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별 관심없던 엠피삼(MP3)이라는 신종 레코드 포맷과의 ‘전쟁’을 치른 기분은 한마디로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다. 병신같은 이야기지만 테크놀로지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도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러다보니 ‘디지틀 테크놀로지가 음악 생산과 소비에 미치는 문화적 영향’ 어쩌구 하는 먹물 튀는 글 같은 거 쓸 생각은 사방 오천만미터 밖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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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ell CD-R 74min. 650 MB’라는 이름을 가진 공산품이 태평양을 건너 조선반도까지 날라오면서 시작된 나의 ‘투쟁’을 자세히 말하면 모든 사람이 비웃을 것 같으므로 현명한 나는 이를 지혜롭게 비켜가고자 한다. 아돌프 선상님이 쓰신 저작의 제목과 똑같은 책을 써도 한권은 나올 듯하다. 간단히 말해서 용산과 여의도와 신림동의 컴퓨터 가게를 여덟 번쯤 왔다갔다하면서 ‘하드웨어’를 구비하고, 통신과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를 구하는 과정은 나같은 미친 놈 아니면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절정은 바이러스가 먹어서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면서 집과 신림 9동을 오가며 하드를 교체할 무렵의 패닉 증세였다. 아이큐 좋은 사람은 이런 류의 변고가 발발치 않고 보다 수월하게 했을 지도 모르지만, 시행착오의 대장인 본인같은 사람으로서는 무리였다(사족이지만 번번이 당하면서도 되풀이하는 실수는, 컴퓨터나 오디오 등 전자제품을 ‘무언가 바꾸는 일’은 최소한 반나절 어떨 때는 하루 몽창 깨먹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작할 때는 ‘한두시간 내에 끝내고 다른 일 해야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의 특수한 정신상태인지 보편적인 것인지 의구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이번 주 월요일 이후로 ‘오디오로 개조된 컴퓨터’ 혹은 ‘컴퓨터 인티그레이티드 라디오(거꾸론가. 암튼 별 말이 아니라 100곡 쯤 로드하고 셔플로 돌리면 집에 갈 때까지 충분히 듣는다는 야그다)를 갖추게 되었고, 오늘 아침 또 하나의 전쟁을 통해 이콸라이저(모님의 발음이다)도 작동하게 되었다.

이제부턴 행복의 순간이어야 한다. 실제로 조금은 행복하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아니 엠피삼의 인더스트리얼라이프싸이클이 다할 때까지) 엠피삼을 구워야 한다는 생각이 업습하면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더 큰 짜증은 컴퓨터 관련된 작업 중 내가 무언가를 마스터하면 재빨리 새로운 게 나와서 나의 작업 숙련도를 ‘deskilling’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근 어떤 뻥쟁이 성향의 인간이 ‘곧 엠피훠가 나올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30분 동안 공포감에 가까운 심리상태에 젖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엠피삼이 씨디가 비싸서 음악 못듣는 개털들을 위한 해방의 도구라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무엇보다도 빵빵한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돈 깨나 꼰아박아야 한다. 게다가 엠피삼을 제대로 즐기려면 볼륨을 엔간히 크게 틀어놓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같이 대단히 좁은 국토와 넓은 산지와 개떼같이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이건 차라리 ‘혜택’에 가깝다. 이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개털이 아니라 범털에 가깝다. 대부분의 음악돌이나 음악순이들이 그러기는 힘들다. 실제로 엠피삼 씨디를 하나 구워준다 내가 제안했을 때 그럴 환경이나 능력을 모두 갖춘 이들은 의외로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태평양 너머나 거기서 대서양까지 넘어 있는 나라에서는 ‘동네 도서관(생각해 보니 라이브러리는 꼭 ‘도서’관은 아니다)’에서 씨디를 대출받아 이자도 없이 장바구니 같은 곳에 담아온다고 하지만 이곳 사우스 코리아에서는 그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내가 뜻있는 인사들을 모아 그런 거 만드는 게 빠를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말 하면 ‘이제 곧 휴대용 엠피삼 플레이어가 개발될 거야’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그것도 또 돈이다.

결국 나의 결론은 엠피삼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도 따져보면 컴퓨터 관련 하드웨어 장사꾼의 농간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RIAA를 비롯한 음악산업측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는 있어도 음악산업이 복합 미디어 기업의 안락한 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런저런 규제장치를 마련하여 딴지거는데 매일매일 좋은 머리를 굴려대면 하루에 한시간도 이런 생각 안하는 소비자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듯하다. 통신상에서 네티즌 어쩌구 하는 인간들이 ‘말도 안되는 횡포’ 어쩌구 해봐야 때는 늦으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농간이 꼭 의도적인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 하면서 나우누리 PDS에 들어가 국산가요 엠피삼을 다운 받으려고 하는데 해초리가 만들었다는 파일은 옘병 다운받는데 1시간 20분 걸린다고 한다. 옆에 있는 피씨방 가서 다운받을까 싶은데 외장 하드도 집드라이브가 없으면 그것도 꽝 아닌가. 19990701 | 신현준 homey@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