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별의 주'(the lone star state)라 불리는 텍사스 주의 대도시 댈러스 출신인 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미식축구 팀 카우보이스의 열렬한 팬이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자기네 밴드 연보에다 카우보이스가 수퍼보울 우승한 사실들을 꼭꼭 강조해서 적어놓고 있는 걸 보면. 기대를 벗어나지 않게도 이들이 하는 음악은 통칭 컨트리-웨스턴, 그중에서도 텍사스 트왱(twang)이다. 트왱, 거 참 웃기게 들리는 영어 단어다. 실은 의성어로, 미국의 전통 악기 밴조(banjo)를 고속으로 뜯어댈 때 나는 소리를 묘사한 것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이전에 귀기울여 들어본 적 없었어도 쉽게 무슨 음악인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라고?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기억나지 않아도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 왔노라’라는 포스터의 미국 ‘민요’ 번안 가사 한 구절은 쉽게 떠올리는 나의 식민화된 무의식에 비추어 짐작한 것이니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시라.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다. 하여간에, 이 친구들의 현대판 트왱은 4분의 2박자 빠른 컨트리 리듬에다 거부하기 힘든 훅으로 가득찬 소위 ‘파워 팝’ 멜로디를 얹음으로써 텍사스의 얼터너티브 컨트리(alternative country) 씬에 새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인디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메이저 데뷔 앨범 [Too Far To Care]가 밴드의 이름과 일치하게도 97년에 나왔다. 사실 밴드명은 자니 캐쉬(Johnny Cash)가 불러 유명해진 전통 민요 “The Wreck Of The Old ’97″의 기차 이름에서 따온 거지만. 나는 이들을 그해 마지막으로 열린 롤라팔루자의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잠시 조우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앨범 제목마따나 ‘신경쓰기엔 너무 멀리’있었고 곧 잊어버렸다. 그런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은 아직 이들에겐 멀리 있었다. 하지만 얘네들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끈질긴 것이어서, 그해 말 그 춥고 지겨웠던 매디슨의 겨울 나는 이들을 학교 학생회관 주말 무료 공연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때 나는 컨트리를 재발견했다 — 물론 전적으로 팝 멜로디의 지배적인 영향 아래서 말이다. 그 후 나는 2년을 기다렸다. 97년이 이미 재작년도가 되었으니 ‘Old 97’이란 밴드 이름이 그런 의미에서 뜻도 통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만큼 더 성숙한 사운드에 대한 기대도 그렇게 부질없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올 봄에 나온 이들의 메이저 2집 [Fight Songs]는 트왱의 흔적을 많이 씻어내버린 — 즉 얼터너티브 컨트리 씬으로부터 상업적 팝의 세계로 탈출하려는 노력이 강하게 엿보이는 것이었다. 실망했느냐고? 솔직히 약간 그렇다. 밴조와 2/4 박자 리듬이 씻겨나가면 이들은 다른 수많은 멜로딕 팝 밴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이 앨범으로 [빌리지 보이스 Village Voice]나 [CMJ] 등에서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었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상업적 성공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케이블 및 공중파 방송을 타고 전국적으로 홍보도 되었고. 컨트리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라면 2집부터 들어보기를 권한다. 두번째 트랙 “Lonely Holiday”나 싱글 커트된 “Murder (Or A Heart Attack)”은 각각 다운/업비트의 Old 97’s 스타일 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컨트리의 신명이 넘실거렸던 97년의 앨범으로 향한다. CMJ의 평론가가 표현했듯, ‘발라드에 가까운 곡조차도 업템포’이고, 다른 곡들은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속도’로 귓전을 때리는 트왱이다. 한마디로, 컨트리도 다른 감성을 얹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음악이 된다. 19990815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관련 사이트 Old 97’s 홈페이지 www.old97s.com CNN 기사 Village Voice 리뷰 Hit by a train –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5585/old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