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틀스(Beatles)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록 밴드’라는 의견에 찬성한다. 그렇지만 21세기가 다가올수록 그보다 위대한 것은 레코딩 테크놀로지 같아 보인다. 지금 내 손에 들려진 [Yellow Submarine Songtrack]을 들으면서 확실히 굳힌 생각이다. 이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은 4년전 죽은 존 레넌을 불러내서 “Free As a Bird”를 완성하여 [Anthology]를 내놓은 사건을 계기로였다. 데모 테입에 실린 존 레넌의 목소리를 가지고 다른 멤버들이 연주를 보태어서 곡을 ‘완성’한 것이다. 각각 두 장씩 CD로 무려 6장에 이르는 미발표 트랙 모음집 [Anthology] 1, 2, 3을 위한 팡파레로서는 딱 좋았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미발표’ 트랙들은 그냥 미발표인 채로 두었으면 좋았을 꺼라는 생각도 했지만. [Yellow Submarine Songtrack]은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원래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기획되었던 비틀스의 앨범 [Yellow Submarine]이 현대의 디지틀 음악 테크놀로지를 통해 [Yellow Submarine Songtrack]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원본에는 비틀스 노래가 단지 다섯 곡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비틀스의 열 다섯 곡을 모두 실었다. 비틀스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그렇지만 한국에는 가장 덜 알려진 시기)였던 1960년대 중후반(1965~8년)의 사랑스런 노래들이다. 4트랙의 한계에 갖혀있던 옛 노래들은 현대의 음악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새로 태어났다. 원래 왼쪽 혹은 오른쪽에 치우쳐 한꺼번에 뭉그러져있던 악기들이 각각 분리되어 입체적 공간에 적절히 배치되었다. 부족한 트랙 수 때문에 모노로 밋밋하게 뭉쳐져있던 “Eleanor Rigby”의 여덟 개의 현악기들은 각각 분리되어 양쪽에 입체적으로 배치되었고 폴 매카트니의 보컬과 아름다운 화음은 현악 8중주와 서로 스며들어 원곡의 우아한 분위기가 더욱 돋보인다. “All You Need Is Love”의 관악기 소리는 더욱 웅장해졌고, 양쪽에 각각 고립되어 있던 “Nowhere Man”의 보컬은 보다 생동감있는 화음으로 되살아났다. 목소리와 악기들이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각각 또렷하게 들리면서도 조화를 이루었다. 노래들의 원래 주인 중 한 명인 폴 매카트니도 디지털화된 노래를 들어보고 “놀랍다. 예전에 우리가 녹음했을 때 묻혀있던 소리들이 이제는 여러 방향에서 각각 튀어나온다. 정말 생동감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폴 매카트니가 놀란 것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그렇지만 그 놀람은 좀 다른 방향이다. ‘재발매라는 판매 전략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흘러간 노래들의 목록(‘백 카탈로그’)을 재발매하는 건 짭짤한 장사다. 왜냐하면 단지 리마스터링이라는 테크놀로지 과정만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음반이 하나 나오기 때문이다. ‘기본’은 먹고 들어가므로 얼마나 팔릴지도 모르는 신인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위험한’ 일보다 훨씬 ‘안정된’ 장사다. 재발매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CD라는 포맷의 개발이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베이비 붐 세대는 어릴 때 들었던 추억을 변함없는 음질로 영원히 간직하고자 비닐판으로 다 가지고 있는 걸 CD로 다시 사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에 ‘보너스 트랙’, ‘희귀 트랙’, ‘얼터너티브 테이크(alternative take)’ 등을 몇 곡 덧붙여주기만 한다면 판매는 보장된다. 특히 히트곡 모음집이나 미발표곡 모음집의 패키지인 ‘박스 세트(box set)’는 백 카탈로그를 재활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라이브,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전집, 밥 딜런(Bob Dylan)의 바이오그래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전집 등 미려한 ‘호화장정’에 값비싼 박스 세트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피들이 크리스마스 때 주고받는 선물이 되었다. 최근에는 너바나(Nirvana),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등의 싱글 모음집 박스 세트도 나왔지만 말이다. 재발매, 박스 세트의 단골 메뉴가 되는 건 역시 비틀스다. 예전의 LP가 모조리 CD로 재발매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스물 몇 장짜리 싱글 모음집, 미발표곡 모음집 박스 세트 등은 다른 뮤지션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비틀스의 모든 비닐(초기의 영국판, 미국판 모두), 80년대에 재발매된 CD, CD 싱글 전집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Anthology]까지 모조리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이 많은 올드 팬이 있다면? 그러고 보니 [Yellow Submarine Songtrack]에 녹음된 ‘신곡’과 예전의 ‘구곡’ 간의 차이를 세밀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바로 이들 올드 팬들밖에 없다. 결국 지금까지 나온 모든 비틀스를 산 사람에게 ‘또다시’ 비틀스를 사게 만들려는 판매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의 돌격대는 테크놀로지다. 그런데, 당신도 그거 사지 않았냐고? 19991015 | 이정엽 evol21@wep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