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은 팝의 고향이다. 이 난데없는 언명은 널리 알려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보스턴은 미국 인디 팝의 고향이다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왠지 애초의 간결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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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할때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애청하고 있는 두 명의 보스턴 출신 싱어 송라이터들이다. 하나는 이미 [웨이브]를 통해 최근 앨범이 소개된 바 있는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의 스테핀 메릿(Stephin Merritt)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에이미 맨이다. 탐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매그놀리아]가 한국에서도 이미 개봉되었는지 모르겠다. 평소 영화 일반에 그닥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 영화 찾아 볼 생각을 아직도 안하고 있다. 사운드트랙은 씨디에 구멍이 뚫어져라 듣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영화주제가 부문에 나란히 지명됨으로써 — 물론 둘 다 수상은 하지 못했다 — 그 위력을 과시한 “Save Me”를 비롯하여, 매그놀리아 사운드트랙은 총 13곡중 맨의 노래가 9곡을 차지하고 있다. 이쯤되면 거의 준 솔로 앨범에 다름아니다. 데뷔작 [Boogie Nights]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한몸에 얻은 바 있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은 이 영화에서 맨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영화 [졸업 The Graduate]에서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악에 비유하고 있다.

¤½°

에이미 맨은 누구인가?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뮤지션의 바이오그래피를 웹에서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검색 엔진을 뒤지기조차 귀찮은 분들이라면 이 글 말미에 붙어있는 에이미 맨의 공식 홈페이지 링크로 찾아가면 그녀의 인생역정을 들춰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서 알 만한 명성높은 음악학교를 다니다가 70년대말 펑크에 미쳐 학교를 때려치우고 뺀드를 시작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펑크의 충격이 빠져나가고 소위 포스트-펑크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녀는 같이 학교를 집어치운 동료들과 틸 튜즈데이(‘Til Tuesday)라는 뉴웨이브 밴드를 결성하여 때마침 등장한 MTV를 통해 록앤롤 역사의 길다란 원 히트 원더 대열에 합류한다. 좀 풀리는 듯하던 운세는 후속작의 연이은 상업적 실패와 밴드의 해산으로 귀결되고, 이후 시작한 솔로 경력은 음반사 매니지먼트와의 길고 피곤한 갈등과 분규로 점철되어 있다.

[매그놀리아] 이전에 나온 두 장의 앨범은 소위 창작권을 둘러싼 음반사 측과의 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곧바로 맨을 평론가들의 뮤지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음반사의 무관심과 홍보부족은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애초에 봉쇄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맨의 음악이 그토록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를 가진 3~5분짜리 팝송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사들은 계속해서 라디오 방송에 적합하도록 고쳐라라고 요구했다는 거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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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정식으로 찍혀나온 그녀의 세번째 솔로 앨범 [Bachelor No. 2 – Superego]는 실상 몇년 전에 이미 제작이 끝난 것이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그녀의 마지막 레이블이었던 인터스코프(Interscope)가 발매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가 결국 맨 자신이 앨범을 사들임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매그놀리아] 사운드트랙의 홍보 효과가 아니었다면, 이 앨범은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순회공연장 구내의 테이블 위에 쌓여 있다가 그녀를 충실하게 따르는 소수 팬들의 손에나 쥐어졌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무명 뮤지션들의 훌륭한 음악이 그런 식으로 귀짧은 음반사 인력들에 의해 사보타지되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맨의 매력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여성 팝 스타일에 아우라(aura)를 불어넣는 능력에 있다. 그걸 뭐라고 딱히 집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리즈 페어(Liz Phair)처럼 뭔가 괴벽스러운(eccentric) 느낌을 풍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셰릴 크로우(Sheryl Crow)처럼 그저 생각없이 듣고 즐길만한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움과 깊이 면에서 캐런 카펜터(Karen Carpenter)를 닮아가고, 어둡고 우울한 도시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Save me”의 뮤직 비디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아카데미 시상식같은 번지르르한 광대놀음에서도 건질 만한 순간이 있는 법, 이번에는 에이미 맨이 그 십여 초를 채워 주었다. 비록 상이야 구린내나는 (영어식 표현으로는 cheesy한) 필 콜린즈의 타잔송에게 돌아갔지만, 누가 신경이나 쓰랴. 20000413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관련 사이트
에이미 맨 공식 홈페이지
http://aimeemann.com/

Aimee Mann in print
http://www.mindspring.com/~saun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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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nitely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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