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적인 인사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관된 평단의 지지, 팬클럽 결성, 그리고 라디오, TV 출연까지. 그리고 지금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 우리에게 도착되었다. Welcome To The Delihouse !

잠시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97년이 끝나갈 무렵의 대학로 꼼바홀로 돌아가 보자. 지금 이 곳에서는 앨범을 발표한지 6개월 쯤 된 신인(!)밴드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 클럽 공연 정도야 간단하게 매진시키던 이들이지만 일주일 간의 소극장 공연은 아직 힘에 부치는 일인듯 평일 공연의 관객수는 조금 민망할 정도이고,

그래서인지 공연을 하는 밴드도 조금은 맥이 빠진 듯 하다. 하지만 이후 이들이 일년이란 시간 동안에 걸쳐 대중의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은(지상파에 의존하는 이들에 비해서 소규모 집단에 불과하지만) 프로모션에 의존하지 않은 그래서 조금은 의아스러운 자연스러움이었다. 의례적인 인사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관된 평단의 지지, 팬클럽 결성, 그리고 라디오, TV 출연까지. 그리고 지금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 우리에게 도착되었다. Welcome To The Delihouse !

지난 앨범 발매 기념 클럽 공연의 매진에 답하는 뜻으로 열린 클럽 마스터플랜에서의 앵콜 공연. 역시 매진. 150명으로 인원을 한정했지만 “귀향”으로 공연이 시작되자 클럽 안은 곧 한증막으로 돌변한다. 클럽으로 델리 스파이스의 공연을 찾아오는 팬들도 이제 이 얼굴이 그 얼굴인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이고, 2집의 “달려라 자전거”는 심심치 않게 라디오 방송에서 들린다. 델리 스파이스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그들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는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이들이 델리 스파이스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가 데뷔 앨범에서 보여준 풋풋한 재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델리 스파이스는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후 서서히 완만한 곡선으로 반응을 얻었고, 그러한 데에는 조그만 공연에도 성실하게 준비하는 자세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분명한 시각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 델리 스파이스의 이러한 태도는 이들이 참여한 두 장의 옴니버스 앨범 [Rewind]와 산울림 트리뷰트 앨범 [77 99 22]에서도 잘 드러난다. [Rewind]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77 99 22]의 “회상” 리메이크는 성의 있는 태도와 재기있는 아이디어가 결합한 델리 스파이스의 향이 제대로 배어있는 연주였다. 지난 2월 2집 [Welcome To The Delihouse]를 발표하고 타이틀곡으로 밀고 있는 “달려라 자전거”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친, 그리고 7월초의 대학로 SH클럽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델리 스파이스와 [weiv]의 만남, 그리고 오랜만의 수다.

[weiv] : 오랜만이예요. 2집 나오고 바쁘셨죠? 2집 작업이 1집 때와 달랐던 점이 있었어요?

김민규 : 예전에는 편곡이 완료된 상태에서 스튜디오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처음 맞추어본 곡도 있어요. 그러니까 1집 때는 라이브를 스튜디오에서 아주 똑같이 잘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기본이 되는 가사, 멜로디만 가지고 들어가 스튜디오에서 같이 편곡을 해나가는 식이었어요.

[weiv] : 1집에 비해 샘플링과 프로그래밍의 비중이 꽤 되더군요. 특히 윤준호 씨의 곡인 “미안” 같은 경우는 리얼 연주만큼 비중이 있던데요?

김민규 : 저는 VU(노이즈가든의 윤병주와 같이 했던 프로젝트) 이후 거의 미디 작업을 하지 않고 있어요. 미디 작업은 저보다 준호형이 관심있게 하고 있는 부분이죠. 저도 이번 앨범에서 샘플링을 사용했지만 드럼 사운드를 배치하는 등의 작업이 아니라 음향으로서의 기능 정도였어요. 곡 중간에 영화 다이얼로그를 삽입하는 것 같은. 하지만 자기 곡의 샘플링은 스스로 해요. 남이 해주진 않아요.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은 처음에는 이번 앨범에 넣지 않으려고 했던 곡인데 어떻게 하다가 넣기로 결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다시 미디 작업하는 것이 너무 끔찍해서 예전에 미완성 데모로 작업했던 것을 프랙탈에게 주면서 작업을 부탁했어요.

[weiv] :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에서 I Like Chopin 의 소절을 넣은 것은 데모 때부터 있던 아이디어였어요?

김민규 : 아뇨, 그게 프랙탈이 다시 작업을 하는 도중에 2절이 끝나고 16마디가 남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시 작업하자니 끔찍하고, 그래서 거기에 무엇을 넣을까 생각하다가 I Like Chopin의 소절을 넣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weiv] : 그리고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에서는 여성 객원보컬을 쓰더군요. 예전부터 여성 보컬 이야기를 하셨었죠. 그런데 민규씨가 원하신 목소리는 천사표 소리 쪽이 아니었어요?

김민규 : 주위에서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분이 그 분 밖에 없었고, 결과는 만족스러워요. 만일 (옐로우 키친의) 도순주 씨를 진작에 알았으면 그 분을 섭외를 했을 텐데.

[weiv] :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 뿐만 아니라 앨범 곳곳에는 80년대 팝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델리 스파이스가 공연에서 연주하는 커버곡에서도 드러나기도 하구요.

김민규 : 저희가 일부러 커버곡을 그런 식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예요. 방송국에 가면 반드시 커버 곡을 요구하는데 그들은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샬라탄스나 스톤 로지스의 곡을 원하는 게 아니예 요. 누구나 다 아는 곡들을 원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곡 정도는 해놓아야 겠다 싶어서 준비한 거 죠. 마스터플랜 공연에서 연주한 마돈나의 같은 곡도 그런 예로 준비한 곡이죠.

[weiv] : 첫 싱글이 “달려라 자전거”로 결정되었는데 사실 “종이비행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거든요.

김민규 : 그건 회사측의 결정이었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고 그런 일로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 결정대로 갔어요.

[weiv] : 앨범 아트워크가 1집에 비해 예뻐졌어요. 꼬마 숙녀(드러머 최재혁의 동생)를 모델로 쓴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어요?

김민규 : 처음에는 슈퍼마켓에서 펄프 뮤직비디오의 장면과 같은 비주얼을 해보려고 했었는데 타이틀이 바뀌면서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포스터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제가 소녀를 등장시키면 어떨까 하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weiv] : 멤버 교체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있어요?

김민규 : 용준이가 2집에서는 아직 자신의 지분을 확보한 것은 아니예요. 미디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곡 작업할 때는 용준이에게 편한대로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하라고 했어요. 아마 “원한다면”, “회상” 같은 곡의 연주가 용준이 스타일이겠죠. 지금 다음 앨범을 제 머리 속에서만 준비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준호형, 용준이, 저 세명이 세 곡, 다같이 해서 한 곡 정도씩 작업하는 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 달 부터는 곡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기도 하고, 했던 곡만 하면 지겹기도 하고 해서요. 지금은 “가면”, “챠우챠우” 같은 곡은 공연 전에 아예 연습도 하지 않아요.

[weiv] : CBS 라디오에서 ‘델리 스파이스의 우리들’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김민규 : 예. 그 프로그램은 전에 변진섭 씨가 진행하던 것인데 저희가 게스트로 몇 번 출연한 적이 있어요. 아마 그게 테스트였나봐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엽서를 받다보면 마치 사람들 일기를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느끼기도 하고. 지금은 청취자들이 계속 바뀌는 중이예요. 예전엔 신청곡 중 가요가 훨씬 비중이 컸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었어요. 희귀음반 틀어달라는 신청도 많고. 지금은 이런 활동이 압박을 못이겨서 하는 것은 아니예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니까. 예전엔 그 압박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다가왔는데 제가 고쳐야 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weiv] : 1집 시절 부터의 팬들이 한가지 아쉬워하는 점은 “귀향”, “사수자리”, “콘프레이크”와 같이 개인적이고 사변적이지만 감성적인 여운이 있는 곡의 비중이 적어졌다는 거예요.

김민규 : 그건 생활이 조금 달라지고 개인적인 생활이 바뀌어서 그럴꺼예요. 예전에는 나한테만 파고 들고 거기서 소재를 찾고 생각하고 했지만, 여행을 하고 그러면서 주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 것 같아요. 더 이상 나한테 갇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 예를 들어 팬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내가 팬의 입장에서 공연에 가고 공연 끝난 뒤 백스테이지로 찾아가고 그런 일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 공연에서 환호를 해주고 앨범을 사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이들인지도 알게되었고. 예전에는 왜 팬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지 납득이 안될 때도 있었어요. 그러한 점들이 반영된 곡이 “원한다면”이예요. 이 곡이 1집에 있었다면 굉장히 어색했을 꺼예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에서 제목을 차용했는데 그 영화에서는 결말이 없죠. 그래서 우린 앨범에 결론을 넣고 싶었어요. 상투적인 가사지만, 하하! 저에겐 소중한 곡이예요.

[weiv] : 델리 스파이스가 도달했으면 하는 지점이 있어요? 지금 소속사와도 3집까지 계약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민규 : 작년 말부터 생각해왔던게 밴드가 오래 가려면 우리 음반이 어떤 것이 나와도 사줄 수 있는 팬이 만명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때는 편하게 주위 신경 쓰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아직은 그 정도에 모자라니 활동을 열심히 해야죠.외국 인디 뮤지션의 경우를 보아도 십만장 팔리는 경우 드물고 대부분 일 이만장 판매량이지만 그 만명은 라디오 플레이 열심히 해서 팔린 만장과는 경우가 틀리죠.십만장이 팔려도 잠시 활동이 뜸하면 관심을 잃는 밴드보다는 확고한 팬 만명이 있는 밴드가 되었으면 해요. 예전에 동아기획에서 나온 판이면 무조건 사주는 팬들이 있었잖아요. 그런게 이루어져야만 어렵지 않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만명의 팬. 델리 스파이스가 원하는 지점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건 지상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들이 얻을 수 없는 팬으로서의 자의식이 형성되는 것과 함께 뮤지션과 팬이 제대로 공명하는 경험이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있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원한다면! 19990701 | 김민규 wanders@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