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쑈 포르노씨 – 에피소드1: 씹주구리 군단의 침공 – 코믹스/피드백/아코이 뮤직, 2000 미지의 것을 접할 때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은 시각이다. 그래서 일반인이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처음 접할 때 일차적으로 낯선 감정을 느끼는 것은 특이한 외양일 것이다. 요즘에야 머리에 물을 들이고 코를 뚫고 이상한 장식물을 달고 다니는 젊은애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런 모습들이 특정 장소에만 몰려 있을 때 그곳으로 발을 딛으려면 두렵게 다가오는 낯선 느낌을 떨쳐 버리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중심지인 홍대앞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여기서는 이질적 존재들이 한데 모여 언더그라운드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발쑈 포르노씨는 신일섭을 포함하여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만화작가들을 중심으로 1998년에 결성된 밴드다. 이들은 낯선 느낌이 지배하는 홍대 앞의 산물이자 리더다. 극을 달리는 특이한 외양과 돌출적인 행동은 혐오든 열광이든 관찰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의 기본 성분은 첫인상만큼 낯설지는 않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속주 기타와 더블 베이스를 내세운 1980년대의 ‘바로크 메틀’ 색채가 짙게 녹아들어 있고, 곡의 형식과 구성은 아트 록의 컨셉트 워크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를 두고 ‘요즘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라고 생각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을 ‘Comix Rock’이라고 규정하듯이 이들이 가지고 오는 바로크 메틀이나 아트 록 등 ‘오래된’ 음악 장르들은 풍자와 해학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넓게 보아 황신혜 밴드나 (최근의) 크라잉 너트와 유사한 시도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한때 언더그라운드에서 진지한 추구의 대상이었던 ‘정통 록’까지도 본격적으로 풍자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말이다. 물론 단지 바로크 메탈 뿐만 아니라 훵키한 록(“달배맨”), 스카 펑크, CF 송(“줄줄이”) 마저도 이들의 사정권 하에 있다. 한편 주제 트랙인 “이발쑈 포르노氏”에서 도입부의 구호성 나레이션이 행진가풍의 노래와 연결되는 구성은 1980년대 정치집회에서 익히 보고 듣던 것이다. 이 역시 진지한 계승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 대목을 듣다가 문득 퀸스라이크(Queensryche)의 [Mindcrime]이 떠올랐는데, 이의 ‘코믹 버전’이라고 하면 맞을까. 이발쑈 포르노씨의 음악은 그들의 직업인 만화와 등가적이다. 앨범 부클릿에 들어있는 ‘씹주구리군단의 침공’이라는 만화라든가 CD를 컴퓨터에 넣으면 나오는 비디오는 수록된 음악 못지 않게 이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텍스트다. 어떻든 이들은 ‘재미의 윤리학’이라는 홍대앞의 하나의 계열을 잇고 있는 셈이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평’하기 힘든 점은 거기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의미의 추구를 배격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경우든 그대로 내버려 둘 때 재미의 효과가 극대화될 듯하다. 그리고 음반을 듣는 것 이상으로 직접 연주하는 것을 보는 게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서 ‘평론가’는 음반의 음악적 내용을 저울질하기보다는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할지도. 이 음반에 이어 정치판을 코믹하게 풍자하는 음반 [개판 오분전]도 곧 나옵니다! 개봉박두! 20000319 | 조성관 sakta@nownuri.net 5/10 수록곡 1. 인트로(선전포고) – 씹주구리 군단의 침공 2. 이발쑈 포르노씨 주제곡 3. 달배맨 4. 믿음의 길 5. 냉면개시 6. 졸졸이 7. 태권브이에 관한 고찰 8. 아웃트로: 죽음의 사막으로 쫓겨나는 이발쑈 포르노씨 관련 사이트 코믹스 홈페이지 http://www.comix.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