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02012447-limhj임현정 – 은하철도 999 – 동아기획/동아뮤직, 2000

 

 

주류로 도약하려는 음악인의 설레임과 두려움

“임현정이 누구야, 김현정 아냐?”라고 물어볼 ‘일반인’이 꽤 많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본인은 섭섭하겠지만 그게 한국 가요계의 현실. 그렇다곤 해도 1년전 쯤 모 캔 커피 CF에 삽입된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와”로 시작하는 낭만적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가수의 이름보다 노래가 더 많이 알려진 케이스다. 요즘도 라디오 방송에서는 “네 곁에만 있어줄게 내가 너를 지켜줄게 / 너만의 내가 되어줄게(예예예)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라는 가사를 가진 친숙한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 ‘히트곡’을 만드는 노하우를 체득한 듯한 노래다. 누굴까?

“미미미 파미레도 시도레미…(중략)…솔도 라도 시도레도”하면서 계명도 따라 부를 수 있을 무난한 멜로디지만, 프로그래밍된 드럼 루프(loop)와 진짜 드럼이 함께 깔아주는 리듬 위에서 “첫사랑”처럼 현악기가 전체적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면서 ‘모던’한 감각을 풍긴다. 목소리는 얼핏 들으면 ‘옛날 가수(?)’ 신형원을 연상시킨다. 밝은 노래를 부를 때도 묘한 어두움이 묻어 있는 목소리 말이다. 요즘 방송횟수 4-5위를 차지하고 있는 임현정의 곡이다. 그녀가 가수일 뿐 아니라 작사자이자 작곡자, 이른바 싱어 송라이터(singer songwriter)이자 프로듀서라는 사실은 적어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세 번째인 이번 앨범은 전작들과 달리 밝고 낭만적이다. 앞서 언급한 타이틀곡 “고마워요”같은 건전한 사랑 노래와 “이별”(4번 트랙)처럼 슬프지만 감상적이지 않은 이별 노래가 앨범에서 가장 잘 들어오는 곡들이다. 그밖에도 흥겨운 관악기 소리가 인상적인 “조금만”, 디스코풍의 베이스 기타가 튀는 “솔로! 안녕”, 파도소리의 효과음과 바이올린 소리가 어우러진 “서해예찬(서해에서)” 등의 곡들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 많은 음악인의 욕망을 반영한다. 물론 앨범 중반부에 포진된 “Fiction”이나 “나에게”처럼 ‘로커(rocker)’의 전력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곡들도 있다. 이런 곡들에서는 ‘한국 최고 기타 세션’인 신윤철의 연주 솜씨를 즐길 수 있고, 테크노의 프로그래밍된 사운드가 록 음악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도 느낄 수 있다.

“양철북의 오스카, 가위손의 에드워드처럼 소외된 사람들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스스로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구를 떠나다”라는 해설지의 문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 훌쩍 도약하려는 뮤지션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심정은 음반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특히 “난 다시 태어날 거야”라고 나직이 그렇지만 힘있게 외치는 마지막 곡 “은하철도 999″가 그렇다. 테크노의 기계적 리듬으로 시작하여, 3박자의 잔잔한 왈츠를 거쳐, 피아노와 현악기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기타 솔로로 마무리되는 이 곡은 차분하지만 굳은 다짐으로 들린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 명의 음악인이 ‘아마추어적인 티를 벗고 자기 세계를 확립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 세계는 물론 대안적인 것이 아니라 ‘주류적’인 것이다. 그럴 땐 “재능있는 음악인이 주류 음악계에서 ‘오버’하지 말고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라는 덕담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하다. 20000828 | 신현준 homey@orgio.net

5/10

수록곡
1. Now
2. 고마워요
3. 조금만
4. 이별
5. Fiction (만나고 싶다! U.F.O.)
6. 바다예찬 (서해에서)
7. Solo! 안녕~
8. 나에게
9. 첫사랑
10. 은하철도 999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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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