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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Tip – Amplified – BMG/Arista, 1999

 

 

큐팁(Q-Tip)과 어 트라이브 콜드 쿠에스트(A Tribe Called Quest)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게 꼭 정당한 일은 아니다. 이제 큐팁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알리 샤이드(Ali Shaheed Muhammad)와 파이프(Phife)가 그 뒤에 있을 꺼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알다시피 ATCQ는 힙합 역사상 가장 세련되고 지적인 재즈-힙합의 퓨전을 창조해낸 힙합 그룹이고 큐팁은 그 그룹의 래퍼였다. ATCQ는 갱스터 랩이 지배하는 1990년대 초반 재즈 샘플과 재즈 베이스가 유유히 흐르는 우아한 힙합을 선사했다. [The Low End Theory](1991)나 [Beats, Rhymes and Life](1996) 같은 앨범은 그저 한편의 ‘힙합 시(hiphop poetry)’다.

ATCQ의 멤버면서도 여러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여기 저기에 특유의 목소리(콧소리?)를 빌려주기 바빴던 래퍼 큐팁은 1998년 그룹의 해체된 이후 솔로 데뷔 음반을 내놓았다. 프로듀싱은 큐팁과 제이디(Jay Dee)가 했다. 둘로 이루어진 프로듀싱 팀 우마(Ummah)는 이미 ATCQ의 전작 앨범에서 프로듀싱을 맡았던 바 있다. 여기에 DJ 스크래치(DJ Scratch)가 참여했다. 그러고 보면 전혀 생소한 사운드가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데…

“띠띠띠띠, 띠띠띠띠…” 재기 넘치는 피아노 루프가 나오기 전까지 앨범의 처음을 여는 바로 이 전자음은 “이제 ATCQ는 잊어버려라”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Wait Up”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 소리는 ATCQ의 사운드보다는 예컨대 팀바랜드(Timbaland)의 마이크로 싱코페이션에 가깝다.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ATCQ 사운드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가 아니라 미니멀한 전자음으로 비틀어진 적나라한 댄스 그루브이다. ‘적나라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기본적으로 힙합은 댄스 그루브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닥터 드레(Dr. Dre)는 카스테레오를 위한 힙합이지만 댄스 그루브가 존재하고 ATCQ의 음악에서도 댄스 그루브를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선 말하자면 큐팁의 솔로 앨범은 ‘댄스 플로어를 위한’ 음악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첫 싱글인 것으로 기억되는 “Vibrant Thing”(공교롭게도 이 곡은 윤희중의 “乞(Girl)”을 생각나게 한다)은 펌프처럼 몰아치는 리듬감이 두드러진다. 이 곡은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표한다. 이 곡 앞에 자리잡은 “Go Hard”라든가 “Breathe and Stop” 같은 곡도 강박적인 전자음을 들려주고 있어 비슷한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ATCQ를 상기하지 않는다면(그러기가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신나는 곡들이다. 다만 듣는 사람에 따라 앨범 전체가 별 변화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하게 몰아붙이는 것 같아 지겹다는 느껴질 것 같다. 그건 이런 식의 리듬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한계라고 할 수 있지만 큐팁은 별로 그걸 넘어서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ACTQ와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물론 ATCQ의 냄새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Higher”라든가 “Let’s Ride”, “Thins You Do”에서 나오는 피아노 루프나 기타, 베이스는 훨씬 들떠있기는 하지만 ATCQ 풍의 재즈-랩은 연상케 한다. “Moving With U”는 두가지 분위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곡이다. 나름대로 큐팁이 창조한 새로운 사운드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외국 평론가들’의 의견을 전한다면, (솔직히 나는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ATCQ의 가장 뛰어난 점 중 하나는 가사를 쓰는 능력이었다. 비판적이고 사회의식적인 가사를 가진 곡이 꼭 하나씩은 있었고 다른 곡도 유려한 시처럼 같았다(고 한다). 큐팁의 솔로 앨범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평자들은 이번 앨범이 그의 의식있고 뛰어난 가사 대신 남성적인 허세와 섹스 어필하는 가사로 도배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점이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청중에게는 별로 감점 요인이 안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앨범 뒤쪽으로 가보니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와 콘(Korn)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너도 나도 다하는 ‘featuring’이 이 앨범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구나. 버스타 라임스는 “N.T”에서 예의 ‘광란의 래핑’을 선보이고 있고, 하드코어 밴드 콘(Korn)의 프론트맨인 ‘또 다른’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와 만난(큐팁의 본명 또한 조나단 데이비스다) 곡은 예상 외로 ‘록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조금 ‘하드’해진(혹은 ‘호러’해진, 혹은 ‘코믹’해진) 버전의 큐팁이다.

히든 트랙 “Be It, See It, Do It”은 전체 앨범의 ‘정신없는’ 분위기와는 좀 다른 ‘느긋한’ 곡이다. 어찌 들으면 이 곡은 이 앨범에서 ATCQ와 가장 비슷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가사도 예의 의식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만약 ATCQ를 기대했거나 앨범 전체가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에서 단지 이 곡만이 마음에 들 것 같다. 이런 팬들에게 주제넘은 제안 하나 한다면, 한걸음 물러서서 “Moving with You”이 주는 새로운 큐팁 사운드의 가능성만은 인정해야 보자는 것이다. 20000318 | 이정엽 evol21@weppy.com

5/10

수록곡
1. Wait Up
2. Higher
3. Do It
4. Moving With U
5. Let’s Ride
6. Things U Do
7. All In
8. Go Hard
9. Breathe And Stop
10. Vibrant Thing
11. N.T. feat. Busta Rhymes
12. End Of Time feat. Korn
…. (hidden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