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대중음악이 어디로 갈까에 관한 열쇠는 테크노가 쥐고 있다. 테크노가 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록처럼 대중적 지지를 광범위하게 획득하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음악 생산의 메카니즘이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미 테크노가 대세를 장악한지가 오래되었다. 나 자신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한지가 벌써 삼 년쯤이 흘렀고 국내 테크노 뮤지션들이 진지하게 자기 음악을 추구한 건 그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의 테크노 음악은 국제적 트렌드를 따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한 건, 요즘의 테크노라는 것 자체가 트렌드를 따라가는 방식에서 일탈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트렌드라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몇 가지 욕망이 징후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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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노래하는 테크노들이 선보이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테크노의 골수 추종자라면 노래의 멜로디가 선율적으로 들어간 테크노를 진정한 테크노라 생각하지 않기가 십상일 테다. 노래가 있긴 있어왔다. 그렇지만 사람 목소리의 노래가 다른 소리들보다 상위의 지위를 차지하기보다는 다른 소리 속에 똑같이 샘플링된 한 종류의 ‘음색’으로 취급받는 것이 기존 테크노의 정통적인 수법이었다. 또, 트립합 분야에서는 노래가 아주 빠져본 적이 별로 없었다. 디제이 크러쉬(DJ Krush)나 디제이 섀도우(DJ Shadow) 류의 디제잉/샘플링 인스트루멘틀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트립합은 테크노적이기도 하지만 힙합적이기도 한 혼성 장르니까 성격이 좀 다르다.

테크노의 요즘 경향을 잘 들여다보면 — 그러니까 일반적인 경향을 말하는 거다 — 그 안에 노래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예가 바로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새 앨범이다. 그들은 과감하게 노래를 앞으로 끌어내는 복고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여러 생각들이 존재하겠지만 나로서는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뭐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이라면 기본적이랄 수 있는 거 아닌가. 노래하는 테크노라. 괜찮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 노래와 완전히 똑같은 것도 아니다. 음악적으로 눈에 띄는 차이는, 우선 코드 전개 부분이다. 노래라는 게 코드의 전개에 따라 올라서고 내려서고 하는 경우가 보통일텐데, 노래하는 테크노는 전개 방식이 그와 좀 다르다. 코드의 전개가 거의 일정하거나 아니면 하나의 코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노래가 그 반복적인 코드 전개 위에 쌓이는 멜로디를 위주로 돌아가니까 약간 동양의 단선율적인 창가 비슷한 느낌이 난다.

그게 두번째의 일탈적 트랜드다. 단선율. 세계의 음악이 점차 단선율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마 김지하가 율려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통할지 모른다. 다성화음의 풍부함이 주는 입체감이 위압적인 반면 하나의 코드 위에서 흐르는 단선율은 단조롭긴 하지만 깊다. 그건 꼭 비비 꼰 실타래 같아서 안으로 안으로 계속 말리거나 아니면 바깥 어딘가를 향해 계속 풀린다. 그래서 놀라운 집중력을 불러일으킨다. 분명히 그 안에 새로운 음악의 열쇠가 있다. 로칼리티(locality, 지역성), 제네럴리티(generality, 일반성)를 따지는 게 생산적인만큼 그런 음악적 열쇠를 똑바로 쥐고 제대로 문을 여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19991208 | 성기완 creole@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