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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밴드 – 한국록 다시 부르기 – 다음/서울음반, 1999

 

 

# 뜻모를 정경, 2000년 1월

사진. 어느 밤, 어느 거리, 갈림길 한 가운데에 한 사내가 서 있는 모습이 옆 모습으로 보인다. 작달막한 키에 골판지 같은 피부를 지닌, 머리와 옆구리와 다리에 빛나는 알전구를 달고 있는 어느 카페를 그는 바라보고 있다. 양철 같은 느낌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동시에 자아내는 그 카페를 예닐곱 걸음 앞두고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은 어두워서 잘 분간이 안가지만 뭔가 머뭇거리는 것같다. 하늘은 화선지에다 까만 먹과 짙푸른 물감을 번지게 해 놓은 것 같고, 저기 가운데 소실점 부분에서 자동차 한 대가 구리빛 불을 밝히고 다가오고 있다. 사진에는 ‘윤도현밴드’란 글자와 ‘한국 rock 다시 부르기’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윤도현밴드의 리메이크 음반 표지. 도대체 저 재킷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음반 케이스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종이로 된 디지팩으로 되어 있다. 두터운 부클릿에는 친절하게도 작사 작곡자와 편곡자, 가사, 원곡을 부른 가수/밴드, 원곡의 발표연도가 꼬박꼬박 적혀 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원곡들을 (다는 아니지만) 다시 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윤도현밴드의 음악과 비교한다. 몇몇 곡은 작사 작곡자와 가사가 다르게(틀리게?) 적혀 있다.

가만 가만. 각 곡의 가사 밑에 곡 해설까지 적혀 있다. 원곡에 대해 설명을 해놓은 것까지는 좋은데,좀 민망한 글귀들도 보인다. ‘앨범 전체에서 빛을 발하는 유병열의 기타 리프가 섬광처럼 작렬한다’ ‘비장감이 담긴 보컬과 절제된 연주가 원곡의 감동을 재현한다’ ‘후반부의 열창이 명곡의 가치를 빛냈다’ 등등. 그런 글귀는 보도자료에서 흔히 보던 클리셰 아닌가. 어디선가 백인 진행자가 불쑥 나와서 살짝 쪼개며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할 것만 같은.

# 한 달 전, 1999년 12월

윤도현 밴드의 새 음반 [한국 rock 다시 부르기]가 나왔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 시대 한국 록 음악을 리메이크한 음반.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시리즈에 기댄 타이틀. 안에는 김정미(신중현), 활주로, 전인권, 강산에, 들국화, 송창식, 옥슨 80, 샌드 페블스, 김민기 등의 곡들이 담겨 있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윤도현밴드는 원래 라이브 때마다 옛 한국 록 음악들을 몇 곡씩 커버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는가. 음반에 담긴 몇몇 곡은 이미 다른 헌정/리메이크 음반들을 통해 리메이크한 바 있는 곡들이다. ‘윤도현밴드는 커버곡을 해도 외국곡을 안하고 우리 곡을 하는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류도 있었고, 기특하다며 밀어주는 평론가 및 기자 양반들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서양 추종적이라고 뻑하면 씹혀왔던 게 록이라서 더 그러는 듯하다.

타이틀과는 달리 꼭 ‘록’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고 김민기와 송창식의 포크 곡도 담겨 있다. 선곡에서 특이한 점은 1990년 요절한 빅토르 최가 이끌던 러시아 록 밴드 키노(Kino)의 곡 “혈액형”. 빅토르 최는 한민족의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 록’이란 것인가. ‘한국 록’의 분류 기준은 인종에 의한 것인가.

리메이크 음반의 내용 또한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운드는 두텁고 강렬하며, 손발 맟춘 기간이 이제는 꽤 되는만큼 멤버 간의 호흡도 잘 맞는 편이다. 윤도현밴드의 음악적 방향은 케이블 TV에서 윤도현이 진행하는 [Time To Rock 99]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메탈의 지대한 영향 그리고 콘(Korn) 류의 1990년대 헤비 사운드. 물론 윤도현 보컬의 특성상 조나단 데이비스 같은 섬찟한 흐느낌과 광기 섞인 읊조림이 구사되진 않았다. 하지만 윤도현의 보컬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던특징(특유의 내지르는 힘찬 샤우팅과 마른 장작 같은 따스한 창법)을 오가던 단조로움을 쪼개고 있다. 이제 그는 코믹한 표현도 용감하게 하고(“담배 가게 아가씨”), 이펙트를 걸기도 하고(“바람”), 좀 민망한 나레이션도 한다(“혈액형”). 표현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전히 샤우팅이 주종을 이루지만.

윤도현밴드의 음악에서 윤도현의 보컬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유병열의 기타. 힘찬 배킹, 메탈 리프 중심의 연주 스타일은 여전하다. 다만 앞서 말한대로 콘 류와 RATM 류의 사운드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다양한 전개 방식과 기교가 사용되었다. 이번 음반의 경우 이미 원곡이 잘 알려진 축이기 때문에 편곡의 문제, 그 중에서도 기타 편곡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윤도현밴드의 음악 성향이 기타 사운드가 강한 록 스타일이 때문에). 유병열의 기타가 다양한 주법을 사용해서 한 곡 내에서도 분위기를 여러 차례 바꾸기도 하는데, 때로는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 그의 화려한 기타 연주는 의욕과잉의 측면이 엿보인다. 그래서 원곡의 다소 빈 듯하고 흥겨운 맛을 휘발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건 어쩌면 리메이크를 한다는 것, 더구나 잘 알려진 곡을 다시 연주한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종의 딜레마 때문일지도 모른다.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고, 강하게 남아 있는 원곡의 아우라를 어떻게 처리할는지는 쉬운 일이 아니고. 원곡을 아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따른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원곡의 익숙함에 기댈 수 있다는 큰 잇점이 있기 때문에 리메이크가 영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하기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리메이크곡은 원곡을 뛰어 넘기 어렵다’는 세간의 통설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 Retrospection, 뿌리 찾기 시리즈, 1997년에서 1999년까지

1999년 대중 음악계의 이슈 중 하나는 포크였다. 1969년을 포크 원년으로 보고 ‘포크 30주년’이란 테마로 여러 행사들이 열리고 매스미디어에서도 일부 조명을 했던 것. 봄에 이대 강당에서 포크 페스티벌이 열렸고, 4회째 개최된 ‘자유’ 페스티벌도 포크가 초점을 이루었다. 그후 잠잠하다가 가을 들어서 요란스럽지 않게 이슈화가 진행되었다. 크고 작은 포크 공연이 열렸고, 지상파 방송 3사에는 포크를 재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방영되었고, 재활용 짜깁기 음반 기획 대열에 포크 편집 음반들도 가세했으며, 한국 포크 싱어 협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사실 1998년부터 미사리 카페촌이 주목받기는 했다. 그 결과 성인층 일부의 주목과 관심, 그리고 향수가 뒤따랐다. 편집 음반과 미사리 카페들은 장사가 좀 됐는지 몰라도, 대중 음악 주력층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고 열기가 시들해지자 매스 미디어도 다시 다른 꺼리들을 찾아 등을 돌렸다.

1999년 연말에 한 호텔에서 열린 신중현의 공연은 1997년에서 1999년 사이에 일부 평단과 신문을 중심으로 주도된 이른바 ‘한국 록 뿌리 찾기와 역사 세우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처럼 보였다. 1997년 초에 신중현 헌정 음반이 제작되고 헌정 공연이 대규모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것이 신호탄이었던 듯싶다. 같은 해 산울림의 신보가 나오고 옛 음반들이 모두 재발매되었으며 1999년 초에 산울림 헌정 음반도 나왔다. 한국 록에 관한 관심이 일부에서 일어나고, 잡지에 특집으로 다뤄지기도 하고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근데 유례없는 헌정 음반과 공연, 한국 록 뿌리 찾기 운동은 괄시와 천대 속에 잊혀진 한국 록 역사를 진짜 바로 세운 것이었나. 또 헌정 음반과 공연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정말 그 뮤지션/밴드의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거기 참여한 건가. 글쎄다. 한국 ‘로커’들이 기타고 마이크고 드럼 스틱이고 쥐게 된 건 영미권 로커들의 뽀대나는 폼과 끝내주는 음악에 다 뻑간 데서 비롯된 거 아닌가.

어쨌든 간에, 윤도현밴드는 신중현 헌정 음반에 참여하여 신중현과 세 나그네의 1983년작 “이제 그만 가보자”를 리메이크했다. 같은 음반에서 강산에는 1972년에 김정미에 의해 발표되었던 “바람”을 불렀다. 1998년 윤도현밴드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산울림에서 들국화까지)를 한국 록의 황금기로 상정한 리메이크 음반 [Rewind]에 참여하여 옥슨 80의 “불놀이야”를 리메이크했다. 이듬해인 1999년에도 이들은 산울림 헌정 음반에 참여하여 “나 어떡해”를 연주했다.

# 윤도현밴드 음반 발매와 방송 심의 싸움, 1997년 늦겨울에서 봄까지

포크 록의 기수 중 하나로 지목받던 윤도현이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음반을 내놓았다. 윤도현밴드1집이 되어야 할 타이틀은 ‘어쩔 수 없이’ [윤도현 2]로, 그리고 부제로 ‘and Band’. 포크 록이 주종을 이루던 윤도현 솔로 1집과는 달리, 이 음반은 하드 록/메탈 계통의 굉장히 헤비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 1996년 여름 윤도현의 고향이자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파주에 수재가 났을 때 사람들이 복구와 보상 문제로 군청 앞에서 항의 농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곡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방송 금지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하였다. 평단의 지지와 윤도현밴드는 ‘의식 있는 밴드’라는 후광.

# 데뷔, 1994년 말에서 1995년까지

1994년 12월 윤도현이란 청년의 데뷔 음반이 나왔다. 기획사는 ‘생각이 있는 음악집단’이란 모토를 내건 ‘다음’. 음반이 다소 산만하다는 평 속에서도 건강한 포크 록 가수가 등장했다느니 제2의 강산에라느니 얘기가 떠돌았다. 타잔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그린 흥겨운 리듬의 로큰롤 “타잔”이 꽤 알려졌고, 음반을 사거나 라이브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든지 “너를 보내고 II”, “사랑 two” 같은 곡이 인기를 얻었다. 민중 가요의 전통을 잇는 통일 노래 “임진강에서”, 직설적인 가사의 “깨어나라” 같은 곡은 좀 튀는 트랙.

그의 과거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런 것. 1980년대 전국 중고등학교에 메탈 붐이 일어나던 시기 윤도현도 메탈 스쿨 밴드에 참여했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후, 종이연에 참여해 공단과 탄광촌 등지에 공연을 다녔다는 것. 종이연은 민중 가요의 경향을 일부 담고 있던 진보적인 포크 그룹. 거기서 김민기의 노래, 1980년대 민중 가요를 접하고 불렀다는 것. 20000116 | 이용우 pink72@nownuri.net

5/10

수록곡
1. 바람 (신중현/신중현/김정미/1973)
2. 탈춤 (김종태/지덕엽/활주로/1978)
3. 너를 보내고 (이승희/임준철/윤도현밴드/1994)
4. 돌고 돌고 돌고 (전인권/전인권/전인권/1988)
5. 깨어나 (강산에/강산에/강산에/1996)
6. 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원/최성원/들국화/1985)
7. 혈액형 – blood type (윤도현밴드(번안)/빅토르최/키노/1988)
8. 담배 가게 아가씨 (송창식/송창식/송창식/1986)
9. 불놀이야 (홍서범/홍서범/옥슨 80/1980)
10. 나 어떡해 (김창훈/김창훈/샌드 페블스/1978)
11. 철망 앞에서 (김민기/김민기/김민기/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