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있겠지만 1996년을 한국의 인디 ‘원년’으로 잡는다면, ‘어언’ 4년이 지난 셈이다.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요약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특별히 잘 된 건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망한 것도 아닌’ 상태다. “크라잉 너트와 델리 스파이스는 주류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라는 말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인디 씬의 성과’로 내세우지 못할 법도 없다. ‘록 페스티벌’이 있으면 주류의 ‘로커’들과 더불어 인디 밴드들 몇몇은 ‘끼워주는’ 관행도 확립되었다. 그렇지만 어두운 면이 더 강하게 들어온다. 사실 인디 음악의 ‘총판’을 자처한 레이블 인디(indie)가 사라진 것인지 생존한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이 현재의 모호함을 말해준다. 1997년 한해 동안 십여종의 인디 음반을 발매했던 ‘레이블 인디’ 의 활동은 현재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레이블은 남아 있지만 제작 활동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현재 레이블 인디의 상황이다(이 기회에 불만 하나. ‘왜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사용해서 사람을 이리 헷갈리게 하는가’). 라이브 클럽들이 몇 개 사라지고 남아있는 클럽들도 여전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라이브 클럽 합법화’를 위해 모아졌던 힘들도 이제는 분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디 씬을 소개했던 종이잡지인 [SUB]도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았다. 인디 음악 씬을 무슨 ‘독립 운동’처럼 가열차게 전개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비즈니스’에 전념하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이라는 거미줄 속으로 들어가서. [weiv]처럼 거미줄에 걸려 파닥파닥거리는 파리같은 곳도 있고, ‘잘 나가는’ 곳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정작 ‘음악’은 어디 갔는가? 그사이 많은 밴드들이 해체되었거나 아니면 실질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군대, 학업, 취직 등 ‘주류 한국 사회’의 엄정한 요구들은 수줍고 내성적인 인디어(indiers)들이 대적하기에는 버거운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부업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한다’는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는 씨알이 안 먹힐 것 같다는 느낌 말이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에토스는 확립되었지만 ‘자기 힘으로 한다’는 에토스는 아직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은 밴드들도 있고, 새로운 밴드도 계속 결성되어 왔다. 2000년 여름 ‘인디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많은 ‘음반’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 드럭, 강아지, 카바레 등 기존의 인디 레이블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다른 이름의 레이블을 달고 나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주류와 협상하면서 영토 확장을 꾀하는 경우도 있고, ‘진짜 인디’의 태도를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인디를 찰나적 유행으로 본 사람이 있다면 이런 ‘조용한’ 흐름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호(2/15) [weiv]는 이번 여름 이후에 발표된 인디 음반들에 대한 리뷰 중심으로 꾸며진다. 물론 인디와 느슨하게 연관된 음반도 있고, 총괄적인 평은 다음으로 유보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 브레인, 레이니 선, 스위트 피,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의 음반은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인디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피곤한 것이지만, 적어도 ‘기존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인디 음악’은 동질적 장르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인디 씬’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일은 불필요하고 또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인디 음악은 보다 다원적일 수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다. 각개약진하는 인디 음반들에 드러난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인디 음악이면 무조건 ‘좋다’는 아집도, 인디 음악은 ‘대중성이 없다’는 편견도 모두 버리고. 20000715 | 신현준 homey@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