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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 록’을 소재로 한 토드 헤인스 감독의 영화 [벨벳 골드마인]은 데이빗 보위의 곡으로부터 제목을 빌려 왔다. 그런데 수상하다. 이 곡은 사운드트랙에 등장하지 않는다. 풍문에 의하면 데이빗 보위가 이 곡은 물론 어떤 음악도 사용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대단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처럼 영화 스크린과 사운드트랙 앨범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게 된다. 무심코 사운드트랙을 봤더니 ‘To Be Played At Maximum Volume’이라는 권고문이 적혀 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지기 스타더스트…] CD를 들어보았더니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첫 번째 ‘물증’이다. 하지만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음반이 이것들밖에 없는 건 아니기에 일단 접어둔다.

그 다음부터는 심증의 연속이다. 영화를 보자. 브라이언 슬레이드와 그의 분신 맥스웰 데몬은 각각 데이빗 보위 및 지기 스타더스트와 정확히 대응하는 것 같다. ‘슬레이드’라는 이름이 귀에 익어서 오래 전 구입했던 [Glam Rock 1]라는 비디오와 [Glam Mania]라는 CD를 집어본다. “Mama Weer All Crazee Now”라는 곡을 연주한 슬레이드는 글램 록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싸구려’ (혹은 ‘골빈’) 에 속했다. 브라이언은? 이 이름은 글램 록 계열에서 가장 예술지향적이고 자의식 강했던 록시 뮤직(Roxy Music)의 두 지주였던 페리(Ferry)와 이노(Eno)를 모두 떠올리게 한다. 록시 뮤직은 브라이언 페리는 영화 속에서 잭 페리로 등장하고, 브라이언 이노는 사운드트랙의 서두를 장식한다. 그렇다면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거대한 모순체다. 하나 더. 커트 와일드로 등장하는 인물은 영락없는 이기 팝(Iggy Pop)의 분신이다.

사운드트랙을 훑어보면 심증이 더욱 굳어질 뿐이다. 첫째,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다름 아닌 브라이언 이노다(혹시나 하품 나오는 앰비언트 음악을 예상했다간 낭패보기 쉽다). 영화를 위해 결성된 두 개의 수퍼 프로젝트인 비너스 인 퍼스(Venus In The Furs)와 커트 와일드 앤 더 래츠(Kurt Wylde & The Ratts)에는 록시 뮤직과 (이기 팝의 밴드였던) 스투지스(Stooges)의 전(前) 멤버가 각각 한 명씩 배치되어 있다. 다른 트랙들에서 신진 밴드들이 연주하는 몇몇 곡들은 마치 데이빗 보위의 ‘모창’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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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리가 맞을까?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토록 집요한 것일까? 영화로 돌아가 보자. 아무리 그렇게 보려고 하지 않아도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암살 조작극 장면보다는 주인공이 슬레이드와 와일드의 조인트 공연 장면을 TV로 보면서 처절하게 자위를 하는 장면, 그리고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1980년대에도 토미 스톤이라는 또하나의 팝 스타로 변신한 사실을 간파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장본인의 모든 행동이 단지 가식적인 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아연해한다. 토드 헤인스는 데이빗 보위가 1980년대에 발표한 작품들(아마도 [Let’s Dance]같은 ‘포스트 디스코 댄스 음악’)이 악몽같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사는 끝났고, 진실이 밝혀질 결정적 물증만 남았다.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개인의 경험으로 전유해 버리는 예술가의 권력 남용 아닐까. 이때 갑자기 정반대의 생각이 뒤통수를 친다. 혹시 영화의 내러티브마저도 감독이 가공으로 지어낸 것 아닐까. 나아가 보위와 ‘미리 짜고’ “벨벳 골드마인”을 수록 하지 않은 것 아닐까. 그게 더 이야기거리를 풍성하게 하니까. 3류 추리 영화의 플롯같은가. 그렇다고 스트레이트한 섹슈얼리티로 정착된 사람이 ‘퀴어’한 섹슈얼리티의 복잡미묘한 세계를 심층수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버겁다.

글램 록은 표면에 드러난 것이 전부이고, 스타일이 실체이고, 이미지가 진실이라고 말했던가.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죽음마저도 그의 음악만큼이나 연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는 팝 스타덤과 싸우는 아이러닉한 방식(이른바 ‘캠프’)의 극한이다.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표상한 글램 록의 ‘매스 미디어 버전’에서 이를 넘어서는 목표는 없다. 글램 록의 ‘언더그라운드 버전’인 펑크도 넓게 본다면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뒤에 남긴 것은 아이러니와의 싸움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영화 속에는 없다. 영화를 잊으려고 할 즈음 생각이 비약한다. 요즘 한국에서 ‘쿨’한 이들은 아이러니를 즐길 뿐 싸우지 않고, ‘핫’한 인물들은 아이러니를 박살내버릴 기세라는 잡생각. 갑자기 무력감이 엄습한다. 19990915 | 신현준 homey@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