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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씨(La C) – From Here to Insanity – 강아지 문화예술/대영AV, 2000

 

 

인디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현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인디 레이블은 대략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드럭처럼 자신의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밴드의 음반만을 제작하는 경우, 카바레처럼 나름의 독자적 스타일에 맞는 아티스트를 선별하여 음반을 제작하는 경우, 그리고 강아지처럼 ‘보다 넓은 범위의 음반’을 제작하는 경우다. 마지막 예는 특별히 음악적 색깔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고, 나름대로는 색깔에 구애받지 않고 일정 수준의 음반을 제작한다는 뜻이다. ‘힙합’ 그룹 갱톨릭, ‘노이즈 록’ 밴드 옐로 키친과 퓨어디지틀사일런스, ‘모던 록'(이 말이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밴드 마이 앤트 메리 등의 음반이 강아지에서 제작되었다. 이번에는 라 씨(La C)의 앨범이 나왔다. 그런데 말이다.

첫 트랙 “할꺼야”를 들으면 인디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디스토션을 적당히 입힌 기타 사운드와 걸쭉한 ‘록 보컬’이 나온다. 이른바 ‘하드 록’ 사운드다. 또 이런 곡으로 “Tell”이 있다.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정통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관습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이들의 라이브 공연에 가면 ‘놀기’는 좋을 것 같다. 기타는 초반부에서는 나른하다가도 후렴구에서 보컬과 함께 시원하게 내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마다 어딘지 허전한,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이유는 아마도 기타 사운드만 놓고 본다면 시원스럽지만, 기타가 따로 놀고 있어서 전체적인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이는 ‘기타리스트의 프로젝트’인 한국형 록 밴드의 오래된 관습인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특히 진짜 드럼이 아니라 드럼 루프를 사용한 곡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정통 록 트랙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오는 아침”은 1980년대 신스 팝 스타일이며, “고백”은 디스코 풍이고, “운명”은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가사를 중요시하며, 가사와 음악이 함께 어울려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음미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레코딩의 음질은 ‘인디 음반’ 가운데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의문이다. 음악 스타일도 그렇거니와 ‘인디 음반’이 음질로 승부하는 것인지는. 문득 강아지 레이블이 이런 음반을 발매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혹시 ‘이런 음악은 상업적 하드 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로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인디의 글로벌 스탠다드만 보는 것’일까. 20000729 | 신현준 homey@orgio.net

3/10

수록곡
1. 할꺼야
2. 비오는 아침
3. 후천성 면역 과다증
4. Devouring
5. 고백
6. 나
7. Tell
8. 노란 빛깔
9. 강이 바다가 될 때
10. Night & Day
11. 문어

관련 사이트
강아지 문화 예술 홈페이지
http://www.gangag.com