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스 – Gigs – 폴리미디어/신나라, 1999 첫 트랙 “노올자!”는 (한국의) 국악의 5음계의 멜로디와 흑인음악의 음계와 리듬의 어울림으로 시작한다. 힙합의 스크래칭과 클래식 성악의 합창이라는 이질적 요소도 슬쩍 삽입되어 있다. ‘정신없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정제된 편곡 때문에 안정감을 잃지는 않는다. 엇박의 느낌을 잘 살린 관악기가 인상적인 “Champ”를 지나 낭만적인 무드의 세 번째 트랙 “랄라라”까지 훵키(funky)한 리듬이 지속되면서, ‘재기’와 ‘노련’이라는 상반된 느낌을 모두 준다. 이 점이 앨범의 ‘기조’다. 세 곡의 작사자는 이적, 작곡자는 정재일이다(“Champ”는 둘의 공작). 이적의 존재는 목소리와 창법을 들으면 알 수 있지만 정재일은 누군가. 베이스를 맡고 있는 그는 1982년생이란다. 한편 기타의 톤이나 연주 스타일을 들으면 한상원이라는 이름도 떠올릴 수 있다. 그렇구나. 긱스는 ‘한상원+α’와 ‘이적+β’로 상징되는 베테랑 뮤지션과 ‘무서운 젊은애들’의 결합이다. 레게풍 기타와 끈적한 멜로디가 담긴 “새벽 네시 전화벨이 울릴 때”에서 잠시 쉬더니, “돌연변이”는 직선적인 하드록 스타일인데 작곡자의 이름을 확인하니 정원영이다. 어쩐지 3번 트랙에 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맛깔스럽다 했더니… 그의 이름을 먼저 언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라도 해야 할 듯하다. 그와 더불어 건반악기를 맡은 강호정에게도. 아무튼 무드있는 작곡과 편곡으로 일가견있는 정원영으로서는 의외의 곡다. 즉흥감이 넘치는 연주와 목소리에 디스토션을 가한 여섯번째 트랙 “신천지”를 지나 “Tripping Now”에 이르면, 테크노와 퓨전 재즈와 라틴 리듬이 범벅이 된 연주곡이 중반부를 마친다. 밴드 이름이 ‘긱스’인 이유가 가장 잘 확인되는 대목이다. 후반부로 들어가서 “맞아!”에 이르면 초반의 훵키한 리듬이 재개되면서도 블루스적 ‘필’이 강한 듯 하더니, “옆집 아이”에 이르면 느린 템포의 블루스가 본격적으로 진한 느낌을 전달한다. “Red Sneakers”는 전반부의 훵키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랩이 두드러지고 악기의 솔로가 번갈아가면서 나오고, “연쇄살이고양이톰의저주”는 멤버들 사이에 딱딱 맞는 합주가 두드러진다. “만월광풍”의 작곡자는 이상민인데, 그동안 솜씨있는 드러밍을 선보인 그에 대해 이제야 언급하는 점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아가에게”는 정원영이 작곡한 ‘대곡’ 풍의 발라드로 대형공연의 대미를 장엄하게 장식할 만한 곡인데, 이것만으로는 아쉬웠던지 직선적인 록 사운드인 “날개”가 이어진 뒤에야 앨범이 모두 끝난다. 총평한다면 긱스는 마치 노장과 신진이 조화를 이룬 ‘국가대표 팀’같다. 각 방면에 일가견있는 사람들이 솜씨를 마음껏 뽐내면서 팀워크를 맞춘다는 점에서. 앨범의 각 트랙을 모두 설명한 것도 별로 처지는 곡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딱히 두드러지는 곡이 없다’는 점이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는 불운할 지도 모르겠다.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대중성은 많지 없다’는 평이면 괜찮으려나. 궁금한 점 한 가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 나가서 그 정도 사운드 낼 수 있으려나. ‘당신들 하나 때문에 복잡한 장비 쓰긴 힘들다’고 그럴 텐데. 한 가지 더. 수퍼게임보다 동네야구가 더 좋은 소수의 사람의 취향에도 안 맞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시내버스에 대문짝만하게 음반과 공연 광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9991204 | 신현준 homey@orgio.net 6/10 [weiv plus] 이정엽: “훵크/디스코를 하든, 발라드를 하든, 블루스를 하든, 퓨전 재즈를 하든 간에 꼭 모범생처럼 깔끔하게 만들어놓는다. “자유를 꿈”꾼다고 노래할 때나 “노올자”라고 외칠 때조차 ‘바른 생활’이라는 단어가 더 떠오른다. 꼭 ‘모범 답안’같은 가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4/10점) 수록곡 1. 노올자 2. Champ 3. 랄랄라 4. 새벽 네 시 전화벨 5. 돌연변이 6. 신천지 7. Tripping Now… 8. 맞아! 9. 옆집 아이 10. Red Sneakers 11. 연쇄살인고양이톰의저주 12. 만월광풍(滿月狂風) 13. 아가에게 14. 날개 관련 글 이적 [막다른 길] 리뷰 – vol.1/no.2 [199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