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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 인디 파워 1999 – 록레코드, 1999

 

 

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 씬에 대한 관심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지만, 대개 호기심 반 의심 반, 가십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물론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 인디 씬의 좌표는 어느 정도 지정되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인디 씬은 어딘가 (한 귀퉁이일 때도 있는) 공간을 점유할 정도의 위치에 서 있다(바로 그 정도뿐이긴 하지만). 연달아 쏟아지고 있는 인디 싱글 및 앨범이 서울 시내 대형 음반 매장 한 자리에 전시된 풍경은 이제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인디 파워 1999]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기획물임에 틀림없다. 록 레코드사라는 메이저급 음반사가 (웬일인지) 발매한 이 음반은 1970~90년대 가요들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 곡들로 채워져 있다.

리메이크는 아무래도 위험 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곡을 선택한 뮤지션의 스타일이 녹아들면서, 기존의 곡에 대한 재해석 및 재창조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재창조된 그 작품이 원곡의 느낌이 전혀 살아있지 않을 때에도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리메이크는 원곡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교 대상인 원곡과 멀거나 가까운, 그 어디쯤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리메이크의 관건이다. (작년 리메이크 컴필레이션 음반 [리와인드Rewind]는 ‘산울림에서 들국화까지’ 한국 록의 계보 세우기 작업이라는 대의의 일환이었다. 물론 이런 대의를 빼면 리메이크의 신선도와 창조성은 좀 떨어졌다.)

이색적인 곡들이 먼저 들어온다. 새롭기도 하고 지나쳐 보이기도 한다. 제목만 없으면 원곡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리메이크 곡은 전혀 딴판으로 이탈하기도 한다. “아빠의 청춘”은 원 태생의 뽕짝에, 리얼쌍놈스 스타일의 하드코어가 입혀졌다. 애절하고 구슬픈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조덕배의 “꿈에”는 레이니 썬의 노래와 연주로 몽환적이고 환각적인(꿈에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사이키델릭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10대 댄스 그룹 핑클의 “루비”가 펑크로 바뀌다니… 이런 탈바꿈은 때로 아슬아슬하다. 원곡과 전혀 다른 낯선 감정은 신선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원곡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기도 하므로.

이 앨범은 많은 스타일들을 넘나든다. 트립 합 버전의 곡도 있고(“비창”), 정글/드럼앤베이스 브레이크비트도 있고(“담다디”), 경쾌함을 위해 부분적으로 레게에 기댄 곡도 있다(“마법의 성”). 장르의 변화는 정교하고 세련된 편곡 기술을 요구하는데, 이 앨범의 장르간 교배가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부분적인 스타일 차용으로만 그치지는 않았는지.

앨범을 내고, 이름도 꽤 알려지고, 경력도 오래된 밴드의 이름도 걸려 있다. 노이즈가든은 “제2의 고향”을, 언니네 이발관은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위퍼는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을 불렀다. 이 곡들은 재해석자의 스타일과 원곡의 느낌이 함께 추출된다.

낯선 밴드와 익숙한 가요가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킨 리메이크에서, 이 앨범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의혹의 갖는다. 거창한 대의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디 밴드들의 이구동성의 목소리가 실렸다는 것에만 만족할 수는 없으며, 그 이상의 ‘무언가’ 고유한 분위기와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것이었겠지만 선곡 리스트를 봐도 그저 ‘히트 가요 퍼레이드’ 같다(물론 ‘가요’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양적 팽창 단계를 넘어 질적 도약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인디 씬 내부의 혹은 외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인디 파워’의 강력함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이색 메뉴를 한가지 더 차려놓은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에만 만족할 수 있다면야 할 말 없지만. 19990915 | 최지선 fust@nownuri.net

[weiv plus] 신현준: “현대는 재활용의 시대. 분리 수거 요망”

4/10

수록곡
1. 아빠의 청춘 – 리얼 쌍놈스
2. 제2의 고향 – 노이즈가든
3. 향기로운 추억 – 위퍼
4. 왼손잡이 – 세인트 달
5. 잘못된 만남 – 피아
6. 마법의 성 – DOG
7. 어느새 – 헤디마마
8. 매일 그대와 – 언니네 이발관
9. 담다디 – 바우와우
10. 비창 – TOILET
11. 너 – 에버그린
12. 루비 – 레이지본
13. 제비꽃 – 형님들
14. 꿈에 – 레이니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