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23093110-pavePavement – Terror Twilight – Matador, 1999

 

 

 

게으르고 무성의해 보이는 보컬과 연주, 예기치 못한 곡 구성과 노이즈, 독설과 유머로 무장한 알쏭달쏭한 가사, 가끔씩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아름다운 멜로디. 페이브먼트의 5집 [Terror Twilight]에는 더 이상 이런 것이 없다. 세바도(Sebadoh)와 더불어 로파이(lo-fi)의 미학을 완성했으며, 인디 록의 최고 스타로 마타도르 레이블을 일약 인디 록의 대명사로 끌어올린 그들의 신화는 이제 정말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일 뿐일까.

물론 한 밴드를 좋았던 ‘그’ 시절에만 비추어 평가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그들 역시 나름의 방식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리고 페이브먼트의 경우, 이런 식의 경로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들의 인디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페이브먼트의 새 앨범에 대한 평이 궁금해 이곳 저곳에서 리뷰를 읽어보았지만 하나같이 호의적인 평들뿐이었다. “이제 페이브먼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오랫동안 누려왔던 ‘록 음악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자이며 독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라는 왕관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었다”라든가, “페이브먼트는 [이 앨범을 통해] 우아하고 보람있게 성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등등. 잠시 내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밴드로 봐선 최선의 선택일지 몰라도 내겐 여전히 실망스럽다. 문득 타란티노의 영화 [재키 브라운]이 떠올랐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의 조각들을 기발한 감각으로 포장해 내는 비범한 능력을 포기한 채 명예로운 작가의 이름을 얻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만 진짜 찾아나설 때는 의외로 만나기 정말 힘든 법이다.

페이브먼트는 데뷔 시절, 실로 ‘발상의 전환’이라 할 만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음악으로 연주력이나 통찰력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함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무난한 컨트리 록 풍의 곡들이 주로 들어 있다. 4박자의 미들 템포로 진행하는 [Folk jam]과 감성적인 넘버 [Major leagues] 등은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며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물론 “Platform blues”나 “The hexx”에서 보듯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의 음악을 모두 비판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식으로 페이브먼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내겐 뒷동산보다 놀이동산이 이들에게 더 어울려 보인다. 페이브먼트의 음반이 아니었다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졌을 그런 앨범. 그나마 마지막 트랙 [Carrot rope]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19991001 | 장호연 ravel52@nownuri.net

4/10

[weiv plus] 이정엽: “갑자기 부지런해진 게으름뱅이들” (6/10점)

수록곡
1. Spit On A Stranger
2. Folk Jam
3. You Are A Light
4. Cream Of Gold
5. Major Leagues
6. Platform Blues
7. Ann Don’t Cry
8. Billie
9. Speak, See, Remember
10. The Hexx
11. Carrot 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