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 너트 – 서커스 매직 유랑단 – 드럭/DMR, 1999 [Our Nation 1]이라는 한국 인디 씬의 ‘사건’ 이후, “말달리자”가 방송파를 타고 인기 순위권 진입하기도 한 열혈 평크 록 밴드 크라잉 너트는 한국 인디 씬의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독집 [Crying Nut](1998) 발매 후 올해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발표했지만, 이제 나는 별로 그들의 음악이 궁금해지지 않았다. 이제 ‘이런 노래도 다 나오네’ 하는 신기함과 호기심은 거의 사라진지 오래이다. 더 이상 그들은 새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먼저 눈에 띈 것은 재킷. 촌스러움과 장난스러움이 배어나오는 그들의 음반 재킷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문득 넘겨 짚게 되었다. 이들이 희화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한 키치와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황신혜 밴드처럼…?).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라도 되듯, 앨범 제목 또한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 아닌가. 트럼펫이나, 아코디언, 피아노, 키보드 같은 건반악기(및 세션 연주)가 이 음반에 양념처럼 간간히 배어 있었고, 스카/레게, 폴카/러시아 민요 등과 펑크와의 ‘짬뽕’ 음악이 만들어졌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 대표적인 곡. 러시아 민요풍 도입부터 의도적인 듯 싸구려 냄새를 뿌리면서, 자신들을 “서커스 유랑단의 떠돌이 신사”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가사를 스카/레게에 따라 ‘뽕끼’ 섞어 부르기도 한다. 간간히 조소와 풍자의 느낌을 주는 음악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피아노 소리는 이내 마구 두들겨지는 소음으로 돌변하면서 “우리는 지금 추락하고 있다”, “다죽자”는 외침들로 뒤바뀐다. 그렇다면 “탈출기(바람의 계곡을 넘어…)”는 한스러운 민요의 희화화인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일련의 퍼포먼스와 음악과 결합한다면 그들답다고 고개를 끄덕여질 것도 같다. 하지만 보사노바 리듬 속에 이상면의 감미로운 보컬이 흘러나오는 곡(웬일로!)은 또 무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편, 그 이전에는 펑크 록커로서의 자의식, 주류 음악 산업계 및 현실 제문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직설적으로 발언했다면, 2집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한층 강화된 또다른 정서가 가로지른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외침 속에서 나오는 쓸쓸함과 비애… 이때 비탄에 젖은 목소리는 비유적인 느낌과 혼융된다. “마른 낙엽되어 쓸쓸한 바람에 먼지되어 날리네”(“탈출기”), “표정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표정… 고요하던 어제밤에 꿈을 꾸었던 낙원에서”(“S.F.”), 그리고 왜곡된 사운드가 입혀진 보컬의 나레이션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중독되어가고 있다”(“브로드웨이 AM 03:00”)고 읊조리는 것이다. 물론, “다죽자”며 “깨어나라”고 “벗어”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도, “더러운 도시 어딘가에서” “너무나도 서글픈 노래, 복장이 터지는 노래… 너무 못해서 미안할 따름”일만큼 “신기한 노래”를 “배짱이”처럼 “기분좋게 달려나가” 웃기기도 하는 크라잉 너트만의 정공법은 변치 않았다. 그들은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3류적이고 유치한 냄새가 나는 것들과 조우하면서 그 활로를 모색하는 모양이다. 장난기섞인 그 시도는 또한 무척이나 크라잉 너트답다. 그렇지만 말이다. 궁금해지는 질문을 중얼거리게 된다.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한국 ‘최초’ 인디 씬 생성의 주역이라는 칭호만으로도 그들의 의미는 아직 유효한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곡 제목처럼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앞으로 계속 내리게 할 수 있을까. 키치의 재미는 어디까지일까. 뇌까리며 다시 한번 음반을 틀어 보는데…. 19991215 | 최지선 fust@nownuri.net 5/10 [weiv plus] 이용우: “크라잉 너트, ‘넘버 3’와 만나다.” (5/10점) 수록곡 1. 서커스 매직 유랑단 2. 신기한 노래 3. 강변에 서다 4. 배짱이 5. 다죽자 6. 더러운 도시 ANYWHERE 7. 군발이 230 8. 탈출기 (바람의 계곡을 넘어…) 9. 벗어 10. 브로드웨이 AM 03:00 11. S.F (SCIENCE FICTION) 12. 빨대맨 13. 게릴라성 집중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