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내 전자 우체통(아니, 전자 사서함)에는 온갖 쓰레기 메일이 다 쌓인다. 대개 한꺼번에 ‘청소’를 하지만 종종 열어보는 메일도 있다. CD나우(www.cdnow.com)와 아마존(www.amazon.com)에서 오는 메일도 그에 속한다. 이 두 군데서는 이 주일 정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뉴스레터를 보낸다. 물론 메일을 보내서 뉴스레터를 보내지 말라고 요청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열어 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내가 이 사이트들에는 호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론 나한테 필요한 음악과 관련된 ‘정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쯤은 내가 요청해서 받는 메일인 셈이다. 이 두 사이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수 년 되었지만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로) ‘거래’가 끊긴 몇 달 후에도 메일은 열심히 날아온다. 컴퓨터가 해주는 ‘고객 관리’니까.

올해 초에 뮤직불바에서 왕창 주문한 건 힙합 CD였으므로 뉴스레터에서는 할인 행사, 무료 MP3 다운로드 안내 뿐만 아니라, 새로 나온 힙합 CD, 힙합 관련 뉴스도 꼬박 꼬박 보내준다. 인터넷 CD 샵과 처음 접한 건 2년이 조금 넘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잡동사니 CD에 목말라했던 시절, 인터넷 CD 샵을 찾게 되었고, 뮤직 불러바드(www.musicblvd.com)와 CD 나우는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CD 샵이었다. 이 두 사이트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여기 없는 CD는 다른 데도 없다”는 사실이었다(물론 이건 좀 과장이다. 그런데 뮤직불바에 없는 CD는 CD 나우에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두 회사가 같은 도매상과 거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구하기 쉽지 않았던 ‘인디 록’, ‘테크노’ 같은 CD가 단골 주문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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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었다. 그때는 IMF 구제 금융 이전이었기 때문에, 환율이 달러당 800원 정도에 불과했고,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한국에 수입된 CD를 사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더 쌌다.

두 사이트 중 나는 뮤직불바를 주로 이용했는데, 뮤직불바가 조금 싸기는 했지만 가격 차이는 미세한 것이었다. 뮤직불바는 음악에 대한 정보에 신경을 많이 썼고 CD 나우는 좀더 쉽고 편하게 CD를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이것도 큰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10장을 사면 한 장을 덤으로 주는 뮤직불바의 전략에 혹했던 것이다. LP나 CD 사는 건 정말 병적인 일이란 건 경험해본 사람(그리고 주위에서 혀를 차던 사람)이라면 안다. 아버지 카드를 빌려 한참 동안 뮤직불바에서 CD 주문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하긴 미국에서 예쁜 소포 박스에 담겨서 날아온 CD를 주위 사람들 앞에 끌러보일 때의 뿌듯함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카드 번호를 집어넣을 때 느꼈던 약간의 불안감, 주소를 어떻게 써야 하나 잠시 고민했던 순간(주소는 한국에서 알아볼 수 있게만 ‘콩글리쉬’로 쓰면 되는 것이었는데)은 ‘넷맹’이 처음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에 불과했다. 어떨 때는 CD가 세관에 잡혀서 목동에 있는 국제 우체국까지 가서 관세(세율: 20%) 다 내고 투덜거리며 찾아오기도 했고, 어떨 때는 CD가 중간에 증발하는 바람에 두 달이나 기다려서 ‘사고’가 났다는 메일을 뮤직불바에 보내야 하기도 했다(물론 뮤직불바에서는 정말로 감동적이게도 꼬박꼬박 새로 보내주었다. 후에 우편 분류하는 공익 근무 요원이 우편물을 중간에 슬쩍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남들보다 몇 배 분노하기도 했다).

나중에 인터넷 CD 주문 베테랑에게 ‘세관에 걸리지 않으려면 석장 이상 주문하지 말 것’, ‘세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싶으면 돈을 더 내더라도 아예 DHL로 주문하여 해결할 것’ 등등 이런 짜증을 속편하게 해결하는 ‘요령’을 익히기도 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CD의 껍질을 살그머니 벗기고, CD 케이스를 열어 스티커(미국의 CD에는 대개 개봉하지 못하도록 스티커를 붙여놓는다)가 상처나지 않도록 뗀 다음 CD 케이스 뒷면에 붙이고, 새로 나온 공산품 냄새가 나는 CD를 플레이어에 건 다음, 음악을 들으며 소책자를 펼쳐볼 때의 ‘즐거움’은 그 동안 겪어야 했던 조바심과 바꿀 만한 것이었다. 뮤직불바의 마크가 찍힌 예쁜 소포 박스는 CD를 넣고 다니기 딱 좋았다.

어쨌거나 가장 최근에 왕창 주문했던 CD가 힙합 CD였기 때문에, 요즘에 날아드는 뉴스레터는 힙합계 소식, 새로 나온 힙합 음반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힙합 버전’이다.

아마존은 CD 샵보다는 ‘추억’이 덜 얽혀있는 곳이다. 아마존은 미국에 유학가 있는 한 선배가 이 곳을 통해서 책을 선물로 보내주었을 때 처음 접하게 되었다. 미국 책은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싼데다가 CD에 비해 우송료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꼬옥 필요한데 구할 수 없는 책은 과감하게 아마존을 통해 구입했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애용하는 ‘불법 복사’와 비교하면 3~4배의 부담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이랑 함께 구입하여 ‘불법 복사’한 후 부담을 서로 나눠가지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사실 한국의 ‘제본’ 기술을 거치고 나면 재생용지로 만든 페이퍼백 원본보다 종이질도 더 좋고 때로는 더 이쁜 복사본이 나온다. 한국은 ‘벤야민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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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는 힙합, 테크노와 관련된 음악 정보가 정기적으로 날아온다. 역시 내가 몇 달 전에 여기에서 힙합과 테크노에 관한 책을 몇 권(CD 몇장이 아니라)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컴퓨터에는 CD 나우와 마찬가지로 내 신상에 대한 기본 정보와 함께 ‘이 고객은 최근에 힙합과 테크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머, 오싹해질 정도로 기분 나쁜 면도 없지는 않다. 물론 고객 관리는 컴퓨터를 이루어지겠지만, CD 나우 직원이 내게 메일을 보내면서 “얘, 이상한 이름 가진 애 힙합 정키인가 봐. 이렇게 이상한 나라에서두 이런 음악 듣나 보지. 골때린다”하면서 낄낄거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현대의 음반소매는 소비자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다룸과 동시에 집중화된 소매 관리를 통해 개인 소비자를 철저하게 정밀 검사하고 서베이하고 조절한다”는 대중음악 연구자 키쓰 니거스(Keith Negus)는 말이 문득 떠올라서였나보다. 하지만 ‘대충대충’하는 한국의 관행에 질린 나로서는 기왕 하려면 이렇게 ‘철저히’ 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일단’ CD나우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지금까지 주절거린 글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얘기 안하고 넘어간 게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뮤직불바를 이용했다고 해놓고선 뉴스레터는 CD 나우에서 받는다고 했고, 아마존은 인터넷 책방이라고 해놓고선 음악 관련 뉴스레터를 받는다고 했다. 왜냐면, 그동안 그 쪽 인터넷 CD 샵 동네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뮤직불바를 운영하던 회사 N2K와 CD 나우가 올해 초에 통합했다. 이름은 좀더 기억하기 좋은 CD 나우가 되었고 물론 고객 관리도 통합되었다. 따라서 뮤직불바의 고객이었던 나는 자동적으로 CD 나우의 고객 관리 시스템에 따라 ‘관리’되게 된 것이다.

CD 나우와 N2K는 최대의 인터넷 CD 샵 자리를 다투며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였다. 작년 요맘 때 기준으로 두 회사는 각각 57만 명, 52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고, 작년 3/4분기에 각각 1100만 달러, 1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전체 온라인 음악 시장의 45%를 차지했다. 그런데 바로 작년 요맘 때부터 두 회사의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첫째, 인터넷 CD 샵 사업에 경쟁이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경쟁 상대는 “인터넷 상거래의 마이크로소프트”라고 불리는 아마존뿐만 아니라 기존의 다국적 음반 회사들이다. 1년전의 수치로 3백만 명의 고객을 확보한 아마존은 작년부터 CD 샵 사업을 시작하여 이미 매출이 CD 나우에 근접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따라서 아마존에서 CD 한 장 구입해본 적이 없지만 책은 구입했던 내가 고객 명단에 올라있는 건 당연하다). 기존 메이저 중에서 대표적으로는, 타임 워너의 뮤직 클럽인 컬럼비아 하우스(Columbia House)에서 인터넷 CD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인터넷 상거래가 장미빛 미래만은 아니며, 가장 불확실하고 가장 경쟁적인 시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둘째, 보다 큰 문제는 인터넷 상거래 자체, 그리고 CD라는 음악 포맷 자체의 운명과 관련된다.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효율성의 과실은 주로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으며(온갖 할인 행사로 득을 보는건 (미국의) 소비자다), 극심한 경쟁에서 마진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단 하나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따라서 뮤직불바나 CD 나우는 엄청난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아마존 또한 현재 적자 상태지만 투자 여력은 훨씬 많다). 또한 MP3와 같이 디지틀 배급이라는 대안이 자꾸 제시되는 상황에서 CD 판매에만 주력해야 할지는 ‘대책 회의’에 상정할 만한 안건일 것이다.

먼 나라들 얘기야 그렇다치고, ‘인터넷 광란’이 몰아치고 있는 한국에서는 인터넷 음반 장사가 잘되고 있는지 아직 어떤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외국 음악 팬이라서 한국 CD 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려오지만, 몇 군데 들러본 CD 샵들이 다 그저 그랬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밥 굶어가면서 모은 돈으로 시간을 쪼개서 직접 음반 가게에 들러 살까 말까 들었다 놨다 만지작거리다가 선택한 CD가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네티즌 음악 팬이여, 당신이 들르는 인터넷 CD 샵은 정말로 그 즐거움을 포기하기에 충분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가? 19990915 | 이정엽 evol21@wep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