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음반 매장에 가보면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갱스터 랩’을 포함한 랩 음반들이 무더기로 나와 있는 것이다. 국내의 랩 음반이 아니라 본토의 랩 음반이고, 대부분은 가사가 폭력, 섹스, 약물 등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것들이다. 갑자기 웬 일인가하고 궁금해했더니 사전 심의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996년의 국내음반 사전 심의제가 폐지된 후 3년 뒤 외국 음반에 대해서도 사전 심의제가 폐지되었다. 이제는 금지곡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던 것으로부터 ’18세 미만 이용 불가’라는 내용의 딱지를 붙여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사전 심의제가 사라지면서 과거 ‘금지곡에 얽힌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도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1975년 225곡을 금지곡으로 규정했던 박정희 정권의 ‘문화 대학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다. 그 뒤로 웃지 못할 코미디도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한두 곡이 삭제된 채 발매되는 경우는 부지기수였고, 자켓 사진이 ‘반려’되면 몇 주 뒤 썰렁하게 둔갑하는가 하면, 원 앨범에는 없는 곡이 들어간 ‘한국에만 있는 편집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1968년 혁명을 ‘비판’한 비틀스의 [Revolution]과 러시아인들을 비판한 스팅의 [Russians]는 ‘제목만 보고’ 금지곡이 된 케이스다. 2년 전에는 데쓰 메탈 밴드 캐니벌 코스 (Cannibal Corpse)의 음반을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다. ‘가사 변조’로 심의를 통과한 일이 빌미가 되어 직배 음반사 직원 2명이 구속되었는데, 가사 변조는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관행화된 편법이었다. ‘먹고살려고 한’ 일이라도 ‘법대로’ 하면 구속이 불가피했던 현실의 단면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금지의 대상이 ‘퇴폐'(패배, 자학적, 퇴폐적 가사)로 출발하여 ‘불온'(“국가안보, 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는”)으로 이어진 반면, 해금은 그 반대의 수순을 취했다는 점이다. 1989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반전 가요나 저항 가요는 해금되었어도 섹스, 살인, 폭력 등을 선동하는 가사는 여전히 금지 상태로 묶여 있었다. 그래서 금지곡의 주요 대상은 데쓰 메탈이나 갱스터 랩같이 과격하고 ‘부도덕한’ 음악이었다. 이런 음반들에는 계속해서 ‘딱지’가 붙을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지배적 논리가 ‘불온은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어도 퇴폐는 용납할 수 없다’, ‘정치적 반대는 허용되어도 도덕적 타락은 금지된다’는 식으로 변했다고 보는 것은 좀 비약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음악이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이나 첨바왐바(Chumbawamba)같이 좌익 정치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밴드의 음반 발매가 허용됐을 리가 없다. 그것도 몇 년된 이야기다. 하긴 다른 나라의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불온한 것이든 퇴폐적인 것이든 한국의 음악 팬들은 단지 ‘사운드’를 즐길 뿐 ‘메시지’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 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퇴폐적(이라고 간주되는) 음악에 아직도 등급을 매기는 것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부도덕한 음악은 사회의 윤리를 저해하므로 더 위험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반대는 반사회적이지 않지만 도덕적 타락은 반사회적이다? 아무튼 이제 음악도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이 되었고, 이 기호품에 대한 사회의 공식 입장은 ‘청소년에게는 위험하지만 성인에게는 안전하다’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중고생 입장가라고 써붙인 영화는 중고등학생도 보러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는 ‘연소자 이용 불가’ 딱지가 붙지 않은 음반은 ‘시시하다’고 생각하여 판매가 시원치 않은 일도 발생할 지 모른다. 미국에서 갱스터 랩에 갈수록 경쟁적으로 욕설이 난무했던 것은 사실은 음반 판매를 노린 상업주의의 소산이라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금지’마저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곡과 판금이라는 제도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의 보호’라는 순기능보다는 ‘한국 사회에 대한 환멸’이라는 역기능이 더 컸으므로 심의 폐지에 뜨악한 표정을 보낼 이유는 없다. 마지막 질문은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오래전 구매한 라이센스 음반들 중 수록곡이 무단 삭제된 음반들의 환불이나 반품은 어디에 요구해야 할까? 음반 포장 위에는 금지곡이 삭제되어 있다는 정보도 기록되지 않았고 그저 모두 수록되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돌리도! 19991001 | 신현준 homey@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