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B – Ill Manors  | Ill Manors OST (2012)

 

래퍼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플랜 비(Plan B)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영민한 소울 앨범이었던 두 번째 앨범 [The Defamation Of Strickland Banks](2010)을 통해서였지만, 데뷔 앨범 [Who Needs Actions When You Got Words](2006)는 동시대 영국 랩의 ‘대세’였던 그라임 대신 에버래스트(Everlast)같은 어쿠스틱 사운드에 랩을 올리고 종종 소울풀한 보컬이 끼어드는 꽤 독특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성공은 보컬이 랩을 대신해 전면에 나선 [The Defamation…]에서야 비로소 찾아왔고, 래퍼로서의 플랜 비에 비해 싱어로서의 플랜 비가 거둔 성공 – 영국 내에서만 80만장!! – 이 워낙 거대했기에 ‘랩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그의 계획은 쉬이 믿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Ill Manors”는 새 앨범에 앞서 발매될 (플랜 비 자신이 감독한)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다. 몇 년 전 현대카드 광고에도 삽입되었던 독일 아티스트 페터 폭스(Peter Fox)의 “Alles Neu”(가 샘플링한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그대로 샘플링하고 드럼 앤 베이스 브레이크를 얹은 작법이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이 곡은 비트보다는 가사에 관심을 주는 것이 더 온당할 듯 싶다.

“Ill Manors”는 온 영국을 한바탕 뒤집어놓았던 2011년의 ‘폭동’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 자신이 폭동의 중심지 해크니(Hackney) 출신인 플랜 비는 발음이 같은 ‘manner’와 ‘manor’를 교묘하게 뒤섞으면서, 모든 잘못을 (영국에서는 소위 ‘차브(chav)’로 호명되는) 도시 하층계급 청년들에게 덮어씌우려는 우파 정치인과 언론에게 냉소와 위협을 날린다. 그러니까, 명백한 계급 문제에 대한 카메론 총리의 감상주의적 태도,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열악한 환경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올림픽을 대비한다며 건물을 올리는 정부, 이들에 대한 언론과  ‘부자 새끼(“little rich boy”)’들의 차별적 눈길 따위 말이다. “Ill Manors”는 스타일을 바꿈으로써 성공한 아티스트의 예상치 못한 행보인 동시에, ‘선진국’의 ‘수도 한복판’에 방치된 하층계급의 관점에서 내뱉는 변론이자 2011년 여름에 대한 사운드트랙이다. 뭐, 대략 반 년쯤 늦어지기는 했지만. | 임승균 obstackle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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