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g – Dongs of Sevotion – Drag City, 2000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고찰 미국 로 파이(lo-fi) 계열의 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스모그(Smog)는 벡 한센(Beck Hansen)의 벡(Beck)처럼 미국 메릴랜드 출신의 빌 캘러핸(Bill Callahan)의 일인밴드(one-man band)이다. 올해 나온 [Dongs of Sevotion]은 1992년 데뷔 앨범 [Forgotten Foundation] 이후 지금까지 나온 앨범으로 아홉 번째인 셈이다. 활발한 음악 활동에 비해 국내엔 아직 그의 앨범이 라이센스로 발매된 적이 없으니 계속 비싼 돈 주고 수입 음반을 구하는 데 만족해야 할 듯하다.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초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빌 캘러핸의 나른하고 읊조리듯 한 보컬과 그것을 통해 표출되는 지극히 냉소적이고 무미건조한 유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어쩐지 중세 교회처럼 보이는 곳에서 장엄한 찬송가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앨범 커버에 비해 타이틀은 엽기적이다. 알파벳 단 두 개의 위치바꿈으로 ‘헌정의 노래’를 저속한 표현으로 타락시켜버린 것이다. 이러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미지의 역설적인 만남은 본 앨범에서 사운드와 가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포크에 기반을 둔 전작 [Knock, Knock]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에서는 ‘새드코어(sadcore)’라는 그의 음악 스타일에 걸맞게 가사는 더욱 차가워졌고 다양한 스타일의 실험이 시도되었다. 첫 트랙 “Justice Aversion”은 느린 힙합 스타일로 시작되면서도 반복적인 신서사이저 연주가 일렉트로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다. 사자와 얼룩말의 처절한 생존투쟁의 모습을,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의 영화 [씬 레드라인]에서 이성을 잃고 오로지 일본군 진지를 향해 돌진해가며 미쳐가는 고든 대령의 군대 같은 인간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빗대고 있다. 이어지는 “Dress Sexy At My Funeral”은 빌 캘러핸의 역설적인 유머가 돋보인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장례식날 아내에게 섹시한 옷을 입고 조문객들에게 해변에서의 진한 추억과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었는지를 얘기해 보라지만, 그 얘길 듣고 무덤 앞에서 고개 숙인 이들이 킬킬대며 상상하는 것은 뻔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위선적인 이중적 모습을 그는 흥겨운 컨트리 곡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트랙 “Bloodflow”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곡이다(혹자는 ‘얼트-컨트리’라고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보니 황신혜 밴드의 “짬뽕(관광버스 버전)”이 떠오른다. 뽕짝에 가미된 엽기적 코러스에 웃음을 참을 수 없듯이 아예 진짜 치어리더를 동원해 응원구호를 외치는 듯한 코러스는 절로 웃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노랫말은 인간의 잔인하고 동물적인 본성을 얘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블루스곡 “Strayed”라든지 강하게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The Hard Road” 등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이 귀에 끌린다. 그러나 그의 곡들이 결코 귀에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로 파이 음악의 거친 음색은 그렇다 치더라도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못해 자학적이고 처절하기까지 한 가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느릿하고 모호하게 읊어대는 그의 노래는 언뜻 불편하고 어색하다. 마치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의 노랫말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음악에 맞춰 레너드 코헨이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빌 캘러핸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음악에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신에게 잔인해지는 것이 자신이 요즘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방식은 영화 [소나티네]의 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Kitano Takeshi)에서도 볼 수 있다. 시종 무표정한 얼굴로 무참히 동료 야쿠자를 살해하던 그가 스스로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댈 때 입가에 번졌던 환한 웃음은 역설적으로 죽음의 처절함을 배가시켰고 그것은 일상에서 그려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파괴였던 것처럼, 어쩌면 빌 캘러핸의 음악도 이와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는 인간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지난 8년여의 음악 활동을 통해 얻은 명성과 성공에도 철저히 인디 뮤지션의 위치를 지켜나간 그는 결코 다른 것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과 처절히 싸워 나가기에 장엄한 엔딩곡 “Permanent Smile”에서 “Oh God I never ask why”라고 미소지으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신혜 밴드의 엽기적 사운드에 킬킬대다가도 “…세상이 뭔지 맛좀 볼래”라는 의미심장한 가사에 웃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는 이라면 결코 이 앨범을 듣고 미소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000830 | 김승익 holy3j@hotmail.com 7/10 수록곡 1. Justice Aversion 2. Dress Sexy At My Funeral 3. Strayed 4. The Hard Road 5. Easily Led 6. Bloodflow 7. Nineteen 8. Distance 9. Devotion 10. Cold Discovery 11. Permanent Smile 관련 사이트 스모그와 빌 캘러핸 사이트 http://www.pry.com/smog/ 가사, 인터뷰, 리뷰 등을 볼 수 있다. http://listen.to/smog 스모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