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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경 – Growing Up – 록레코드, 1999

 

 

“고호경이 누군데?”라고 물으면 “영화 [조용한 가족]에서 막내딸 미나로 출연한 여자애”라는 답이 가장 빠를 듯하다. 영화를 안 봤다면 모 회사의 CF에 나온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음반은 ‘연기자의 외도’라는 핀잔을 ‘각오’해야 하는 처지다. 음반의 주인공인 고호경이 ‘노래 부르는’ 일 외에 특별히 한 일도 없다. 그 점만 보면 얼굴 반반한 가수(들)에게 노래를 시키고 나머지는 제작자의 수완에 의존하는 ‘보통의’ 가요 음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작곡과 프로듀서를 맡은 인물들이 모던 록 그룹 아일랜드의 관련자들이라는 정보도 음반 어딘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음반은 ‘인기 탤런트가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부랴부랴 발표한 졸속 음반’은 아니다. ‘성의’와 ‘함량’을 의심할 필요 없이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또한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고호경의 ‘노래’이기 때문에 일단 선입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가 노래하는 스타일은 가슴 속에 웅어리진 감정을 있는대로 쏟아부으면서 ‘열창’하는 주류 여가수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곡조 위에 감정을 담는 것이 아니라 ‘예쁜 소리’를 내는데 승부를 거는 최근의 소녀 가수들과도 다르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량이 풍부하거나 음역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그 감정은 한마디로 ‘설렘’이다. 그 점에서 앨범에서 가장 수작은 첫 트랙 “Growing Up”이다. 목소리의 톤은 들떠 있고, 멜로디의 상하 굴곡도 심하다. 악곡 형식이 저음으로 시작하여 클라이맥스에서 끝장내는 식도 아니라서 어떤 떨림이 전해져 온다. 설레임은 불안한 감정이다. 16분 음표에 한 음절을 담아 빠른 속도로 노래부르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안정함은 세련되고 상큼한 편곡에 의해 감싸여진다. 1마디 길이의 리프(riff)가 곡을 이끌어 나가고, 세 개의 기본 코드만으로 진행하는 점도 안정감을 더한다. 가사를 들어보니 졸업과 입학 시즌에 맞춰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각설하고 이런 느낌은 “약속”, “배신”, “Tell Me” 등의 ‘모던 록'(사족: 한국에서 모던 록은 ‘특정 곡의 음악 스타일’로 소통된다. 난 아님) 넘버들에서도 재현된다. 히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한 발라드곡 “처음이었어요”나 댄스곡 “정신차려”가 그저 진부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설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즈풍 발라드 “Power of Love”나 라틴 리듬을 도입한 “난 달라” 등은 충분히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중반부까지 풋풋하게 표현되던 감정은 후반부에 가면 졈점 ‘사랑으로 상처받은 성숙한 여자의 애원’이라는 전통적 감정으로 회귀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면 노래의 대부분의 주제가 사랑, 그것도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었다는 점이 새삼 상기된다. 앞의 평을 뒤바꿔야 될까. 하지만 거꾸로 보면 많은 곡들이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값싼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 되니까 변덕부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 우리 주위에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앨범이 몇 장이나 된다고…

사족: 고호경의 ‘모델’은 페이 웡(王菲)’일 듯하다. 그건 참 멋진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19990815 | 신현준 homey@orgio.net

[weiv plus] 이정엽: “두 번째 앨범에서는 스스로의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6/10

수록곡 (* = 추천곡)
1. Growing Up *
2. 처음이었어요 *
3. 정신차려
4. 약속
5. Power of Love
6. 배신
7. Tell Me
8. 난 달라
9. 혹시
10. 처음이었어요(M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