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의 노을 – vol.0.5 Spring – 카바레, 1999 (일반적, 혹 상식적 선상에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다. 음악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조건(연주 혹은 노래 등 실현하는 행위와 동시에 수용하는 행위)을 충족해야 이루어졌지만, 거기 들이는 정성만큼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가질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지속적인 존재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카타르시스의 짜릿함은 영원을 보장하는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울만큼 유혹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가 돼 버렸다. 요 몇 년간 공연을 쫓아다니면서 품게 된 이런저런 생각 중 하나가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다. 음유시인을 떠올리는 밴드를 만났을 때, 그런 이들이 자신의 앨범(데모든 싱글이든)을 내놓았을 때 의문은 보다 커져간다. 왜?! 디지털 유토피아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무슨 우문이냐고? 확실히 음반은 변화된 음악 감상 방식(물론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그게 수단이니 통과의례가 되는 건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이 달라붙는데… ‘인디’라는 고매한 이름 탓이었는지, 아님 무책임한 애정 때문이었는지, 뭔가 다른 방법을 바랬지만 ‘음반’이라는 기록물이 지난 시절의 유물이 되기엔 너무 일렀나보다. 밴드의 목표는 일단 레코딩인 듯 ‘녹음 바람’이 거세다. 자신을 잃어가면서, 즐거움을 빼앗기면서까지 ‘음반’에 매달린다. 슬프게도 ‘상처뿐인 영광’이 대부분이다. 우문을 품은 이유는 여기서 온 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이 조금 보이는 거 같다면, 또 너무 서두른 걸까? 하지만 분명 그렇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자신들의 음악 경험을 모아 그 역량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는 인디 레이블 ‘카바레’. 나름의 전략과 독특함으로 이미 sold-out을 경험한 바 있는 그들이다. (볼빨간을 기억하시나요^^) 은희의 노을(eunheesnoul)- 이들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르겠다(지금은 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공연에 임하고 있음). 미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이 밴드의 사운드가 어쿠스틱한 카바레와 어울릴까. 아닌게 아니라 처음 플레이어에 걸었을 땐 낯선 질감이 당혹케 한다. 하지만 단단한 팀웍과 손때 묻은 장비를 통해 걸러진 사운드는 카바레 특유의 담백함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어설픈 모방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팀(밴드와 레이블 모두 포함해서)이 있다는 건 무지하게 고무적인 일 아닌가. ‘vol. 0.5’라는 타이틀에서 보이는 조심스러움은 소심함이라기보다는 치밀함이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치밀함은 ‘왜?’라는 우문에 멋진 현답이 되어줄 듯한 행복한 예감이 든다. 19990815 | 이영우 camille@nownuri.net [weiv plus] 김민규: “동화의 세계에 사는 소년들의 “노을” 팝” 6/10 수록곡 (* = 추천곡) 1. 걸프렌드 * 2. 캠퍼스러브송 3. 요구르트아줌마 4. 은희송 * 5. 실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