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분다. 스산하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다. 이런 기분을 느끼기에는 도시보다는 교외가 적당하고, 시간대로는 늦은 오후가 제격이다.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고, 찬 서리의 기운도 남아있는 교외의 가을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기분을 던져준다. 간이역에 앉아 있을 때 비까지 내린다면… 교외를 떠나 차에 올라타면 라디오에서는 이맘 때면 단골로 나오는 노래가 있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최양숙의 “가을편지”, 최백호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고은희 이정란의 “사랑해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동원의 “이별노래” 등등. ‘웬 청승’이라고 핀잔을 주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사람이 계절을 타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가을 노래들은 대부분 ‘포크 음악’에 속한다. 물론 ‘정통’ 포크는 아니지만 포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정통 포크 음악이라고 크게 다를까. 대부분은 가을의 오후에 제격이다. 갑자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시절 대학생 형 누나들이 ‘싱얼롱 타임’에서 부르던 포크 송들은 대부분 ‘여름 노래’였다. “그림자 지고 별 반짝이면…”,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등의 가사가 담긴 노래들은 모두 여름의 송가였다. 포크송이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을 옮긴 이유는 그저 추측해 보는 수밖에는 없다. 포크 가수들의 물리적 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리상자, 이승훈, 더 클래식 등의 ‘젊은’ 포크 뮤지션들은 ‘애늙은이’ 취급 당한다. 포크 음악이 젊은이의 음악에서 중년의 음악이 된 것은 음악인이 나이든 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나이들었기 때문이다. 통기타를 치면서 나직이 노래부르는 목소리를 좋아할 25세 이하의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18세 이하는 아예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포크 열풍’이 있었다. 지난 4월 ‘포크 페스티벌’에 이어 고급 공연장에서 사람을 교대해 가면서 장기 공연도 있었다. 이것만은 아니다. ‘포크 싱어협회’와 ‘포크 30주년 기념사업회’ 등의 이익단체도 생겼고, 몇몇 평론가들은 일간지나 잡지에 포크 음악과 연관된 조류들을 소개해 왔다. 또한 과거의 노래들을 편집 음반으로 내려는 노력도 계속되어 왔다. 음반 매장에 가보면 ‘명작’ 시리즈, ‘한국 포크 명곡들’, ‘386세대가 듣던 노래들’ 같은 음반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 서울 교외에는 수많은 통기타 라이브 카페가 만들어져 하나의 ‘씬(scene)’을 이루고 있다. 소파에 앉아 밥 먹으면서 음악을 듣는 문화 말이다. 디너쇼의 대중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풍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차분하다. 포크 리바이벌이 그저 ‘IMF 시기 중년층을 위한 위민 행사’는 아니었는가라는 의견도 있다. 나이든 이들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정도의 반응이고, 젊은 애들은 이런 일에 관심 밖이다. 대중 음악의 ‘선진국’인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겉으로는 ‘세대 반항’ 어쩌구 해도 자국의 포크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아 ‘모던’한 감정을 표현하는 ‘젊은’ 음악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시장에서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포크와 록이 별도의 ‘장르’가 아니라 ‘folk & rock’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장르로 묶여 있다. 반면 한국에서 포크와 록은 ‘다른’ 장르다. 도 아니면 모, 포크 아니면 록이다. 포크 록은 없다. ‘악기 중심의 장르 정의’는 왜 이렇게 강고한지 통기타를 들면 포크고 전기 기타를 들면 록이다. 그 이유를 따져보기는 왠지 구구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지금 ‘멋모르고 막나가는’ 20대라면 이렇게 말할 듯하다. “현재의 포크 리바이벌은 현대 매스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세대, 7-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의 조직적 ‘저항’이다. 물론 그 주체는 세대의 성원 전체라기보다는 엘리트에 속한다. 저항의 무기는? 한마디로 노스탤지어다.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던 과거’든 ‘실천적으로 투쟁했던 과거’든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경제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 문화적 권력마저 장악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면 틀린 말일까. 틀린 말이다. 문화 권력의 대부분을 소유한 이들이 음악 문화에 대해서도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을 제외한다면 이 세대들은 이미 드라마, 뉴스 등을 통해 이미 문화적 권력 대부분을 장악한 상태다. 이제는 음악까지도? 그 미학은 다름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는 지나갔고, 앞으로 나올 음악은 그때의 음악에 비추어 조명되어야 하고, 음악의 본질은 메시지와 차분함이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전기 기타나 전자 음향의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사회는 시끄러워도 음악은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좀 심한 표현이지만 미사리 카페 앞의 플래카드에 적힌 흘러간 포크가수들의 이름은 작부들의 이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늙었다. 또한 내 주위에서 이런 항변은 들리지 않고 단지 ‘무관심’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단지 이렇게 읊조리고 싶을 뿐이다. 포크 음악이 ‘음악 장르’일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음악’이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포크 음악이 주류 가요계의 한 장르가 되기 이전부터 ‘대학생 커뮤니티의 은어’였다면, 새로운 포크 음악의 부재와 소멸의 일차적 이유는 대학생 커뮤니티가 형해화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지금의 대학생들 대부분은 10대 시절 들었던 음악을 계속 들으며, ‘소수’는 정치적 구호와 조야한 음악이 결합된 스타일(이른바 ‘민중 가요’)을 아직도 들으며, ‘극소수’는 영미권에서 생산된 ‘선진적’ 음악에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소상한 사정을 알 수는 없으므로 나이든 이의 피상적 관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해바라기, 장필순, 이문세, 안치환의 새 음반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지금은 에쵸티와 에쎄스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도 한때는 좀 ‘가요풍’이긴 했지만 포크 계열의 음악을 했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음악을 계속 한다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노스탤지어만을 느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망설임을 낳는다. 한편 ‘포크로부터 영향받은 인디 음악’을 표방한 작은 페스티벌인 ‘소란 99’가 10월 말에 열린다(페스티벌의 이름과는 좀 안 어울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건 또 젊은 사람들 아니면 올 만한 데가 못되며,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취향은 소수다. 아, 가을이 깊어간다. 19991015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글 1999년에 포크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vol.1/no.3 [19990916] 관련 사이트 소란 99 http://soran.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