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09023212-shin

신승훈 – Desire to Fly High – 도로시/신나라, 2000

 

 

변진섭, 최호섭, 이정현(요즘 나오는 이정현 말고), 조정현, 이규석 등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신승훈도 그때는 이런 이름들과 함께 ‘고만고만한’ 가수처럼 보였다. 그 뒤 10년 간 ‘팔자’는 천양지차로 바뀌었지만. 신승훈만 슈퍼스타로 남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곡을 받아서 노래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작사·작곡을 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이었다. 하나 더 있다. 주류 대중음악의 미덕은 ‘가급적 많은 청자에 대한 배려깊은 서비스’지만, 서비스가 천편일률적이면 고객은 싫증을 낸다. 신승훈의 서비스 메뉴는 다양한 편이었다. 느린 템포의 애절한 발라드가 주요 메뉴였지만, 빠른 템포의 비트 있는 곡들도 간간이 있었다. 이 곡들은 마치 잇몸처럼 그의 음악 세계을 지탱해 주었는데, 이 점이 댄스 돌풍 와중에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번 음반은 그의 일곱 번째 앨범이다. ‘무혐의로 끝난 탈세 사건’으로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고, 게다가 음악적 방향도 불투명한 상황 끝에 나왔다는 사실이 이번 앨범을 둘러싼 환경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더니 ‘예상대로’ 첫 트랙은 예상 밖이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칭칭 감아도는 슬프고 아름다운 발라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풍의 여성 보컬과 남자의 나레이션에 이어 퍼커션(타악기)을 사용하여 이국적 분위기가 풍겨나온다. “프롤로그”니까 ‘그냥 한번 해봤군’, ‘[라이언 킹] 흉내냈군’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국적 분위기가 2번 트랙까지 이어진다.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이라는 제목인데 요즘 지상파를 많이 타는 곡이다. “우에에에”거리는 아프리카 토인의 목소리와 ‘에스닉’한 퍼커션으로 시작하고, 중간에는 테크노풍의 비트도 추가되고, 전기 기타도 퓨전 재즈풍과 하드 록풍이 교대로 등장하고, 소울풍의 흑인 아줌마들의 코러스도 나온다. 가장 예상밖인 건 멜로디다. 한국형 발라드의 전형인 ‘절정부를 강조하는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처음부터 고조된 상태로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지나친 모험은 금물. 중간 부분에는 신승훈의 전매특허 넘버들이 이어진다. “가잖아”, “내안의 그녀”, “이별 그후”, “슬픈 거짓말” 이상 네 곡은 이전의 그의 대표곡들에서 감미롭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달라진 점은 어떤 곡에서는 (어쿠스틱) 피아노, 다른 곡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워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한편 “엄마야!”와 “굿바이 마이 러브”는 훵키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후반부로 접어들어 긴장이 떨어질 때쯤이면 보사노바(“어느 멋진 날”), 살사(“체인지”), 하우스(“포에버”) 등 ‘신승훈’과는 아무래도 이질적인 리듬이 들어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 곡들은 그가 작곡한 것이 아니다. 마무리는 외국 곡 “Over The Rainbow”를 재즈풍으로 노래한다.

보여줄 것 다 보여주는 이번 음반의 메뉴는 그의 음반 중 가장 다채로워 보인다. 그래서 다 듣고 나면 자연스럽고도 친절한 서비스로 접대하는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기분이다. 그런데 호텔 레스토랑에 자주 갈 일이 없듯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TV 드라마에서 호텔의 모습을 보는 일은 많듯, 라디오에서 신승훈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럭저럭 좋을 것 같지만. 20000331 | 신현준 homey@orgio.net

5/10

수록곡
1. Prologue
2.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3. 가잖아
4. 엄마야
5. 내안의 그녀
6. Good Bye My Love
7. 이별 그후
8. 어느 멋진 날
9. 슬픈 거짓말
10. Change
11. Forever
12. Over The Rainbow(외국국)

관련 사이트
신승훈 홈페이지
http://www.shinseung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