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대중음악판의 가장 큰 의문점은, 록 음악이 왜 아직도 확실히 망하지 않았는가도 아니고 테크노 음악이 왜 아직도 확실히 뜨지 못했는가도 아니다. 그것은 구시대의 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영원히 미국 동부의 작은 집단만의 음악으로 남으리라고 생각되었던 포크 음악이 왜, 어떻게 부활하게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최초의 ‘얼터너티브 밴드’ REM이 포크와 록과 펑크와 팝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전혀 다른 스타일을 주조해낼 때까지만 해도 긴가 민가했다. 벡(Beck),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 같은 미국의 X 세대 젊은이들이 포크를 ‘제멋대로’ 주물럭거릴 때는 포크가 드디어 종말에 이르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이들의 음악은 포크인 만큼이나 반-포크(anti-folk)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70년대 포크의 정서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포크 노래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반-반-포크(anti-anti-folk)? 아직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 가락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같다. 90년대의 포크 씬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는 다른 글로 미루도록 하자.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 아메리칸 뮤직 클럽(American Music Club), 포그스(Pogues) 등 퍼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지만, 꼭 필요할 때라도 굳이 기억을 짜내거나 자료를 뒤적거리기 싫어하는 게으른 천성 때문에 일단은 방바닥에 굴러 다니는 CD 몇 장에 대해 중얼거리기.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 적지 않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이 잔잔한 반향을 증폭시킨 것이 영화 전반에 깔리던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많다. 엘리엇 스미스는 그때까지만해도 고향인 포틀랜드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포크 가수였다. 그의 여리고 내면적인 노래들은 칠십년대의 포크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나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을 연상케 했다. 때로는 아름다운 선율이나 화음로 비틀스의 향취를 풍기기도
했다.

엘리엇 스미스가 갑작스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분명히 영화 [굿 윌 헌팅] 때문이었다.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의 감독이기도 한 이 영화의 감독 거스 밴 산트(Gus van Sant)는 칙칙하고 황량한 미국 서부의 땅 포틀랜드 주 토박이인 엘리엇 스미스와 동향 친구였다. 거스 밴 산트는 그의 초기 노래들을 영화에 사용할 것을 제의했고, 엘리엣 스미스는 이전의 노래 다섯 곡과 함께 영화를 위해 새로 한 곡을 만들기까지 했다. 무명 싱어송라이터에 불과했던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 “Miss Misery”는 아카데미 ‘베스트 오리지널 송’에 지명되기에 이르렀고, 그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물론 상은 셀린 디옹이 가져갔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엇 스미스의 이야기는 또하나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난 오늘 하루를 그냥 허식으로 살아갈꺼야 / 조니 워커 레드의 힘을 빌어서”라고 읊조리는 “미스 미저리”의 쓸쓸한 첫 구절은 이미 영화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영화가 엘리엇 스미스의 덕을 봤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의 노래는 기타와 목소리뿐인 단순한 구성이지만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다 담고 있다. “No Name #3″에서처럼 때로는 힘이 쭈욱 빠진 듯이 노래부를 때나, “Say Yes”에서처럼 때로는 가늘게 떨며 노래부를 때나, 그 황량함 속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감춰져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현대 도시의 속도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은 멀리 미국 대륙을 훌쩍 건너 스코틀랜드에서 엘리엇 스미스와 함께 공명했다. 벨 앤 세바스찬은 영국에서는 몇 년전부터 입에서 입을 타고 조금씩 유명해지게 되었지만, 리더가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k)이라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7인조라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을 만큼 외부와 접촉을 꺼린다.

나른하고 슬픔에 찬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을 듣다보면, 질식할 듯이 위태롭게 살다가 결국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은 70년대 영국의 포키인 닉 드레이크(Nick Drake)를 쉽게 연상하게 된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태도도 닮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얘기를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상상하고 노래하는 것도 닮았다.

[The Boy With the Arab Strap(아랍식 가죽끈을 한 소년)]이라는 앨범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벨 앤 세바스찬의 노래 가사는 비의적이다. 화성 여행의 두려운 경험을 노래하는 “A Space Boy Dream”에서처럼 이들의 노래는 잘 짜여진 구성의 이야기를 갖는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은 가장 슬픈 노래야 / 누군가 함께 불러준다면 행복할꺼야”라고 노래하며 극한의 슬픔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렇게 가장 극단적인 감정에 치달을 때도 나른한 목소리는 한 옥타브 밖으로 좀체로 벗어나지 않으며, 때로는 자꾸 숨어드는 것처럼 들린다. 바로 이때 7인조 편성을 바탕으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악기들 사이가 숨기좋은 장소가 된다. 튀지는 않지만 곡마다 조금씩 바꾸어가며 리듬을 엮었고, 잘못 쓰면 ‘싸구려 카페 음악’처럼 들리기 쉬운 현악과 관악도 고급스럽게 사용했다.

그런데 힘없어 보이고 읊조리는 바로 그 목소리가 청자의 귀를 끌어들인다. 이런 목소리와 기교없는 노래 스타일은 별거 아닌 것같지만, 결코 흔치 않은 목소리이고 쉽지 않은 스타일이다. 약간 무표정한 목소리는 황량하게 들리지만, 어떨 때는 나른하게 들리고, 또 어떨 때는 슬픔을 가득담은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만큼이나 감정에 넘치는 것처럼 들린다. 스튜어트 머독의 목소리가 가지는 풍부한 배음은 작고 낮지만 크고 강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예컨대 “Dirty Dream Number 2″에서처럼 좀 떠들썩한 여러 악기 사이에서 들릴듯말듯 위태로우면서도 또럿이 기억된다.

엘리엇 스미스와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에 감동하다가 문득 의문을 던진다. 팀 버클리 (Tim Buckley)와 닉 드레이크,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리키 키 존스(Richie Lee Jones)를 좋아했던 ‘올드 팬’을 위한 ‘회고용’ 음악일까. 혹은 그런 사람들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세대들을 위해 적절하게 제공된 ‘정서 훈련용’ 음악일까. 이런 미심쩍음에 대한 대한 해답은 베쓰 오튼(Beth Orton)이 준비하고 있다.

베쓰 오튼은 반드시 ‘어쿠스틱 포크 팝 가수’라고 한정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위의 두 뮤지션과는 좀 다른 다르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가장 오래된 포크 음악과 최첨단 테크노 음악 간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영국 노르위치 출신의 베쓰 오튼은 최고의 테크노 듀오인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앨범 [Exit Planet Dust]에 객원 보컬로 참여함으로써 유명해졌다. 휘몰아치는 테크노 리듬 속에서 위태롭게 흘러나오는 천상의 목소리. 그녀는 초대 가수로 인식되었지만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내 독립적인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두 번째 솔로 앨범인 [Central Reservation]은 어쿠스틱 포크의 투명한 아름다움과 트립 합이라는 테크노의 음산한 리듬을 결합시키려는 그녀의 기본적인 계획을 이어나가면서도, 전작보다는 포크, 재즈, 블루스와 같은 전통에 치중했다. “Stars All Seem To Weep”같은 곡은 전 앨범의 곡들처럼 둔탁하고 어두운 트립 합 리듬 속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Sweetest Decline”이나 “Feel To Believe와 같은 곡에서는 그녀의 깨질 듯하게 위태로운 가운데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블루스 혹은 소울 풍의 목소리가 더욱 부각된다. “Central Reservation”에서 “바다 한가운데서 사는 것 같아 / 미래도 없이 과거도 없이 / 모든 것이 지금은 괜찮아 / 그렇지만 더 이상 계속되지는 말았으면”과 같은 가사의 쓸쓸함은 더할 수 없이 투명한 목소리의 신비감과 결합하여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말이다.

60년대의 포크 음악은 밥 딜런(Bob Dylan), 조운 바에스(Joan Baez)와 같은 프로테스트 송을 통해 작은 목소리가 모이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니 미첼, 잭슨 브라운, 팀 버클리, 닉 드레이크와 같은 70년 대의 포크 음악은 대중 음악을 통해서도 가장 개인적인 내면 세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90년대 말의 포크 음악은 모두가 시끄럽고 크게 소리지를 때 가장 낮고 가장 작은 소리가 가장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포크 음악의 힘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멈추어 서서 무언가를 진정으로 느끼고 절실하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크 음악은 어른인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이 한때의 감상에 그칠 것인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베쓰 오튼은 말한다. “나는 내 노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참할 정도로 슬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안에는 희망도 얼마든지 있죠. 그건 당신이 절반 정도 공허하게 느끼는지 아니면 절반 정도는 충만하게 느끼는 지에 달려있습니다.” 19990915 | 이정엽 evol21@weppy.com

관련 사이트
엘리엇 스미스 Sweet Adeline
http://members.tripod.com/~pitseleh/elliottsmith.html
무엇보다도 그의 가사와 기타 탭 악보

벨 앤 세바스찬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lleandsebastian.co.uk/main/index.shtml
벨 앤 세바스찬의 모든 것. 정말 괜찮은 예쁜 홈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