이례적으로 사용된 브레이크비트와 베이스라인이 만드는 매력적인 그루브 위로 신서사이저 음향과 보컬이 신비롭게 떠다니는 곡이다. 4박자의 하우스 리듬(four-on-the-beat)과 앰비언트가 결합된 “Pikes”를 지나면 1999년에 싱글로 발표되었던 “Another Way”가 이어진다. 이 곡은 신서사이저의 단순한 리프만으로도 멋진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앨범을 대표하는 또 다른 트랙은 영국의 댄스 팝 그룹 세인트 에티엔(St. Etienne)이 함께 한 “Tell Me Why (The Riddle)”인데 강렬한 드럼 비트 너머 중층적인 사운드가 공간감을 자아낸다. 그밖에 “Together We Will Conquer”는 일종의 정거장 같은 트랙으로 앨범에서 가장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곡이며, 에스닉한 분위기의 보컬이 인상적인 마지막 곡 “We Are Alive”는 원시적인 에너지로 듣는 이를 압도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트랙들의 다른 버전을 수록하고 있는 보너스 시디는 리믹스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좋은 보너스 선물이 될 것이다.

폴 반 다이크는 레이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DJ이며 뮤지션들에게는 최고의 리믹스 프로듀서이다. 하지만 ‘일반 감상자’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한 번도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정확히 말한다면 ‘들을 수가’ 없었다). 롤러코스터의 아찔한 긴장감도 70분이 넘게 계속되면 참기 힘든 고통이 된다. 아무래도 그의 진가는 소문으로 떠돌고 있는 그의 또 한번의 내한 공연에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000829 | 장호연 ravel52@nownuri.net

6/10

수록곡
1. Vega
2. Pikes
3. Another Way
4. Travelling
5. Avenue
6. Tell Me Why (The Riddle)
7. Together We Will Conquer
8. Face to Face
9. The Love from Above
10. Columbia
11. Out There and Back
12. We Are Alive

보너스 CD
1. Santos
2. All I Need
3. Namistai
4. Another Way (Original)
5. Tell Me Why (Vandit re-mix)
6. Tell Me Why (Club Mix)
7. Face to Face (Piano Mix)
8. Together We Will Conquer (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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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폴 반 다이크 공식 홈페이지
http://www.paul-van-dyk.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