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a Band – The Beta Band – Astralwerks, 1999 요즘 영국에서 음악적 혁신(이든 뭐든 아무튼 새로운 경향)은 잉글랜드보다는 스코틀랜드에서 더 활발해 보인다. 이미 한국의 ‘모던 록 팬들’에게는 ‘안 좋아하면 왕따’가 될(‘좋아하면 왕따’로 벌써 바뀐 지는 아직 모르겠다) 벨 앤 세바스천(Belle And Sebastian)이나 모그와이(Mogwai)도 그곳 출신이고, 아울러 애럽 스트랩(Arab Strap), 루퍼(Looper; 벨 앤 세바스천 멤버 아무개의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 등 국내에서 열 장이나 팔릴까 말까한 음반의 주인공들이 나같은 사람의 귀에도 익으니 말이다. 개소리 집어치고 베타 밴드라는 이름의 정규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러니까 벨 앤 세바스천의 ‘로파이 포크록'(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매끌매끌해지고 있지만), 모그와이의 ‘노이지 포스트록'(물론 이제 이런 말 쓰면 촌스러워져버렸지만)같이 ‘이런 과(科)구나’라는 느낌이 탁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맥없이 흐르는 듯한 스티븐 메이슨(Stephen Mason)의 보컬을 듣고 모 인사와 동류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첫 곡 “The Beta Band Rap”의 제목을 보고 닥터 드레나 우탱 클랜을 떠올린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다. 랩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듯한 오래된 팝송이 1분 이상 나온 다음이다. 게다가 리듬은 형식상 훵키하지만 분위기는 나른해서 한여름의 뉴욕이나 LA의 거리의 분위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더니 갑자기 트위스트 춤이 나올 듯한 로큰롤이 나오는 ‘3부 구성’이다. ‘어느 장단에 맞출지’ 고심스럽다. “It’s Not Too Beautiful”은 직직직직거리는 기타 배킹으로 시작해서 범상한 ‘기타 팝'(이 말처럼 모호한 말이 있을까마는 아무튼)같더니만 중반부에는 영화 사운드트랙같은 텍스처가 만들어지고 발자국 소리 등의 효과음도 나온다. 반전을 즐기는 애들같다. 정지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Simple Boy”는 극저음의 불길한 베이스음만 툭툭 나오는 위에서 보컬이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듣는 사람의 간을 축소시키는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한다. 언젠가 한번 쎄려댈 지 모른다는 기대를 해보지만 가끔씩 징지지징하는 효과음만 나올 뿐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다. 뭔가 약물 냄새도 난다. “Broken Up Adingoong”에서는 아니 디 프랑코(Ani DiFranco)가 기타를 치고 아프리카에서 퍼커션 주자를 불러 온 듯하고, “Number 15″에는 드럼을 샘플링하여 변형한 듯한 전주에 이어 베이스 라인과 재즈풍의 피아노가 예의 그 불길함을 다시 한번 불러들이고, “Smiling”은 마치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가 리믹스한 트랙같다. 트랙의 길이가 좀 길다는 느낌이 들 즈음 나오는 “The Hard One”은 이상의 모든 음악적 요소를 다 집어넣은 10분이 넘는 대곡이다. 불길한 베이스 라인, 이상한 타악기 소리, 드문드문 분위기 몰아가는 피아노, 각종 채집된 음과 효과음, 매가리 없이 뇌까리는 보컬, 갑자기 툭 끊기는 형식 등등. 물론 ‘잘났다 솔로’는 안나온다. 솔직하 말하면 이 음반을 처음에 작게 틀어놓고는 ‘재미 더럽게 없네’하고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 느낌이 온 것은 이 트랙부터다(스테레오랩(Stereolab)의 [Transient Random-Noise Bursts With Announcements]를 별다른 감흥 없이 듣다가 “Jenny Ondioline”을 들었을 때 ‘어 장난 아니네’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난 이런 ‘유별난 순간’의 느낌을 찾아서 음악을 듣나보다). 아,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Cow’s Wrong은 나같이 히피 끌물 먹은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전원적인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고 있다. 특히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전개는 말이 필요없을 지경으로 몰아간다(근데 소가 뭐가 틀렸다는 거지?). 그런데 본인들은 ‘올해 만들어진 최악의 앨범’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얘들 매니저가 오아시스의 음반 커버 디자인을 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의외의 태도다. 하긴 ‘우리가 최고’라고 숨김없이 잘난 척 하는 전략이 약발이 다했으면 ‘우리는 꽝’이라고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밴드가 만든 음악이 한두번만 들어도 멜로디가 쏙 들어오고 그래서 그 뒤로는 음반을 잘 안 집어들게 되는 반면, 이 최악의 음반은 들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19991223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The Beta Band Rap 2. It’s Not Too Beautiful 3. Simple Boy 4. Round The Bend 5. Dance O’re The Border 6. Broken Up Adingoong 7. Number 8. Smiling 9. The Hard One 10. Cow’s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