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e Against The Machine – The Battle Of Los Angeles – Epic/Sony, 1999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무릅쓰고 ‘용감하게’ 얘기한다면, 팝이 멜로디의 음악이라면 록은 리프(riff)의 음악이다. 모든 록 음악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떤 종류의 록 음악에서는 ‘잘 만든 리프 하나가 열 멜로디 부럽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특히 리프가 중요한 록은 하드록, 헤비 메탈, 펑크, 하드코어 같은 음악이다. 이런 음악에서는 뻥좀 보태서 선이 굵은 리프 하나면 훌륭한 곡 하나 나오기에 충분하다. 요즘에 ‘리프 록’을 가장 잘 만드는 패들이 바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같은 이른바 ‘하드코어’ 밴드들이다. RATM의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의 첫곡 “Testify”나 첫 싱글 “Guerilla Radio” 같은 곡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리프다. “Testify”는 플랜저 이펙트(잔소리, ‘이펙터’가 아니다) 소리로 들리는 기타로 시작하지만, 무게 중심은 묵직한 기타 리프에 있다. “Guerilla Radio”는 딜레이 이펙트, 와와 페달과 잭 델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선동적인 보컬/랩,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하프(하모니카)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다른 한편 이 앨범에서 리프가 가장 인상적이고 훌륭하게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다. 물론 RATM이 리프로만 승부거는 밴드는 아니다. 탐 모렐로(Tom Morello)의 기타는 리프말고도 많은 것을 뿜어낸다. 네 번째 곡 “Mic Check”은 가장 ‘힙합스러운’ 곡이다. 드럼은 심벌과 탐탐을 적절히 활용하여 힙합의 브레이크를 살렸고, 기타로 연주하는 듯한 차임 소리도 힙합의 분위기를 내준다. 탐은 간주 부분에 힙합 DJ의 스크래치를 기타로 ‘흉내’내기도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앨범 중간 이후의 곡들은 탐이 기타로 ‘장난’치는 소리말고는 별로 귀에 들어올 만한 것이 없다. 탐은 제트 엔진 소리 등 이전에 시도되었던 소리 뿐만 아니라 고음의 관악기 소리, 그르렁거리는 희한한 소리 등도 만들어낸다. 그럭저럭 재미있다. 기타로 갖가지 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의문 하나. “Born of a Broken Man”같은 곡이나 “Born As Ghosts” 같은 곡에 나오는 삑삑거리는 빈약한 사운드는 꼭 오락실에서나 듣는 전자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탐은 남들이 흉내내기 힘든 톡특한 기타 ‘묘기’를 많이 선보이기는 했지만, ‘힙합-테크노 시대의 기타가 나아갈 길이 이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금방 싫증난다. 차라리 힙합 DJ를 모셔다가 함께 음악을 만들어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은 결국 RATM의 사운드가 데뷔한 이후 발전한 것이 뭐가 있는가 하는 ‘용감한’ 의문으로 이어진다(“리프 중심의 록 음악에서 얼마나 거창한 ‘실험’을 바라는가”라고 되묻는다면 할말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ATM을 콘이나 림프 비즈킷, 키드 록(Kid Rock)과 동급으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정치학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어쨌거나 RATM은 음악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1990년대 현재, 미국에서는 극히 드문) 밴드이다. 잭 델라 로차의 가사는 집회의 선언문을 금방 바꾸어놓은 듯하고, 그의 목소리는 시위에서의 선동을 연상시킨다. “Sleep Now in the Fire”같은 곡에서는, 마치 1980년대의 U2가 “Silver and Gold”나 “Bullet the Blue Sky”의 라이브에서 그랬던 것처럼, 격한 감정을 담은 사설을 읊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Guerilla Raido”는 필라델피아의 급진적 흑인 저널리스트로서 경찰 살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무미아 아부자말(Mumia Abu-Jamal)에 관한 곡이다. 그냥 정치적인 노래를 부른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여론을 불러일으켜 그의 사형 집행을 연기시키기까지 했고(물론 RATM만의 힘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경찰에서는 스팅(Sting) 등과 함께 RATM을 가장 미워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적인 영향력이 실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RATM의 정치학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에피소드 하나. 12월 초 “Guerilla Radio”는 뉴욕의 거리 공연에서 처음으로 불려졌다. 길 한쪽을 막고 벌어진 이 공연에서, RATM의 ‘적’인 경찰이 공연을 ‘보호’하기 위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장면이 데이빗 레터맨 쇼에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이건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에 불과하다. 보다 심각한 것은 RATM의 음악을 좋아하는 미국의 (백인 교외 중산층) 10대 남자 아이들은 정작 RATM의 정치학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이에 관한 생생한 얘기는 us line에 실린 RATM의 뉴욕 공연 리뷰를 보라). 이들에게 RATM의 음악은 따분한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누구보다도 RATM 자신이 이런 딜레마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 그러나 어쩔 것인가. 지금은 1960년대가 아니고 1990년대인 것을. 19991215 | 이정엽 evol21@weppy.com 5/10 [weiv plus] 이용우: “‘여전하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릴 것인가, 빈정거림으로 들릴 것인가. 난처하다.” (6/10점) 수록곡 1. Testify 2. Guerilla Radio 3. Calm Like a Bomb 4. Mic Check 5. Sleep Now in the Fire 6. Born of a Broken Man 7. Born As Ghosts 8. Maria 9. Voice of the Voiceless 10. New Millennium Homes 11. Ashes in the Fall 12. War within a Breath 관련 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뉴욕 공연 – vol.1/no.9 [19991216] 관련 사이트 RATM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rat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